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이 아프지도, 분노하지도 않아도 되는 사회

2017-07-18     편집위원 양혜승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여러 모로 화제였다. 한국 에세이 출판 역사상 최단기 100만 부를 돌파했고, 2011년부터 수년 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아마도 유명세 때문이었을 거다. 이 책의 제목만큼 세간의 비난을 받은 경우도 드문 듯하다. “아프면 환자지 뭔 청춘이냐”는 조롱부터, “'아프니까 청춘'은 누가 만든 개소립니까”라는 노랫말까지 등장했다. 아픔을 묵묵히 감수하기에는 청년들의 현실이 지나치게 팍팍해진 까닭일 게다. N포세대, 헬조선, 수저계급론이 더 와 닿는 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다.  그러더니 요즘엔 ‘분노’가 키워드로 한 책들이 공감을 받는 듯하다. 청년들이 아파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분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왜 분노해야 하는가>, 혹은 <분노하라>와 같은 책들이 주목을 받는다. 청년들의 저항을 주문하는 내용이다. 그저 아파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불평등으로 점철된 현실에 분노하고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요즘 뉴스를 접하노라면 청년들의 분노를 주문할 필요조차 없을 듯하다. 권력과 부를 지닌 ‘그들만의 리그’가 청년들의 마음을 부글부글 끓다 못해 허탈하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듯한 일들이 희한하게도 현실에서 일어난다. 최근에 교육부의 기획관이라는 사람이 그 희한한 일을 해냈다. 이 사람의 발언이 충격적이다. “민중은 개, 돼지다. 신분제를 공고히 해야 한다. 자신은 1%가 되고자 노력 중이다”라는 요지였다. 기자들을 앉혀놓고 그런 소리를 했다니 참 용감한 사람이다. 이 사람이 인용한 말은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유명한 대사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들입니다. 뭐하러 개, 돼지들에게 신경 쓰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교육부 기획관이면 부교육감급 고위 관료다. 그것도 다른 행정부처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교육을 담당하는 교육부다. 교육부 고위 관료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 우리 사회다.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이 기획관은 파면되었다. 이제 영화는 그만 봐야할 듯싶다.  모 검사장도 한 건 했다. 이 사람은 한 게임업체로부터 주식을 사실상 공짜로 받아 100억 원이 넘는 차익을 남겼다고 한다. 주식을 산 돈이 처음에는 자신의 돈이라고 했다가, 처가의 돈이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빌린 돈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검사장은 행정부로 치면 차관급이다. 검사장이 거액의 뇌물을 받고, 거기다 파렴치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물론 이 사람이 한 건만 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모 항공회사의 탈세 혐의를 수사하던 중 사건을 접어주는 아량을 베풀었다 한다. 대신 그 항공회사가 자신의 처남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어 130억 원이 넘는 이득을 봤다 한다.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얼마 전 종영한 KBS2 TV의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도 그랬다. 재벌에게 뒷돈을 받고 못된 짓을 마다하지 않는 검사가 등장했다. 검사장급 검사였다. 이쯤 되면 드라마가 현실이고 현실이 드라마다.   대우조선해양 뉴스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추잡한 이면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동안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사실상 공기업인 이 회사에 댄 돈이 13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며 매년 거액의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2009년부터 5년 간 두 명의 사장이 챙긴 성과급만 220억 원이라고 한다. 윗물이 이럴진대 아랫물이 깨끗했을 리 없다. 이 회사의 한 차장 직원은 납품업자와 짜고 8년간 회삿돈 180억 원을 빼돌리고 내연녀와 함께 호화생활을 즐겼다 한다. 또 있다. 이 회사 비자금 조성 창구로 지목받고 있는 어떤 건축가는 수백억 원대의 횡령과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람이 검찰청 앞에서 기자들에게 남긴 말이 가관이다. “어이가 없다”고 했다 한다. 이 사람도 영화를 꽤나 좋아하는 모양이다. 영화 <베테랑> 유아인의 팬임에 틀림없다. 어이가 없다던 이 사람은 구속되었다. 정말 어이가 없다.  이런 일들이 하루치 신문에 동시에 등장하고 있다. 이것이 지금 2016년의 한국 사회다.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청년들의 분노 게이지는 그냥 두어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 썩은 내와 함께 등장하는 뉴스가 마음에 쏴한 바람을 일으킨다. 2017년 최저시급이 6,470원으로 결정되었다는 뉴스다. 노동계는 최저시급 1만원을 주장했다. 물론 협상이 아무리 잘 진행되었어도 1만 원이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을 거다. 어쩌면 1만 원은 최저시급 인상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상징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1만 원과 6,470원의 차이는 커도 너무 크다. 부끄럽다. 최저시급이 얼마인지도 중요하지만 최저시급을 지키지 않는 고용주들도 큰 문제다.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나마 최저시급조차 지켜지지 않는 아르바이트 현장들이 많다. 청년들의 분노는 정말이지 내버려 두어도 자동 상승한다.   요즘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청년창업 담론도 분노 상승을 거든다. 청년실업은 구조적인 문제다. 청년창업으로 그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유혹하듯 청년창업을 부추긴다. 취업을 하지 못하면 창업을 하면 된다는 논리다.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면 된다고 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황당한 현실 인식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 좁은 취업문을 서성이다 상처받은 청년들이 또다시 상처를 받는다. 종잣돈이 없어, 혹은 아이디어가 없어 열패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청년들을 두 번 죽이는 우리 사회다.  청춘들에게 아픔과 불안감을 자기계발의 계기로 삼으라는 주문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둔갑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하라는 주문은 그런 점에서 훨씬 현실적이고 의미가 있다. 미래세대인 청년들이 나서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도 틀리진 않았다. 단지 염치가 없어지는 건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싸질러놓은 썩은 분비물을 청년들에게 치우라고 하는 듯해서 말이다. 자신은 1%에 속한다며 민중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교육부의 ‘영화광’ 관료도, 몰래 뇌물을 챙기고 기업의 뒤를 봐주는 검사도, 국민의 돈으로 자기 호주머니를 불리는 공기업의 임직원도, 모두 기성세대가 싸질러 놓은 분비물이다. 이 썩은 분비물들로 미래세대에게 천민자본주의를 학습시키고 있는 것이 기성세대다. 청춘들이 아프지 않아도 되고, 분노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은 분명 기성세대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