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에서 한 시대를 지배한 천재 타자들의 몰락... 트라웃의 손목 부상에서 푸홀스의 무릎 부상 뒤 침몰이 어른거린다
알버트 푸홀스의 '위대한 10년' 평균 41홈런, 123타점, fWAR 7.7 대기록은 MVP 수준의 활약 펼쳤다는 증거 족저근막염과 무릎수술 뒤 wRC+ 106, fWAR 0.7 기록으로 처참하게 몰락하며 리그 평균 수준 선수로 전락해 마이크 트라웃은 MVP 1위 3회, 커리어 평균 wRC+ 170 대기록 달성...푸홀스 이상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 평가 손목 골절로 시즌 반 날린 2023년 wRC+ 134 기록 그쳐...손목 정교함 사라지면서 임팩트 있는 스윙 힘들어져
2000년대 메이저리그를 지배한 타자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야구팬은 알버트 푸홀스(44)를 꼽을 것이다. 2001년 21세의 나이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한 푸홀스는 그해 신인상, MVP 4위를 차지했다. 첫해 뛰어난 활약으로 야구팬들에게 이름을 똑똑히 새긴 푸홀스는 메이저리그 2년 차에 MVP 2위를 차지했고, 2005년에는 첫 MVP를 수상한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푸홀스가 보낸 10시즌은 야구팬들에게 ‘위대한 10년’이라 불리게 된다.
푸홀스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적으로 타율 0.331, 출루율 0.426, 장타율 0.625, 41홈런, 123타점, wRC+ 169, fWAR 7.7을 기록했다. 보통의 메이저리그 타자가 선수 인생 중 한 번 기록할까 말까 하는 성적이다. 푸홀스는 이 엄청난 성적을 10년 동안 평균적으로 기록했다.
wRC+와 fWAR는 타율, 홈런같이 대부분 사람이 잘 알고 있는 타격 지표는 아니다. wRC+와 fWAR은 ‘세이버메트릭스’라는, 통계학의 시선으로 접근하는 야구의 기록 계산법이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숨은 보석 찾기와 비슷하다. 타율, 홈런, 타점이 낮아도 왠지 잘하는 것 같은 타자들이 있다. wRC+와 fWAR은 이런 타자들의 정확한 가치를 알아내기 위해 사용된다. 먼저 wRC+와 fWAR, 두 지표에 대해 알아보자.
wRC+는 Weighted Runs Created의 줄임말로, 우리말로는 ‘조정 득점 창출력’이라 불린다. 현재 wRC+가 타자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정확한 타격 지표다. wRC+는 리그 평균을 100으로 놓고 시작한다. 타자가 wRC+를 110을 기록하면 리그 평균 타자들보다 10% 더 득점 생산을 한 선수, 90을 기록하면 평균보다 10% 더 득점 생산을 하지 못한 선수라는 의미다. 쉽게 말해 wRC+는 그 타자의 타격 실력을 수치로 알아보기 쉽게 표현한 것이다. wRC+ 140을 기록하면 리그 최상위 타자라 평가받고, wRC+ 160을 넘기면 리그에서 한 손에 꼽히는 타자로 평가받는다. 푸홀스의 10년 wRC+ 평균이 169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타자였는지 wRC+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fWAR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먼저 WAR을 이해하고 가야 한다. WAR은 Wins Above Replacement의 약자로, 우리말론 ‘대체 수준 대비 승리기여도’라고 불리는 지표다. 쉽게 얘기하면 그 선수가 팀 승리에 얼마나 공헌하였는가를 종합해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WAR이 3이면 그 선수는 팀에 3승을 더 가져다 줬다는 뜻이다. fWAR은 메이저리그 통계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에서 제공하는 WAR 지표라서 앞에 f가 붙는다. fWAR을 기준으로 6 이상을 기록하면 리그 MVP 수준의 선수라는 뜻인데, 푸홀스의 10년 평균 fWAR은 7.7이다. 그는 10년 내내 MVP 수준의 활약을 펼쳤다는 뜻이다.
위대한 10년을 보낸 푸홀스는 2011년에 MVP 5위, wRC+ 147을 기록했다. 푸홀스 치고는 다소 아쉬운 성적이다. 이 시즌을 끝으로 푸홀스는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작별했다. 이후 푸홀스는 LA 에인절스와 10년 2억4000만 달러의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이때까지 푸홀스가 보여준 성적에 걸맞은 계약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푸홀스는 이 계약 후 완전히 다른 선수가 돼 버렸다.
푸홀스는 LA 에인절스에서 8년(2012년~2019년) 동안 평균적으로 타율 0.258, 출루율 0.314, 장타율 0.450, 26홈런, 93타점, wRC+ 106, fWAR 0.7을 기록한다. 2011년까지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들과 비교되던 푸홀스가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단순한 에이징 커브라고 보기에는 그 추락이 너무나도 크다. 푸홀스는 왜 이렇게 몰락하고 말았을까.
푸홀스는 2004년부터 족저근막염을 앓았다. 발바닥에 염증이 생기는 족저근막염은 한 번 발병하면 잘 낫지도 않기 때문에 운동선수에게 있어 타격이 크다. 푸홀스가 은퇴할 때까지 족저근막염은 계속됐다. 거기다 2013년에는 무릎 수술을 받았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선수에게 무릎 수술은 치명적이다. 이후 푸홀스는 무릎 때문에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자주 올렸다.
