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에 대처하는 학생대표들의 자세
11월은 대학들이 대학자치의 ‘꽃’이자 축제의 장인 학생회 선거로 새로운 한해를 기약하는 달이다. 학과부터 단과대, 총학생회까지 학생대표를 지원하는 많은 학생들이 후보자로 등록해 선거 준비에 한창이다.
임기 1년의 학생대표지만 기성 정치조직과 마찬가지로 임기말 리더십 약화, 즉 레임덕 현상을 겪는다. 학기 초엔 회장의 말 한마디에 각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지만 요즘은 회장이 아무리 힘주어 지시해도 조직원들이 나몰라라하는 태도를 보인다.
얼마 전 경성대학교 멀티미디어대학 학생회는 차기 대표 선출을 앞두고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멀티대 회장 김성완씨(27)는 오랜만에 각과 회장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한껏 기분이 들떠있었다. 김씨는 한해를 되돌아보고 단합을 도모하자는 의미로 회장들에게 회장단 엠티를 제의했다. 이전 같았더라면 엠티 기획에 신이 나서 한명씩 의견을 말하기에 정신이 없었을 것인데, 이날은 분위기가 달랐다.
광고홍보학과의 회장은 “학과일도 정신이 없는데 무슨 엠티냐, 바쁘다”고 했고, 미디어학과의 회장은 “단합은 학기 초에 진작에 제대로 했어야 한 것 아닌가, 다 끝이 난 마당에 무슨말이냐”라며 회장의 뜻에 따라주지 않았다. 심지어 한 학과의 회장은 “진작에 잘하지 이제와서 무슨 단합이냐, 우리 단대는 김회장이 말아먹었다. 그래서 국밥 멀티대다”라는 등 노골적인 비판 발언으로 그 자리에 있던 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회장들의 이러한 반응은 학기 초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A학과 재학생들의 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벌어진 일 때문에 티격태격중인 회장과 부회장이 있었다. 학기 초에 A학과의 학생들은 모두 회장과 부회장 선거에 나올 기세로 적극적이었다. 그런데 학기 말이 되면서 선거시기가 되자 학생들은 학과 선거를 남일 보듯 여기는 것이었다. 결국 이 학과는 부회장 후보가 나오지 않았고, 회장은 자신의 친구를 후보자로 등록했다.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에 부회장은 크게 반발했고, 이것이 다툼의 시작이 된 것이다. 이런 레임덕 현상은 다른단과대, 다른학교도 마찬가지다.
동의대학교에 사회복지학과 회장 박동영씨(24)는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과 대표의 영이 안선다”며 푸념이다. 박씨가 학회장을 처음 시작할 때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의 행사 참여율이 거의 100%였다. 그런데 2학기가 시작되면서 학과의 분위기는 1학기 때와는 사뭇 달라졌다. 학생들의 참여율이 급격히 줄었을 뿐만아니라 학생회 집행부원들 조차도 비협력적 태도로 변했다. 그는 “2학기 학과 행사를 진행하려해도 1학기만큼 학생들이 관심이 없다. 참여를 독려해도 자신들과는 상관 없는 일인양 넘겨버린다”고 했다.
한편 레임덕 현상이 심화되면서 퇴임하는 학생대표들은 차기 대표 후보들에게 공연히 ‘심술’을 부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일도 흔히 빚어진다.
올해 경성대 멀티미디어대학 회장 후보에 출마하는 P씨는 총학생회에 후보자 등록을 하러 갔다가 기분이 잔뜩 상했다. 사진 한 장을 실수로 빠뜨려서 곧장 다시 총학생회에 제출했는데 총학생회장이 한참동안 꼬투리를 잡고 늘어진 것이다. P씨는 “천벌 받을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초면인 사람에게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순 없을 것이다”라며 “임기가 다해 서운한 마음이 있겠지만 차기에게 더욱 따뜻하게 하는 것이 마지막을 보람차게 끝내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상경대 회장 남성구씨(27)는 자신이 작년에 후보자 등록을 할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총학생회가 범하는 태도는 어느새 악습으로 대물림 되고있다”며 “악습은 중간에서 끊고 좋게 이어 나가야하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구에 위치한 영남대학교도 학생회 선거가 진행 중인데, 총학생회의 지나친 선거감시로 총학생회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총학생회장에 출마하는 A씨는 “지금 총학생회장과 그 무리들이 선거운동본부에 한번 다녀가면 쓰나미가 몰아친 것 같다”며 “선거벽보, 공약, 운동원들의 인원까지 체크하면서 모든 작업을 처음으로 돌려 놓고간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심술이 마지막 권력인양 횡포를 부리는 학생대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절름발이 오리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자신의 권력을 차기 대표들을 위해 쓰는 회장들도 있다.
김성완(27*멀티대회장)씨와 심아름씨(23*시각디자인학과회장)는 자신들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다음 회장들에게 줄 예정이다. 바로 투표율이다. 대학교의 학생회 선거는 보통 대학생들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못해 일반적으로 투표율이 낮다. 어떤 때는 과반수미달로 재투표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 때문에 김씨와 심씨는 학생회를 위해 마지막 봉사를 한다는 심정으로 학생들의 투표를 독려하느라 바쁘다.
그들은 11학번 새내기들을 볼 때마다 “23일 선거있는거 알지? 투표를 해야 진정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이니 꼭 하길바란다”며 한마디씩 던진다. 신입생들은 회장들의 친근한 모습에 투표장에 바로 달려갈 기세를 보이며 대화에 응한다고 했다. 그들은 “선거 회칙에 때문에 내가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해줄 수 없으니 다음 회장에게 줄 것은 높은 투표율 밖에 없다”며 “내 최선을 다해 학생들에게 투표를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수희씨(22*동서대사회복지학과)는 “레임덕을 겪는 회장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 사람에게 심술을 부리는 것보다 그들을 위해 노력하고 뭔가 더 안겨주고 가는 회장들이 진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