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화의 심장에서 한국문화와 부산의 매력을 한껏 뽐내다
[유라시아 부산 원정대 동참기③]대성황이룬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산데이' 축제 / 박현주 기자
7월 30일 부산 유라시아 원정대는 러시아의 여섯 개 도시를 거쳐 드디어 마지막 원정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이자 시역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예술 도시다. 부산처럼 러시아 최대 항만 도시라는 공통점을 발판으로 2008년 6월 11일 부산과 자매결연을 체결했다. 그 인연을 기념하기 위해 도착 다음날인 7월 31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렉산드롭스키 공원에서 ‘부산데이(BUSAN DAY)’ 행사가 열렸다.
기자가 속한 팀은 성공적인 부산데이 행사를 위해 출정 전부터 거듭된 회의를 거치면서 치밀하게 준비했다. 한국문화 체험 부스 운영을 맡은 우리 팀은 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 연날리기, 투호, 태권도, 축구 등으로 한국문화 체험 부스를 구성하고 운영했다. 안내판도 만들었다. 부산홍보관 운영팀은 부산데이 팜플렛을 배부하고 서예로 이름 써주기, 국기 방명록 적기, 딱지치기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어린이존 담당팀은 타투, 풍선아트, 한복 체험을 진행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대학생 대원들은 행사 당일 이른 아침부터 알렉산드롭스키 공원에 도착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을 맞을 준비를 서둘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은 유라시아 부산 원정 대원들이 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순식간에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친구, 연인,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이 부스, 저 부스를 오가며 행사의 다양한 재미를 누렸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과 고려인도 있었다. 한국 유학생 양은아(24) 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국 관련 행사가 이토록 성대하게 열리니 신기하고 반갑다”며 “행사의 구성이 매우 알차고 흥미로웠다”고 칭찬했다. 한여름의 햇빛이 내리 쬐는 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날 부산데이에 참석한 인원은 약 7,000여 명에 달했다.
기자가 속한 팀이 운영했던 한국문화체험관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인기가 많았다. 체험관 문을 열자마자 투호를 해보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 줄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단지를 빗맞고 튕겨나간 화살을 주워 다시 대기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기자와 원정 대원들의 발바닥에 불이 났다. 의외로 러시아 사람들은 투호를 제법 능숙하게 던졌는데 주어진 15개 화살을 모두 골인시킨 러시아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나타나기도 했다. 기자는 투호를 던지는 시민들에게 “하라쇼(좋다)!” “우다취(행운을 빈다!)” 등의 러시아 응원 구호를 외쳐주며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일정한 개수의 화살을 넣는데 성공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가져다 주니, 그들은 어감이 좀 어색하게 들리는 “쓰바씨바(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태권도 체험과 연날리기 프로그램도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됐다. 특히 태권도에 관심을 보이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았는데, 우리들은 그들에게 태권도복을 입혀주고 사진을 찍어주거나 태권도의 기본 동작 몇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준비한 송판에다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이나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의 이름을 적어 격파하는 재미있는 이벤트도 열었다. 시민들은 태권도 동작을 곧잘 따라하며 태권도를 한껏 즐겼다. 한편 부스 안쪽에서는 원정대 유기훈(27) 대원이 나누어주는 연을 받기 위해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넓은 공원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다 보니 아쉽게도 연을 날릴 형편은 되지 못했지만 참여 시민들은 저마다 자신의 소망이 적힌 연을 소중히 품에 안고 돌아갔다.
이날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문화 체험 프로그램은 축구. 2018년 개최되는 러시아 월드컵의 성공을 기원하며 기자와 대원들이 철물점에서 재료를 구해 손수 만든 축구 골대가 부산데이를 찾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처음엔 원정 대원들이 돌아가며 골리(골키퍼) 역할을 맡았는데, 나중에는 그마저도 러시아 꼬마 아이의 차지가 되었다. 자기들끼리 포지션을 정해 어울려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웠던지 그들 주위에 어른들이 모여들었다. 차기 월드컵 개최지 러시아의 축구 열기가 벌써부터 물씬했다.
다른 세 개의 부스에서도 부산데이를 찾은 시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홍보관 부스를 맡은 대원들은 행사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부산 소개에 최선을 다했다. 어린이 존에서도 아이들에게 다양한 모양의 풍선을 만들어주느라 대원들의 손가락이 부어올랐지만, 바쁜 손놀림은 멈출 줄 몰랐다. 대원들은 한복체험을 원하는 시민에게 한복을 입혀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당시 대학생 팀으로 행사 운영에 참여했던 소창일(26) 대원은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진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찾아주었을 때 한류의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2개월이 지난 지금도 부산데이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팀원을 도와 행사를 지원해준 부산시 국제통상진흥과 배홍권 사무관도 “러시아 시민들에게 한국, 특히 부산에 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유라시아 시대에 가장 중요한 통상국인 러시아와의 원활한 교류를 위해 담당자로서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내비쳤다.
이날 부산데이 행사 기념공연도 성황을 이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지 한인들은 호흡을 맞춰 한국 고유의 얼이 담긴 사물놀이 공연을 펼쳤다. 경쾌한 장단과 어우러진 그들의 춤사위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생동감이 넘쳤다. 부산데이를 구경하기 위해 러시아 다른 지방에서 이곳 상트페테스부르크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부산 출신 현지 한인들도 있었다. 이날 부산시립합창단의 공연도 있었는데, 오색 빛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단원들의 청아하고도 우렁찬 목소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울려퍼졌다. 러시아 시민들도 우리 국악의 멋과 흥에 취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부산데이를 찾은 러시아 언론인 나타샤(52) 씨는 “이제 ‘한국’하면 부산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며 “모든 것들이 정말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어서 열심히 취재해 러시아의 많은 사람들에게 부산이라는 도시를 기사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사물놀이 외에도 한인 현지 팀은 다양한 공연들을 준비했는데,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태권도. 오랜 시간 연습한 모양인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태권무를 펼치는 태권도 팀에게 뜨거운 한호가 쏟아졌다. 우리 예상 보다 러시아인들의 태권도에 대한 관심은 강렬했다. 음악을 곁들어 태권도를 춤으로 승화시킨 태권무는 러시아인들의 격찬을 받았다. 유라시아 부산 원정대와 함께 고된 원정길을 달려온 창원대 무용팀도 최선을 다해 한국 전통무용의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였다. 창원대 무용학과 정유영 교수의 노래에 맞춘 부채춤 등 우리 전통무용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도 박수로 호응했다.
K-POP의 위력은 부산데이 행사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무려 20개팀이 K-POP경연대회에 참가해 차례대로 K-POP 댄스를 뽐내자 축제 분위기는 클라이막스로 치달았다. 진짜 아이돌 그룹 못지않은 실력으로 디테일한 부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소화해 내는 러시아 출전 팀들에 관객들도 환호했다. 심사위원으로 무대를 지켜본 창원대학교 무용학과 권푸름(22) 대원도 “정부는 K-POP을 앞세워 외교를 펼쳐야 한다”며 “한국인보다 더 깊이 한국의 노래와 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러시아 사람들을 보니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오후 여섯시가 다 되어서야 부산데이는 끝이 났다. 이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부산에서 날아온 서병수 부산시장은 “환동해권의 거점도시, 북극항로의 출발도시, 동남해안벨트의 거점도시로서 부산의 역할이 미래 한국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부산의 유라시아 원정이 단순히 행사를 위한 행사로 일회성에 그쳐서는 안된다”며 “원정대 여러분들이 그 출발을 잘 끊어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관심과 노력을 계속 기울여 부산을 세계 교류의 중심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