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들 고달픈 삶에 차려진 '집밥' 같은 영화 <심야식당>

뒷골목 식당에 찾아드는 지친 사람에게 위로 안기는 '음식 마스터' 이야기 / 부산 광역시 강선지

2016-09-13     부산 광역시 강선지

헬조선, 개한민국. 

점점 각박해져 가는 우리 사회를 견디다 못해 비하하는 이런 단어가 유행할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은 힘들고 어렵다. 현대인들은 사회에서 받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의 하나로 음식 먹기에 탐닉하고 있다. 그 결과 웹툰, 음악, 드라마, 예능, 그리고 영화까지 현재 우리 사회는 음식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음식은 아주 중요한 삶의 한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음식으로 단순히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흔히들 말하는 먹방(먹는 방송)과 쿡방(요리하는 방송) 같은 문화 콘텐츠를 통해 대리만족과 위안을 느끼는 차원으로까지 나가고 있다. 음식이 그저 식욕을 채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고 힐링의 수단이 됐다.

그런 면에서 일본 영화 <심야식당>은 지치고 힘든 현대인들을 달래줄 수 있는 좋은 영화다. 불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도심 속 좁디 좁은 골목길의 한 가게. 가게 이름은 ‘밥집.’ 기껏해야 7~8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이 허름한 가게는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식당이다. 메뉴는 돼지고기를 넣은 된장국 정식, 맥주, 소주, 그리고 사케 뿐. 그 외에 손님이 원하는 음식이 있다면 ‘마스터’라 불리는 주인장이 재주껏 만들어 내어준다.

불빛으로 반짝이는 도심과 비교되는, 외지고 인적이 드문 골목길의 식당.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 밖인 이곳에는 식당과 꼭 닮은 손님들이 찾아온다. 게이바 사장, 조폭, 무명 사진작가, 형사, 사기당한 사람, 재난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실의에 빠진 사람 등 이 영화는 주로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가게 구석에서 발견된 납골함을 중심으로 식당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음식과 함께 하나씩 에피소드 형식으로 풀어가는 이 영화는 계란말이, 카레라이스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에 일상에서 평범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버무려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영화의 톤은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다. <심야식당>을 본 사람들은 모두 소박하고 심심한 영화였다고 이야기한다. 보통 영화는 나름의 개성이나 교훈 한 두개쯤은 내장해 두게 마련이지만 이 영화 자체에서 얻는 재미나 교훈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어쩌면 없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트레스를 풀고, 즐겁게 웃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며, 모든 등장인물이 행복해지는 속 시원한 결말을 보여주는 것도 아닌 영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아무런 말없이 음식을 만들어 주면서 위로해 주는 ‘마스터’처럼 지친 현대인의 상처를 조용하 치유해 주기 때문. 관객들은 어느새 영화에 빠져들어 각각의 에피소드에 잔잔하게 공감하며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쿡방, 먹방, 각종 요리 콘텐츠가 대세인 요즘, TV에 나와 저마다의 화려한 경력과 기술로 고급스러운 솜씨를 뽐내며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셰프들과는 다르지만. <심야식당>은 정성스러운 엄마의 집밥처럼 따뜻하고 힘이 나게 하는 그런 영화다. 만들어준 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꼭꼭 씹어 먹게 되고, 뱃속이 따뜻해지면서, 든든해지는 그런 집밥 같은 영화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교훈을 주는 영화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아무 생각 없이 쉬어갈 수 있는 쉼표 같은 이런 영화도 가끔은 삶에 지친 우리에게 위안이 된다. 잔잔하게,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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