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정찰제 놓고 빙과업계와 소매점, 폭염 속 공방
빙과업계 "덤핑 납품으로 출혈" 주장에, 소비자들 "아이스크림도 맘 놓고 못먹나" 반발
빙과업계가 ‘아이스크림 정찰제’ 시행에 들어가기로 해 유통업자, 소비자와 갈등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과연 정찰제가 자리잡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빙과업계는 가격경쟁에 따른 출혈 납품을 이유로 ‘아이스크림 정찰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현재 아이스크림은 ‘80% 할인,’ ‘10개에 5,000원!’ ‘아이스크림 1+1’ 등의 문구가 붙은 채 동네마트마다 다른 값에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 소매상점이 고객을 끌어모으는 미끼상품으로 아이스크림 할인제를 이용하자, 빙과업계는 비정상적인 상시할인에 따른 납품단가 하락으로 매출 실적이 악화하고 있다며 바 아이스크림에 권장소비자가를 표기해 빙과류 납품단가를 조정하는 특단의 조치에 나선 것. 실제로 롯데제과, 빙그레, 해태제과, 롯데푸드 등 빙과 4사의 지난달 매출 실적은 기록적인 폭염에도 전년 동기 대비 적게는 2%부터 많게는 7%까지 하락했다.
오픈프라이스제(open price: 제조업체가 상품 겉포장에 권장 소비자 가격을 표시하지 못하게 하고 유통업체가 최종 판매가격을 정해 매장 간 가격 경쟁을 하도록 한 것)가 2010년 빙과업계에도 도입됐지만, 이 제도는 시행된 지 1년 만에 유통업체 간의 담합으로 물가안정 효과를 보지 못하고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이후 가격 표시 여부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협의에 따르게 됐는데, 지금까지는 유통업체들의 주도로 대부분의 제품이 권장 소비자 가격 표기 없이 판매됐다.
현재 콘이나 홈타입 등의 아이스크림에는 권장 소비자 가격이 표시되어 있지만, 바 아이스크림은 가격 할인률이 높고 판매처의 반발이 심해 그동안 권장 소비자 가격을 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빙과류는 낮은 단가에 비해 냉동창고 보관 비용이 많이 들어 재고가 빨리빨리 소진돼야 하는 제품 특성상 유통업계의 입김이 센 대표적인 품목. 권장 소비자 가격이 표시되지 못하면 유통업계의 요구에 따라 덤핑 납품이 계속되고 이는 결국 제조업체의 출혈로 이어진다는 게 빙과업계의 주장이다.
빙과업계 관계자는 "가게마다 다른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 사이에서 빙과제품 가격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며 "권장 소비자 가격 표기로 유통질서나 시장이 건전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롯데제과는 ‘스크류바,’ ‘죠스바,’ ‘수박바’ 등 13개 제품, 빙그레는 ‘메로나’ 등 8개 제품, 롯데푸드는 ‘돼지바’ 등 12개 제품에 권장 소비자 가격을 넣기로 했다. 공식적으로는 이달 중에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이미 풀린 제품이 소진되는 9월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가격이 표시된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각사 제품별 가격 차이는 다소 있지만 대다수 제품이 800원 안팎으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권장 소비자 가격 책정에 반발하고 있다. 소매점 등에서 더는 아이스크림 할인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상에서도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각종 커뮤니티 게시글에는 “빨리 집 앞 슈퍼 아이스크림 털어와야겠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단통법이네, 단통법. 대한민국은 국민이 뭘 싸게 사는 걸 못 봐요”라며 탄식했다. 또 “이럴 바에야 주스나 커피를 먹겠다,” “배스킨라빈스 가겠다”며 아이스크림 대신 다른 음료와 간식을 먹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소매상 역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부산 부산진구에서 소형 슈퍼를 운영하고 있는 정모(51) 씨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가격을 200원 이상 올리면 누가 아이스크림을 사 먹겠느냐”고 불만을 표했다.
이처럼 할인 행사가 사라지면서 당장 소비자들이 가격이 올랐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는 지적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권장소비자가 표기는 가격 정상화 조치”라며 “가격 정상화가 이뤄지고 나면, 품질 향상에 신경 쓸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선순환 구조가 갖춰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