400년 전통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공간, 부산 구포시장을 가다

낙동강 수로 통해 내륙과 해안 물산 모여들고 흩어지며 번성 1905년 경부선 철도 구포역 지나면서 영남 대표시장 이어가 3일, 8일 열리는 정기시장이면 여전히 최다 5만 명 찾아 장 봐 1919년 장터에서 1200명 만세운동 벌인 역사성도 갖고 있어

2021-11-04     취재기자 강지호

400년이 넘는 전통과 역사적인 의미를 품은 곳이 있다. 박물관, 전시회도 아닌 사람들의 발길과 정이 끊임없이 오가는 곳, 부산 북구에 위치한 구포시장이다.

구포시장은 도시철도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덕천역 근처에 있다. 명칭은 구포시장이지만 구포역보다는 덕천역과 가깝다. 구포역이 아닌 덕천역에 내려 바로 앞 덕천교차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구포시장이 보인다.

부산

구포시장에 발을 들이자마자 구포시장의 규모와 상인들의 호객행위로 인한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시장거리를 누비다 보면 어느샌가 시장 상인들의 따뜻한 눈길과 하나라도 더 줄려는 인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긴장이 풀리면서 서서히 먹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구포시장을 자주 들르는 대학생 김예지(23세, 부산시 북구) 씨는 "다이어트를 할 때 절대 구포시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구포시장의 음식은 다이어트를 할 때도 거절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구포시장의 탄생은 조선시대 중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포는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포구로 내륙뿐 아니라 해안에서 생산된 물산들도 모여든 곳이었다. 이렇게 모인 물산이 낙동강을 통해 안동까지 갈 수 있었다.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 크게 번영했다.

수로 교통에서 육로 교통으로 바뀌는 20세기에도 구포시장은 지리적인 이점을 살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1905년 개설된 경부선이 구포역을 지나면서 낙동강의 역할을 대신 해줬기 때문이다. 구포시장은 해방되기 전까지 영남지방에서 번성했던 시장 중 하나였다. 하지만 6.25 전쟁 이후 부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구포시장은 서서히 밀려났다.

오늘날 구포시장은 상설시장과 정기시장의 조화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구포시장은 3, 8이 들어가는 날짜에 정기시장인 장날이 열린다. 장날이 열리는 날이면 3~5만 명의 인파가 몰려들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찾고있다. 구포시장을 자주 찾는 주부 이행선(51세, 부산시 북구) 씨는 "구포시장에 오면 향수에 젖는다. 구포시장은 있을 거 다 있고, 특히 장날에 오면 건질 게 많다"고 말했다.

구포시장의 또다른 묘미는 곳곳에 숨어있는 맛집을 찾아가는 것이다. 구포시장의 입구에서부터 각종 채소들과 생선들이 반겨주고 있고, 조금만 들어가면 다양한 식당들이 즐비하고 있다. 구포시장에는 다양한 맛집들이 있지만 한 때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구포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구포시장의 구포국수는 단순한 국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6.25 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든든한 한 끼 식사를 해결해 주며 구포시장의 명물로 떠올랐다. 구포시장에서 60년 넘게 구포국수를 운영하고 있는 '이원화 구포국시'집을 찾아가 봤다.

온국수는 4000원, 비빔국수는 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60년 전통을 비빔국수의 쫄깃한 면발과 진한 육수가 대신 말해준다. '이원화 구포국시'집의 사장인 이원화 씨는 "손님들이 건강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한다. 4000원짜리 국시이지만 40000원짜리 국시라 생각하며 판다"고 말했다.

구포시장은 400년 세월을 지켜온 전통시장임과 동시에 역사적인 장소로도 기억된다. 구포역에서부터 구포시장까지 가는 길에는 구포장터 3.1 만세운동에 관한 벽화들을 볼 수 있다. 구포장터 3.1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9일 구포장터에서 1200여 명이 모인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만세운동이며, 주축이 주로 학생이었던 타지역과 달리 상인, 노동자 등 서민들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구포만세거리

구포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 교통도 통신도 지금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대였다. 서울에서 유학하던 학생들이 독립선언서를 몰래 훔쳐 와 구포 주민들에게 호소하며 사람들을 모았다. 임봉래와 청년들이 주도해 구포시장 장날인 29일을 결사일로 잡는다. 그렇게 1919년 3월29일 청년들과 상인들 주축으로 구포만세운동이 일어난다.

구포장터

구포만세거리를 직접 찾아가 봤다. 구포만세거리 입구에서부터 그 당시의 상황을 그린 벽화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벽화들을 보며 거리를 걷다 보면 1919년 부산형무소에서 간행한 부산 구포 장터 3.1 만세 운동 참가자 수형인 명부표가 보인다. 수형 명부표에 26명의 주동인물이 기재돼 있다.

구포만세거리의 끝은 구포시장이다. 하지만 구포 만세거리에 대한 관심은 미미하다. 북구에 사는 백창민(23세, 부산시 북구) 씨는 "집이 북구이지만 구포만세거리가 있는 줄 몰랐다. 하루빨리 구포만세거리를 찾아가 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구포시장은 성남 모란시장, 대구 칠성시장과 함께 전국 3대 개시장 중 하나였다. 현재는 반려견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국민들은 개식용 종식을 원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생기기 전에는 개고기를 파는 가축시장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 반려견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으면서 개식용을 반대하고 가축시장을 비난하는 국민들이 많아졌다. 동물자유연대는 구포시장 상인회와 개시장 폐업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마침내 2019년 5월 30일, 부산 북구청과 구포가축시장 상인회가 개시장 폐업과 업종 전환을 결정해 구포가축시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갈등의 현장으로 인식됐던 구포가축시장을 이전과는 반대되는 생명존중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동물입양카페, 동물보건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부산시는 구포시장에 동물복지센터를 건립해 동물복지의 상징적 특화거리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다.

구포시장

구포시장 주변 인프라를 구성하기 위해 국비와 지방비 400억 원 이상을 투입해 공영주차장, 문화시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시장을 자주 갔던 최호중(26세, 부산시 동래구) 씨는 "시장은 항상 불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구포시장 뿐 아니라 모든 시장이 주변 인프라를 잘 구성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시장을 자주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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