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렌탈' 전성시대...정수기에서 자동차, 장난감, 그림까지
2만 4,000개 기업서 연매출 25조...'공유경제' 개념 확산따라 급성장 예측 / 조민영 기자
주부 김용숙(45,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 씨는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가 너무 많아 맘이 편치 않다. 식구가 많아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오면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 때문에 그만큼 비용도 더 내야 하고 냄새도 많이 나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중 그녀는 인터넷에서 음식물을 미생물로 처리해서 음식물 쓰레기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계가 있는 것을 보고 전문 업체로부터 음식물 처리기를 렌탈 신청했다. 김 씨는 한 달에 1만 5,000원을 내고 장기간 편리하게 음식물 처리기를 사용해서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과 고약한 냄새를 줄일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음식물 처리기를 사기에는 가격이 만만치 않고 일단 먼저 시험 사용해보고 싶단 생각에 렌탈해봤는데 정말 만족한다”고 말했다.
최근 물건을 사지 않고 빌려 사용하는 대여 서비스인 일명 ‘렌탈’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기침체로 인해 무조건적인 소비를 하기보다 필요한 것은 빌려 쓰고 필요 없는 것은 공유하는 소비 형태가 확산된 것. 또한, 새로운 모델, 디자인, 성능 등을 갖춘 제품들이 끊임없이 나오면서, 사용자들이 비싼 돈을 내고 구입하지 않고도 새 것을 사용하고 싶은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방법으로 렌탈이 성행하고 있다. 이같이 렌탈은 공유경제의 일부로서 활발하게 우리 생활 속으로 퍼지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렌탈 시장 규모가 약 25조 9억 원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렌탈한 물건을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모바일 앱 등의 첨단 기술로 관리해주는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2020년에는 약 40조 1억 원 규모로까지 렌탈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빌려 쓸 수 있는 물건 종류도 부쩍 늘었다. 오래전부터 렌탈이 가능했던 정수기를 비롯해서 공기청정기, 비데,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 컴퓨터, 노트북 등의 전자제품도 가능하고, 의류, 잡화, 가구, 자동차, 장난감, 그림 등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이 렌탈 대상이 되고 있다.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한국렌탈협회에 따르면, 국내 렌탈 기업 수는 2만 4,000여 곳이 넘고, 렌탈 상품 아이템 수는 수천 가지에 이르며, 계속해서 렌탈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이 빠르고 다양하게 늘 것이라고 밝혔다.
제품에 따라 렌탈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정수기의 경우, 최저 월 1만 5,000원에서 6만 원, 침대 매트리스는 최저 월 1만 5,000원에서 4만 5,000원의 요금이 든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수년 동안의 렌탈도 가능하다. 단기 렌탈과 장기 렌탈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대다수 장기 렌탈이 더 많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렌탈 기간 동안 물품에 따라 무상A/S와 유지관리, 세척 등을 관리 받을 수도 있다. 주부 박미란(65, 부산시 수영구) 씨는 비데를 렌탈해 사용하다 고장이 났다. 그녀는 렌탈한 제품 고장을 배상해 줘야 하나 걱정했는데, 렌탈 업체에 전화하니 무상으로 A/S 해준다 해서 안심했다. 박 씨는 “비데를 사용한 지 1년이 넘어서 무상A/S가 안될 줄 알았는데 A/S기간이 길어서 돈 한 푼 들지 않고 고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렌탈 시장의 성장에는 1인 가구의 증가가 한몫하고 있다. 혼자 사는 연예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연예인 장우혁이 혼자 사는 모습이 ‘미니멀 라이프’라 불리며 화제가 됐다. 미니멀 라이프란,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먹을 만큼의 음식만 준비하는 등 자신 1인에게만 필요한 최소한의 것으로 삶을 지내는 방식을 뜻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1인 가구 통계에 따르면, 1985년 66만 1,000명이었던 1인 가구가 2015년에는 506만 1,000명으로 약 8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자신만을 위한 합리적인 소비가 늘게 된 것. 직장인 김용호(43,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씨는 1인 가구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고 있어 집은 잠 잘 공간일 뿐이다. 집에 잘 있지 않는 그는 집에 필요한 침대나 정수기를 빌리기 위해 렌탈 서비스를 찾았다. 김 씨는 “물건을 사서 오래 간직할 필요가 없어서 렌탈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침대랑 정수기랑 합쳐서 한 달에 5만 원 정도 내면 관리도 해주고 깨끗하게 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렌탈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 데는 “사지 않아도 되니 한 번 써보세요”라는 렌탈 업체들이 내세우는 광고 문구가 한몫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도 가격이 비싸서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렌탈 서비스는 직접 써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그림 렌탈이다. 최근 급성장세를 보이는 그림 렌탈 업체 ‘오픈갤러리’는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그림 판매비용의 3% 정도의 가격으로 렌탈 서비스해 주고 있다. 전문 큐레이터를 보유해 고객들에게 그림을 추천해주고, 직접 방문설치해주고 교체해주기도 하며, 판매도 하고 있다. 오픈갤러리 대표 박의규 씨에 따르면, 일반 갤러리에서 판매되는 그림은 고가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소비하기 어려운데 그림 렌탈 캘러리들이 렌탈을 통해 국내 작가의 그림을 일반인들도 쉽게 집안을 장식할 수 있게 한다는 것.
렌탈 이용이 많아짐에 따라 부작용도 늘고 있다. 대학생 최은진(22, 부산시 금정구) 씨는 2년 전, 새로 나온 휴대폰을 싼 가격에 렌탈해준다는 말에 휴대폰을 바꿨다. 18개월 동안 쓸 수 있다는 계약서를 적었지만, 18개월이 지나 반납 날짜를 잊은 그녀는 렌탈 기간 초과로 기간을 초과한 날짜 동안의 요금을 두 배 이상 내야 했다. 최 씨는 “요금이 갑자기 많이 나와 통신사에 찾아갔더니 렌탈 기간을 초과해 요금이 많이 나온 거라는 말을 들었다. 렌탈 조건을 깜빡하고 폰을 반납 못 해서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렌탈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렌탈 이용 시, 약관과 계약서를 꼼꼼히 살피고 다른 렌탈 제품과 비교해 봐야 한다. 또, 유지·보수·관리와 같은 서비스 명목으로 요금이 더 붙는 경우가 있고, 장기간 렌탈의 경우, 구매 가격보다 렌탈 비용이 더 비싼 경우가 있으므로 따져 봐야 한다.
동아대학교 경제학부 양재호 교수는 우리나라의 렌탈과 같은 공유경제는 요즘 많이 하는 카셰어링이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공유경제가 우리나라 시장에 아직 확실히 자리 잡지 않았지만 매년 엄청나게 성장할 가능성이 많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