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변화가 필요하다
-대리운전 고객들의 피해
대리운전 업체들이 늘어나고 대리운전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별 의심 없이 대리운전을 이용했다가 피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산 금정구 구서동에 사는 나재욱(43) 씨는 최근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신 뒤 주점 측에 대리운전기사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나 씨는 평소 1만원에서 2만원 수준이던 대리운전비가 일명 ‘업소콜'이 적용돼 4만원이나 나오자 당황스러웠지만 원래 업소콜은 비싸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요금을 지불했다. 업소콜이란 주류를 판매하는 업소에서 특정 대리운전회사와 계약을 맺고 고객을 연결해 주는 것을 말하며, 연결을 해주는 대가로 중간에서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에 정상 대리운전가격보다 훨씬 비싸다.
회사원 김태경(32) 씨는 2주 전 부산시 남구 대연동에서 회식을 한 뒤 사상구 감전동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대리운전기사를 불렀다. 며칠 뒤 과속범칙금 6만원을 내라는 고지서를 받고 확인해보니 그날이 바로 대리운전을 부른 날이었다. 하필 그날따라 ‘길빵'에 걸려 하소연을 할 곳도 없었다. 길빵이란 술집 근처에서 대기하다 대리운전이 필요한 취객에게 접근하거나, 차주가 부른 업체의 운전기사인 것처럼 속여 대리운전비를 가로 채는 신종 탈법영업이다. 김 씨는 “어쩐지 부른지 2,3분도 안 돼 도착한 것이 의아했다”고 말했다.
이용요금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다.
부산시 북구 금곡동에 사는 정혜경(33) 씨는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친구들과의 모임을 가진 뒤 대리운전을 불렀다. 부산 전지역 1만원에서 1만 5천원이라는 광고를 보고 대리운전기사를 불렀지만 집에 도착한 뒤 내야하는 요금은 3만원이었다. 외각 지역이라 기본요금 2만원에 집이 같은 방향인 친구 2명의 요금도 각각 5천 원씩 계산한 것이다. 정 씨는 “처음부터 요금안내를 해줬다면 이렇게 불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이 같은 방향이라 친구들과 같이 타고 온 것뿐인데 그것도 돈을 받는게 정당한 건지도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현재 전국의 대리운전업체 수는 약 6000여개. 대리운전자는 약 8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대리운전에 대한 요금과 대리운전자 교육에 대한 기본법이 정해져 있는 않은 상태라서 이 모든 것들이 허술하게 업체 자율에 맡겨져 있다.
한국대리운전협회 측은 “고객 대부분이 음주 후에 대리운전을 부르기 때문에 취한 상태에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다. 믿을만한 업체를 정해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대리운전사에게 개인 소지용 대리운전보험증권을 요구하면 운전사의 성명은 물론 사고 시 보상 내역, 보험 유효기간 등도 확인할 수 있다.
-대리운전 사건 사고, 무보험의 위험까지
5월 25일자 노컷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부산 연제경찰서는 부산의 한 대리운전업체 직원인 장모(48) 씨를 지난달 28일 북구 화명동의 한 할인점 앞길에서 차주가 잠들어 있는 아반테 승용차에 침입해 270만원 상당의 노트북과 현금을 훔치는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9백 여만원을 훔친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3월 31일자 매일신문의 보도에서는 지난 1월 김 모(44) 씨가 대리운전을 이용하다가 대리운전기사가 편도2차로에서 비보호 좌회전하면서 김 씨 차와 버스가 충돌하여 차가 대파되었고, 차량수리비가 천만 원이나 나왔지만 대리운전기사가 무보험이었기 때문에 단 판 푼의 보상금도 받을 수가 없었다는 무보험 피해 보도를 전하고 있다.
대리운전기사 10명 중 6명이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대리운전의 하루 평균 사고건수는 택시에 비해 배 가량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국무조정실, 건설교통부, 경찰청 등이 한국교통연구원에 의뢰해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이낙연(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승용차 대리운전 실태분석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대리운전과 관련된 각종 사고가 잇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지난해 전국 6681개 업체에 8만 2949명의 대리운전기사가 종사하는 것으로 집계했으며 이 중 대리운전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3만772명(37%)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또 지난해 4월에서 7월사이의 대리운전 사고건수는 2146건으로 1만㎞당 평균 8.5건의 사고가 발생, 택시(4.7건)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
- 대리운전, 변화가 필요해
외국의 대리운전은 정부에서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고 요금도 정액제나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대리운전은 대리운전기사가 2인 1조로 구성되어 있다. 대리운전기사 1명이 고객의 차를 운전하고 나머지 1명은 업체의 자동차를 몰고 가 운전이 끝난 뒤 함께 영업소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일본의 대리운전 기본요금은 2600엔(약 2만1700원)으로 택시(660엔·약 5500원)에 비해 4배 정도 비싸다. 운행 요금의 경우 대리운전은 km당 450엔(20km 이내일 경우)이고 택시는 274m마다 80엔(약 668원)씩 계산된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지난해 대리운전 사업자는 총 5706개 업체에 운전기사 6만 2457명, 차량 2만 2922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의 대리운전기사는 관련법에 따라 운전대행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고 사전에 이용자에게 운행 요금을 설명한 뒤 야광으로 된 ‘대리운전' 표지를 설치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 엔(약 418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미국은 2명 이상의 음주자 그룹에서 1명이 술을 마시지 않고 나머지 그룹의 사람들을 데려다 주는 ‘지명 운전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뉴욕에서는 가입비 45달러(약 4만 원)를 내고 매회 38달러(약 3만 4200원)를 지불하는 멤버십 대리운전제도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객들의 피해와 불편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와 보험회사에서 ‘대리운전 보험 가입 인증 확인서비스'등을 실시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대리운전자의 사진과 보험가입 여부 등을 휴대폰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처럼 대리운전사업이 대형화되어가고 있지만, 고객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대리운전에 대한 정부의 엄격한 관리와 고객이 피해상황에서도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는 법제정이 시급하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