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녹명(鹿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

먹이를 함께 먹기 위해 우는 동물은 사슴이 유일 '탈무드'의 78대 22 황금률, 나눔의 참뜻 가르쳐 연말 자선냄비 등 썰렁...나눔의 가치 확산 절실

2022-12-26     논설주간 박창희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먼저 목놓아 운다. 주변의 동료를 불러 함께 먹이를 먹기 위해서다. 세상에! 먹이를 함께 먹기 위해 ‘우는’ 동물은 사슴이 유일하다고 한다. 긴 모가지와 수려한 관(冠)을 가진 사슴의 마음씀이 아름답다. 중국 최고의 시가집 ‘시경(詩經)’ 소아(小雅)편에 ‘녹명(鹿鳴)’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쑥을 뜯던 사슴이 우우 하고 제 기쁜 울음으로 먹이 있는 곳을 알리자, 그 소리를 듣고 광주리 받들어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내용이다.  먹잇감 앞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가? 사슴의 행동과 거의 반대다. 인간은 귀한 것을 보면 혼자 독차지하려고 숨소리마저 죽인다. 가지면 더 가지려고 안달이다. 돈과 이익 앞에선 친척도 친구도 없다. 자본주의의 약육강식 행태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선 듯하다.

썰렁한 자선냄비

올 연말은 어느 때보다 썰렁하다. 일상을 뒤흔드는 코로나나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나누려는 마음과 사랑의 온기가 연탄재처럼 식은 것 같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세운 ‘사랑의 온도탑’ 은 온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연말 나눔 캠페인의 상징 구세군 자선냄비도 썰렁하긴 마찬가지. 구세군은 이달 1일부터 전국 76개 지역에 모금함 300여 개를 설치했으나, 목표액(42억 원)을 채울 수 있을지 걱정한다. 썰렁한 도심 거리엔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만 냉랭하다. 크고 작은 소소한 나눔과 온정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 부자들의 통큰 기부나 나눔은 인색하게만 느껴진다. 
김부겸
내년 대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정녕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왜 싸우는지 종잡을 수 없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이라는 핀잔 속에 국가 미래와 비전에 먹구름을 드리운다. 진보-보수를 뛰어넘어 통합과 나눔을 실현하고, 녹색 저탄소 사회, 한반도의 평화 공존을 이끌어낼 큰 정치인은 없는 것인가. 

까치밥 생각

시골에 가면 요즘도 나뭇가지 끝에 까치밥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본다. 우리 선조들은 벼를 벤 뒤에는 벼 이삭을 논바닥에 떨어뜨려 놓았고, 감나무에서 감을 딸 때 꼭대기에 몇 개씩은 씨감을 남겨 두었다. 야생 동물들에게까지 베풀던 우리 선조들의 사랑나눔 정신이다. 이웃과는 돌담이나 울타리를 치고 살면서도 마음만은 활짝 열고 살았다. 먹을 게 있으면 나눠먹고, 애경사에는 같이 울고 웃었다. 그런데 우리의 도시는 언제부턴가 자기 것만 챙기고 자기 이익에만 몰두해 있다. 아파트의 철문은 더 굳게 닫혔고, 엘리베이트 안은 점점 서먹해진다. 내 것 내 욕심만 챙기다 보니 이웃의 불행을 보지 못하고 재난이 닥치면 속수무책으로 허둥댄다. '공유지의 비극'이다. 개인의 사리사욕을 극대화하면 공동체나 사회 전체는 물론 자연까지 파괴할 수 있다는 이론이 현실화돼 있는데도 누구도 문제의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다.

탈무드의 황금률

유대인의 전통 지침서인 ‘탈무드’에는 신비한 황금률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이른바 78 대 22의 법칙이다. 정사각형에 내접한 원의 면적과 나머지 면적이 78 대 22다. 계산을 하자면, 한 변이 10cm인 정사각형의 넓이는 10x10=100㎠이고, 정사각형에 내접하는 원의 넓이는 3.14(π)x5x5=78.5㎠, 약 78㎠가 된다. 전체에서 이 부분을 빼면 22㎠가 나온다. 지구의 대기 구성, 즉 질소와 산소의 비율이 대략 78 대 22라고 한다. 절묘한 우연이다.  유대인 중에 부자가 많은 것도 ‘탈무드’에 기반한 유대식 상술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유대인들은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을 78대 22 식으로 성공쪽에 무게를 둔다고 한다.(이희영 저, ‘탈무드 황금률 방법’) 더 흥미로운 것은, 정사각형의 이익을 얻으면 정사각형에 내접하는 원(78%)만큼은 자기 몫으로 챙기고, 나머지 네 모퉁이(22%)는 불우 이웃을 돕도록 사회에 돌려주라고 한다는 대목. 유대인 랍비(율법교사)들은 불우한 이웃이나 해외에 나가 있는 불쌍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것을 생활철학으로 삼으라고 가르친다.  

녹명과 나눔의 지혜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어진 사람이라도 재물이 많아지면 지조가 손상되고, 어리석은 사람이 재물이 많아지면 허물을 더하게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재물을 경계하라는 경구다. 노자의 ‘도덕경’은 "성인은 사사롭게 자기 몫을 쌓지 않는다"고 했다. ‘남을 도운 것으로 자신은 더 많은 것을 얻게 되고, 남에게 주는 것으로 자기는 더 많은 것을 갖게 된다’는 일깨움이 뜨끔하다.  나눔의 제1조건은 마음씀이다. 마음은 쓰면 쓸수록 커진다지 않는가. 지식나눔도 좋고 재능기부도 좋다. 남몰래 정성을 다하는 사회봉사도 박수 칠 일이다. 일거리도 나누어야 할 일이 많아지고 파이가 커진다.  스터디셀러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서로를 지켜주고 함께 협력하는 것은 내 몸속의 이기적 유전자를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일갈한다. 약육강식으로 이긴 유전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상부상조를 한 ‘종’이 더 우수한 형태로 살아남는다는 게 도킨스의 주장이다. 이기심보다 이타심, 내가 잘 살기 위해 남을 도와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녹명! 시골 감나무 끝에 남은 까치밥을 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울음을 떠올린다. 아, 우리도 사슴처럼 울고 싶다. 사람의 울음소리로 다가가 싸늘한 자선냄비에 온기를 넣어주고 싶다. 임인년 호랑이가 오기 전에 신축년의 나눔 숙제를 하나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