무릎과 발바닥은 타자에게 있어 중요한 부위다. 하체가 좋지 않으면 타자의 밸런스가 무너진다. 뛰어난 타격 기술보단 타고난 신체 능력으로 타격하던 푸홀스는 자신의 밸런스가 부상 때문에 무너지게 됐다. 넓은 스탠스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밸런스를 잡고, 큰 스탭 없이 간결하게 스윙하는 푸홀스는 신체 중심을 아주 완벽히 통제하던 타자였다. 밸런스가 무너진 푸홀스는 자신의 스윙이 제대로 나오지 않게 됐다. 자신의 스윙을 잃은 야구 선수는 총 없이 전쟁터로 보내진 군인과 같다. 여기다 신체 노화까지 겹쳐 푸홀스는 리그 평균에 지나지 않는 타자가 돼 버렸다.
푸홀스 이후 2010년대를 지배한 타자를 꼽으라면 이견 없이 마이크 트라웃(32)의 이름이 거론될 것이다. LA 에인절스에서 2011년에 데뷔해 2012년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낸 트라웃은 그해 신인상과 MVP 2위를 차지했다. 이후 트라웃은 리그를 지배했다. 트라웃은 2019년까지 매년 MVP 4위안에 들었다. 부상으로 114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한 2017년에도 MVP 4위를 기록했다.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는 트라웃은 최근 2년(2022년~2023년)부터 야구팬들의 걱정을 사기 시작했다.
트라웃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평균적으로 타율 0.308, 출루율 0.422, 장타율 0.587, 35홈런, 92타점, wRC+ 174, fWAR 7.6을 기록했다. 푸홀스, 어쩌면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던 트라웃이다. 그러나 트라웃은 최근 2년간 타율 0.275, 출루율 0.368, 장타율 0.572, 29홈런, 62타점, wRC+ 155, fWAR 4.5를 기록했다. 최근 2년간 보여준 성적 또한 리그 최고 수준의 타자지만, 트라웃이라는 이름값에는 다소 아쉬운 성적이다.
2012년부터 2016년 동안 평균 154경기를 출장하던 트라웃은 2017년 손가락 부상으로 114경기 출장에 그쳤다. 이후 트라웃은 141경기 이상 출장한 적이 없다. 2017년부터 잔부상을 치르던 트라웃은 2021년 5월 17일 종아리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됐고, 2022년에는 허리 부상으로 뜨문뜨문 결장해 119경기에 그쳤으며, 2023년에는 손목 골절로 시즌 반을 날렸다.
트라웃은 부상으로 경기를 빠져도 출장했을 때는 리그 최정상급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3년은 달랐다. 부상이 있어도 wRC+ 170을 넘나들었던 트라웃은 2023년엔 고작 134에 그쳤다. 다른 선수가 wRC+ 134를 기록했다면 리그에서 주목받았겠지만, 커리어 평균 wRC+가 170인 트라웃에겐 wRC+ 134는 실망스러운 수치다. 거기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 성적도 떨어졌다. 에이징 커브가 왔다는 신호일까.
에이징 커브가 오면 신체 노화로 인해 반응속도가 느려진다. 반응속도가 느려지면, 빠른 볼에 대처가 힘들어진다.
2022 시즌까지만 해도 트라웃은 직구를 상대로 타율 0.285, 장타율 0.606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3 시즌에는 직구 상대로 타율 0.254, 장타율 0.481에 그쳤다. 게다가 트라웃을 상대로 상대 투수들의 직구 구사율도 살짝 늘어났다. 2023 시즌엔 82경기밖에 출장하지 않았다. 120경기 가까이 출장했다면 직구 구사율은 더 높아졌을 것이고 그만큼 직구 상대 성적도 좋지 않았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직구 평균 구속도 해를 거듭할수록 빨라지고 있다. 투수들이 제일 많이 던지는 구종도 직구다. 트라웃이 예전 모습을 되찾으려면 빠른 볼 대처 능력을 되돌리는 게 1순위다.
트라웃의 손목 부상이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 것인지도 지켜봐야 한다. 족저근막염이 푸홀스를 선수 생활 내내 괴롭혔던 것처럼, 손목이 트라웃의 남은 선수 생활을 괴롭힐 수도 있다. 타자에게 있어 손목은 정교함이다. 손목은 미세하게 배트를 움직여서 컨택을 조금이나마 더 좋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트라웃은 강하고 빠른 몸통 회전으로 임팩트 있는 스윙을 한다. 트라웃의 단단한 손목 힘이 스윙의 임팩트를 완성해 줬다. 손목 부상이 만성 통증으로 이어진다면, 트라웃은 자신의 스윙을 잃어버릴 것이다.
2017년부터 장타를 노리는 방식으로 타격 스타일을 바꾼 트라웃은 3할대 타율에서 내려왔다. 트라웃이 장타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타율은 계속해서 내려갈 것이다. 즉 배트에 공을 맞힐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이고, 이는 의미 있는 타구가 나올 확률이 낮아짐을 의미한다. 즉 트라웃의 wRC+ 하락을 불러올 것이다.
그래도 트라웃은 계속해서 리그 정상급의 성적을 보여줄 것이다. 야구팬들이 걱정하는 부분은 더 이상 예전 트라웃의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리그를 압도하는 것을 넘어 파괴하는 수준의 성적을 보여주던 그 트라웃은 이제 끝났을지도 모른다.
푸홀스의 몰락은 32세부터 시작됐다. 공교롭게도 2024 시즌을 맞이하는 트라웃도 32세다. 저번 시즌에 확연한 하락을 보여준 트라웃이다. 천재 타자 마이크 트라웃은 이번 시즌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예전처럼 리그를 파괴하던 그 트라웃의 모습일까. 아니면 앞 시대의 천재 타자 알버트 푸홀스처럼 서서히 몰락하는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