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속 노인들의 피서지가 된 지하철... 정부가 냉방 복지 대책 강구할 때
이어지는 폭염으로 ‘지하철 피서’하는 노인들 증가 네티즌들 "이해가 된다" "민폐 같다" 반응 엇갈려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3일 오전 부산 부전역 앞 벤치. 부채질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노인들로 가득하다. 한쪽에서는 지하철 입구를 그늘 삼아 장기를 두고 있다. 매일 아침부터 모여 함께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 정오가 되자 점점 뜨거워지는 햇살에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각자 흩어지는 듯 하더니 모두 한 곳으로 향했다.
“삑, 감사합니다.” 한 노인이 개찰구에 카드를 찍자 들려오는 소리다. 노인들이 향한 곳은 바로 지하철이었다. 노인들은 지하철 대합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카드를 찍고 승강장으로 내려간 노인들은 차례로 지하철을 타더니, 노약자석에 앉아 다시 담소를 이어나갔다.
최근 부산지역의 체감온도가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지하철이 노년층의 피서지(?)가 되었다. 집에서 장시간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은 노년층에게 경제적 부담이 된다. 이에 전기세를 피해 지하철에서 폭염을 피하는 것이다. 65세 이상은 지하철 요금이 무료이기에 경제적 부담이 없는 점도 노인들이 지하철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부전역 앞에 있던 노인들도 부전역 근처 시장에 나왔다가 더위를 피해 지하철을 탄 것이었다.
강모(78,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돈 한 푼 제대로 못 버는데 집에서 하루종일 에어컨을 켜면 전기세를 어떻게 감당하겠나. 집 주변 경로당은 멀기도 하고 사람도 많아서 불편하다”며 “밖은 너무 더우니 시원한 지하철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강모 씨가 있던 열차 한 칸에는 승객의 절반이 노인들이었다. 그중 부산 지하철 1호선의 출발역인 노포역에서 지하철을 탄 노인도 볼 수 있었다. 김모(68, 부산시 금정구) 씨는 “집에는 선풍기 한 대 밖에 없는데, 그걸로는 도저히 이 더위를 버틸 수가 없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러 나와서 사람 구경도 하면서 종점역까지 왔다갔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어지는 폭염에 냉방 시설을 찾아 지하철로 향하는 노인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년층의 ‘지하철 피서’가 여름철 무더위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면서 "정부와 자방자치단체가 노년층의 냉방 복지 대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네티즌들은 “오죽하면 노인들이 지하철을 찾겠나. 노인들이 무더위를 편하게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며 안타깝다는 의견과 함께 “일부 노인들이 출퇴근 시간에 승차해 민폐를 끼친다. 차라리 무임승차를 폐지했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보였다.
지난 1일 보건복지부는 “무더위로 인한 독거노인 등 취약노인들의 피해 예방을 위해 폭염 대비 보호 및 지원대책을 강화하여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 5월부터 ‘폭염 대비 취약노인 보호대책’을 시행 중이다. 폭염특보 발효 시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전담인력(생활지원사)이 전화 또는 방문을 통해 서비스 이용 노인(총 50만여 명)의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폭염 대비 행동요령 및 건강수칙을 홍보하며 어르신들께 건강관리 안내를 강화하고 있다. 지자체와 함께 취약노인 보호대책 현황을 점검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폭염에 따른 노인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