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노래에 위안 받았다는 관객 편지 받고 행복했어요"
MBC <듀엣 콘서트>로 눈길 끈 박순호 씨...진주서 버스킹으로 가수 꿈 키워 / 홍윤대 기자
해가 저물고 하늘이 어스름한 빛으로 물들어 갈 때 쯤이면, 진주 경상대학교 후문에서는 한 젊은이가 매일 하루치의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다. 준비가 완료됐다는 것을 알리는 것마냥 깜깜한 공터에 줄지어 선 가로등에 일제히 불이 켜진다. 낙엽이 흩날리는 소리와 함께 가을밤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갑자기 추워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행인도,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길을 걷는 연인들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소리에 잠시 가던 길을 멈춘다. 한 곡이 끝나자, 고요하던 공터는 박수소리로 채워진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쑥스러운 웃음을 짓는 가수, 바로 대학생 박순호(26) 씨다.
박순호 씨가 버스킹 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지난 7월 15일 MBC에서 방영한 <듀엣가요제> 프로그램에 출연했기 때문이다. 그는 “방송 출연 전에는 보통 20명 정도 모여서 노래 부르는 것을 지켜봐 주셨는데, 방송을 탄 이후부터는 많으면 70명까지도 노래를 들어주신다”고 말했다. 덧붙여 “공연이 끝나고 나면 같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하거나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관객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심 기쁘다”고 말했다.
박순호 씨는 진주에 있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환경공학과 4학년 학생이다. 졸업을 앞둔 그는 어떻게 해서 <듀엣가요제>에 지원하게 되었을까? 그는 어릴 적부터 꿈이 가수였기에 노래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노래를 제대로 배울 수 없는 지리적 환경과 주위의 반대로 인해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꿈을 접은 채로 어언 10년이 지났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도전조차 못하는 게 너무 아쉬운 생각이 들어 <듀엣가요제>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록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큰 무대에 노래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생초보가 올랐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방송에서 그는 자신의 꿈이 수질환경기사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방송 이후에 그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밤낮으로 고민하던 그는 어릴 적 못다 이룬 가수의 꿈에 또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는 그 시발점이 버스킹 활동이라고 말했다. "버스킹을 통해 내가 꿈을 다시 꾸게 되었던 에너지, 위로받았던 일들을 다시 다른 이들에게 전달해주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에는 노래를 사랑하는 마음만 앞서서 무작정 매일 버스킹 활동을 했다. 하지만 무리하다 보니 곡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자신도 목상태가 좋지 않음을 느꼈다. 컨디션이 저하돼 당초 예정보다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날이 늘어났던 것. 그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 보다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기로 했다. 그 이후엔 노래를 들어주는 관객도 점점 늘어났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언제가 가장 인상 깊었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남강 근처에서 했던 첫 버스킹도 인상 깊었지만, 최근에 버스킹 활동을 하면서 목소리도 잘 안 나오고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제 노래를 자주 들으러 오시는 분이 편지를 써서 팁박스에 넣어 주시더라고요. 나중에 읽어보니 제 노래를 통해 외로움을 위로받기도 하고 따뜻한 목소리라고 칭찬해주셔서 뭉클했어요. 그 편지를 읽던 순간이 가장 생각나네요.”
그는 노래만 부르는 공연이 아닌 관객들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SNS를 통해 듣고 싶은 곡을 신청 받아 미리 연습하고 가거나, 자주 보이는 관객들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농담도 건네는 등 입담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는 현재 화·목요일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앞 공터나 경상대 후문, 또는 근린공원에서 버스킹을 진행 중이며, 토요일엔 진주 시내에서 팀원들과 함께 공연하고 있다. 그가 소속된 팀은 진주 지역을 연고지로 한 보컬팀 ‘UNCOMMON’이다. UNCOMMON은 '흔하지 않은, 드문'이란 뜻대로 노래를 잘하는 흔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그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앞으로 어떤 가수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김연우 씨나 윤종신 씨와 같은 누군가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고, 노래를 통해 수많은 이들을 위로해줄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답했다.
그가 노래를 사랑하는 지금의 마음을 오래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그처럼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