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핸들 못 놓는 고령 운전자들의 속사정

국내 면허 반납 제도, 자진 반납률은 매년 2% 수준 선진국도 규제... 운전 능력 기준으로 안전 확보 필요

2023-07-01     취재기자 이서원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가 늘면서 고령 운전자들의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일정 나이가 지나면 면허를 반납하는 제도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실제 고령 운전자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건강 관리 정도에 따라 충분히 안전하게 운전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핸들 못 놓는 어르신들 속사정

개인택시기사 전광영(76, 경남 양산시) 씨는 70대의 나이에도 매일 팔굽혀펴기 100개, 등산 등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건강을 유지해 운전대를 오랫동안 잡기 위해서다. 그는 "자기 관리를 어느 정도 했는지가 중요하다"며 "인지 능력을 유지하려고 등산을 비롯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운전자 스스로가 자신의 몸 상태를 제일 잘 알고, 청력이나 시력에 문제가 생겨 운전에 피해를 줄 정도면 알아서 운전대를 놓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렇게 영업용 차량을 운전하는 고령자들은 일자리 또한 문제이다. 전광영 씨는 "택시를 관두면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내가 이 나이에 갑자기 새로운 직업을 삼을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운전을 관두면 무슨 일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세가

도시 사람은 모르는 노인 운전의 현실

현재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현재 시행 중인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 제도에서 자진 반납률은 매년 2% 수준에 그친다. 농·어촌 지역에서는 반납률이 더 떨어진다. 농·어촌 지역에서 고령자의 운전면허 반납률이 특히 낮은 이유는 "차 없인 사실상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농사일을 하는 김경환(68, 경남 남해군) 씨는 "밭에 일하러 갈 때 버스를 타고 어떻게 물건을 옮기겠냐"며 "논까지 트랙터나 경운기를 실어 옮길 때도 화물차가 필요한데 면허를 반납하라는 것은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하소연했다.

병원을 가기도 쉽지 않다. 김경환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 버스를 타려면 15분은 족히 걸어 나가야 하는데 조금만 걸어도 힘이 드셔서 중간중간 쉬어 가셔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여전히 '운전'을 대체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운전면허를 반납하지 않겠다고 해서 고령운전자들이 운전을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경환 씨는 "점점 더 운전하기가 힘들어 밤에는 운전은 안 하려고 한다"며 "시내로 잘 나가지도 않고 조심해서 운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어쩔 수 없이 운전하는 것이지 나이 들어서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고 덧붙였다.

해외의 다양한 ‘고령운전 제도’

고령 운전자의 사고 위험이 커지는 현상은 우리나라 만의 일이 아니다. 노인이 되면 반응 속도가 느려지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등 운전에 중요한 신체·인지 능력이 저하된다. 이 때문에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나라들은 고령 운전을 규제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미국은 주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대부분 고령 운전자 안전 규제(Senior Drivers regulation)가 있다. 의사가 작성한 건강 진술서를 제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운전할 수 있는 신체 상태라는 사실이 명시돼야 한다. 신체 일부분이 불편하거나 손실됐는지, 기억력이나 유연성에 이상이 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면허증 갱신 전 1년간 발작 이력이나 장애 이력 등도 확인한다.

일찌감치 초고령 사회로 진입한 일본은 지난 2004년부터 고령자 운전 관련 다양한 대책에 전념했다. 현재 70세 이상 운전자부터는 고령자 강습을 수강해야 하고, 75세 이상은 인지 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71세 이상은 면허 갱신 기간을 3년으로 단축했다. 그리고 최근 3년간 도로교통법 위반 경력을 확인해 '인지 기능 저하 우려' 항목이 포함된 사람은 별도의 운전기능 검사를 받도록 하고 이를 통과해야 면허증을 갱신해 주는 방식으로 바꿨다. 치매 우려가 있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를 취소하거나 정지하는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EU는 2016년부터 고령 운전자와 관련한 보고서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회원국가들이 국내법과 제도에 맞게 적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오는 2050년엔 65세 이상 인구가 1억 4700만 명으로 EU 전체의 26%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도로 안전 규칙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는 회원국 간 고령 운전자의 면허 중지나 운전 제한 등을 명시한 통일된 협정 체결이 제안된 상태다. 의료진의 평가와 운전기능 시험 도입, 별도의 노인 운전자 대상 교육 프로그램 강화 등에 대한 내용이 핵심이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모두 75세 이상 운전자에 대한 별도의 검사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주는 75세 이상부터 매년 운전 적합성에 대한 의료 평가 및 운전 실기평가를 받도록 의무화했다. 운전 실기평가를 받지 않은 고령자의 경우 장거리 운전이 제한되고 지역 내에서만 운전 가능한 수정 면허를 발급받을 수도 있다.

뉴질랜드는 75세부터 2년 주기로 면허를 갱신 받도록 했다. 이때 의사의 운전면허용 진단서를 첨부해야 한다. 의사 판단에 따라 의학적으로 운전에 문제가 없더라도 안전 운전 능력을 담보하지 못할 경우 도로 안전 시험(On-road safety test) 통과 조건을 명시하기도 한다. 특정한 조건이 제시된 진단서를 발급받은 고령자에게는 한정면허가 발급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운전을 제한하기보다는 운전 능력을 기준으로 안전을 확보하는 현실적 보완책이 필요하다. 고령 운전이 무엇보다 운전자 본인과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면허 반납을 유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늘려가야 한다. 또한 면허를 반납하더라도 어르신들의 이동에 문제가 없도록 교통 인프라 확충 및 지원에도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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