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 칼럼] 호사비오리들의 낙동강 래프팅
봉화 예던길에서 본 비오리와 호사비오리 흐르는 강에서 만난 친구들이 '흐름' 일깨워 청량산인 퇴계 선생의 통찰 ‘강은 흘러야 한다”
그것은 흐르는 강이었다. 보고 있으니 그냥 좋았다. 여울에 강 자갈이 씻겼고 자르르 구르는 강 자갈과 물소리가 산협의 대합창을 연출했다. 눈앞에 청량산이 기기묘묘한 ‘산(山)’자 형태로 그림처럼 다가왔다. 흠씬 넓어진 강 여울목에 10여 마리의 비오리들이 일렬 횡대로 서서 만추의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물살에 떠내려가다가 포르르 기어오르고, 다시 떠내려가다가 또 기어오르는 모습이 흡사 래프팅이었다. 여울목이 미끄럼틀이었다. 어유, 개구쟁이 비오리들!
비오리는 기러기목 오리과의 겨울철새. 생김새가 재미있다. 마치 빗질한 것 같은 머리깃이 그렇고, 흐르는 물(비)을 좋아하는 습성이 그렇다. 수컷은 머리에 짙은 광택이 있고 등을 제외하곤 흰색이다. 암컷은 헤어스타일이 독특하다. 사춘기의 아이들처럼 반항적인 스타일의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헤엄치는 모습은 애교 만점이다.
강의 여울은 비오리를 불러 놀이터를 만들고 쉼없이 흐르면서 스스로를 씻고 씻기어 강을 완성하고 있었다. 눈이 밝아지고 오장육부가 씻기는 듯 했다. 아- 흐르는 것은, 흐른다는 것은 저러하구나! 선현의 말씀이 체화되는 순간이었다.
강 길을 걷는 행복
지난 주 경북 봉화의 ‘예던길’을 걷고 왔다. 예던길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젊은 날 입신을 위해 즐겨 걸었다는 옛길이다. 퇴계는 노년이 되어서도 학문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이 길을 걸었고, 세상을 뜬 후에는 제자들이 먼 길을 찾아와 옛 스승을 추억하며 걸었다고 한다. 예던길은 ‘다니던(가던) 길’이란 뜻으로 선현들이 걸었던 길이라는 의미다. 예던길은 봉화군 명호면의 이나리 강변에서 선유교, 백용담, 오마교를 거쳐 청량산 입구까지 9.5km 이어진다.
낙동강을 따라 난 이곳의 35번 국도는 세계적인 여행정보지 미슐랭 그린가이드가 유일하게 별을 준 한국 최고의 길이다. 미슐랭의 길눈이 예던길을 보았다면 아마 별 몇 개를 더 주었을 지 모른다. 걷고싶은 길의 조건이 흙길, 자연미, 정취, 이야기, 도반이라고 할 때, 예던길은 이 모두를 갖추고 있었다. 걷고 난 느낌이 어찌나 좋았던지 아직도 발끝이 저릿하고 가슴이 쿵쾅거린다. 트래킹에 참여한 부산 북구 맨발동무도서관 도반(道伴, 길동무)들은 낙동강이 안겨준 만추의 선물 꾸러미를 받아안고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예던길 중간 지점인 선유교(仙遊橋)를 건너자 백용담의 절경이 다가왔다. 선유교는 신선이 노니는 출렁다리이고, 백용담은 흰용이 산다는 소(沼)이다. 이제 본격 청량산 자락이다. ‘그림 속을 걷는다’는 말이 어떤 경지인지 실감났다. 470여 년전 퇴계의 느낌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죽마고우 이문량을 기다리다 밝아오는 풍광 앞에 더 이상 지체 할 수 없었던 퇴계는 시 한 수를 짓고 먼저 출발했다.
‘나 먼저 그림 속으로 들어가네/푸르다 못해 옥빛이 눈부신 백용담 소에…’.
태백 황지에서 시작된 낙동강은 봉화 협곡을 거쳐 40~50㎞ 울렁출렁 흐르다 백용담에서 한 숨을 고른다. 명경지수에 청량산의 ‘山자’ 봉우리들이 거꾸로 빠져드니 그대로 자연예술이다. 산과 강의 기묘한 조화에 넋이 빠져 있는데, 저만치에서 이쁜 새들이 쪼르르 물길을 가르고 달려왔다. 호사비오리였다. 앞서 본 비오리보다 한층 더 호사스러운 새였다. 동행한 생태사진가 백한기 씨의 설명에 의하면, 호사비오리는 천연기념물 448호로 우리나라에서는 번식하지 않는 겨울철새다. 머리 뒤에 긴 뿔깃을 가진 이 멋쟁이 새는 물 흐름이 살아있는 맑은 강에서 서식하며 지구상에 2,000마리 정도 남은 희귀종이다. 환경에 민감한 호사비오리가 나타났다는 것은, 낙동강 상류 청량산 일대의 자연성이 살아있다는 신호다. 호사비오리는 낙동강의 희망 메신저였다.
강과 길, 그 흐름에 대한 통찰
청량산은 계절을 가리지않는 명산으로 선비들이 특히 좋아했다. 퇴계는 어느 누구보다 청량산을 아끼고 사랑했다. 청량산을 ‘오산(吾山)’이라 일컫고, 자신을 ‘청량산인(淸凉山人)’이라 했으며, ‘청량산가’ 등 많은 시문을 남겼다. 퇴계 사후 청량산은 퇴계 성리학의 성지가 됐다.
퇴계는 청량산을 드나들며 낙동강의 흐름과 본질에 다가가려 애썼다. 퇴계가 쓴 ‘관란헌(觀瀾軒)’이란 시는 흐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넘실넘실 흘러가는 저 이치 어떠한가(호호양양리약하·浩浩洋羊理若何)/”이와 같구나” 일찍이 성인께서 탄식하셨네(여사증발성자차·如斯曾發聖咨嗟)/본래부터 도의 본체 이것으로 볼 수 있으니(행연도체인자견·幸然道體因自見)/공부 중간에 끊어지는 일 없게 할지어다(막사공부간단다·莫使工夫間斷多)’
28자 짧은 한시지만 유학 경전의 가르침이 행간에 녹아 있다. ‘관란’이란 ‘여울목(瀾)을 본다(觀)’는 뜻으로 ‘맹자’에 나온다. 물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흐르는 여울목이 제격이라는 얘기다. 퇴계는 “강은 끊임없이 흘러야 하고 밤낮을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는 흐름이 곧 도(道)라고 말한다.
일행은 청량산 입구의 한 펜션에서 하룻밤을 잤다. 낙동강 강물소리가 밤새 창틀을 넘나들며 찰랑거리고 조잘댔다. 흐르지 않는 침묵의 강만 봐온 하류 사람들에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트래킹을 돌아보는 오붓한 시간, 누군가 반칠환 시인의 ‘냇물이 얼지 않는 이유’를 낭송했다. ‘…냇물이 다 얼면 왜가리 다리도/겨우내 갈대처럼 붙잡힐 것이다//어서 떠나라고/냇물이 말미를 주는 것이다//왜가리는 냇물이 다 얼지말라고/밤새 외다리 담그고 서 있는 것이다’.
밤이 깊을수록 강물소리는 더욱 세차게 울려퍼졌다. 강은 잠들지 않았다.
청량산 휘감은 낙동강 운무
우리 일행 몇 명은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청량산에 올랐다. 천년고찰 청량사 가는 길은 어둠과 운무에 휩싸여 있었다. 어둡살을 밟고 산 중턱에 이르자, 낙동강의 운무 군단이 청량산 계곡으로 슬그머니 진군하고 있었다. 척후병도 없는 상태에서 일행은 각개약진했다. 판타지 같은 몽환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청량사 유리보전 뒤쪽에 병풍처럼 우뚝 솟은 연화봉에 햇살이 투사되어 은빛 광채가 피어났다. 산과 강, 햇살, 사람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유리보전의 부처가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하산길, 청량산 입구 광석나루에 이르자 운무가 서서히 세력을 줄였다. 흐르는 낙동강이 운무를 거둬들이자 물 흐름이 다시 두드러졌다. 어제 본 흐르는 강의 모습 그대로였다.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잡념과 상념은 밀쳐두었다. 낙동강의 여러 문제들, 가령 녹조사태나 대형 보, 하굿둑, 그 속에 갇혀 신음하는 강, 수많은 공단, 식수원 위기, 이·치수 갈등 이런 것들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 그저 강을 바라볼 뿐이었다. 스스로 쉼없이 흘러 자연이 되는 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