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였다. 이제 '미녀문'이다
인류 문명 대전환이 되는 아름답고 여성스러운 삶의 문화 / 편집위원 박기철
다음 글은 위와 같은 제목의 책을 쓰기 위하여 연재 칼럼으로 올리는 글입니다.
1) 들어가는 말
들어가는 말
제목을 美~女~文으로 하기까지
예전에 서울대 학생들의 도서대출 1위를 기록한 책으로 다이아몬드(Diamond, 1999) 교수가 쓴 <총, 균, 쇠>가 꼽혔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내 서가에도 꽂힌 책이기도 하다. 과연 다이아몬드와 같은 책이었다. 인류문명이 불균형을 이루며 서양 문명이 다른 지역의 문명들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를 치밀한 자료와 사고로 밝힌 점에 동양인인 나 역시도 서양인인 그의 지력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책 내용의 핵심을 짧게 압축 요약하자면, 지리적 여견의 차이로 인해 서양에서 총, 균, 쇠가 먼저 만들어지고, 이로 인해 서양은 다른 지역을 압도하며 지금의 지구 문명 세계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의아했던 점은 균이다. 총기류나 금속철이 그렇다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균이 도대체 인류의 문명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이 바로 균이다. 가축을 길들이기 좋은 여건을 가진 서양은 가까이 같이 사는 가축들로 인해 면역력을 지니게 되었고, 중남미에서는 가축을 길들이기 어려워 면역력이 지니지 못했다. 콜럼버스가 중남미 근처에 첫발을 내딛기보다 들이댄 이후로 서양인은 중남미를 초토화시켰다. 이 때 중남미에서 서양 원정군들의 무자비한 총칼에 죽은 사람들보다 서양인들이 가져온 질병인 천연두라 불리는 홍역에 걸려 죽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러니 균은 서양의 문명이 다른 지역의 문명을 정복하는데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 말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시비를 걸고 싶은 게 있다. 바로 <총, 균, 쇠>라는 책 제목이다. 원어 제목은 <Guns, Germs and Steel>이다. 저자인 다이아몬드는 지리학자다. 생물학자가 아니기에 틀릴 수 있다. 미생물이나 균으로 번역되는 Germs라고 해서는 아니되었다. 즉 Germs는 책의 내용으로 따질 때 틀린 어휘다. 중남미 대륙에 번창했던 아즈텍이나 잉카 등의 문명을 허문 천연두는 균으로 전염되는 질병이 아니라 바이러스로 전파되는 질병이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인 세균과 전혀 다른 존재다. 우선 바이러스는 무생물은 아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세포로 이루어진 완벽한 생명체인 박테리아가 아니라 DNA나 RNA 형태의 유전자다. 생물도 아니고 무생물도 아닌 것이 미생물(微生物)이라 하기에도 뭣한 미생물(未生物)이다. 그래서 책 제목을 <Guns, Disease and Steel>이라 해야 맞다. 우리나라 번역책 제목도 <총, 병, 쇠>라 해야 맞는다. 이렇게 하면 콜레라나 장티프스 등 박테리아에 의한 질병은 물론 천연두나 에이즈 등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모두를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정도 잘못은 이렇게 깐깐하게 딴지걸 듯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아도 된다. 전반적으로는 별 문제가 안된다. 어차피 천연두가 박테리아 미생물(Germs)에 의한 질병이든 바이러스 유전자(DNA)에 의한 질병이든 생물학자들이나 따질 문제지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문제가 되더라도 애교로 봐줄 수 있는 경미한 문제다. 하지만 그렇게 경미한 문제를 굳이 지적하기 시작하면서 이 책의 근본적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총, 균, 쇠>는 서양의 문명이 어떻게 다른 지역 문명들을 압도하며 정복하였는지 거대역사(big history) 차원에서 밝힌 책이지만, 서양인이 아닌 우리로서는 불편한 책이다. 다이아몬드의 통찰이 아무리 옳고 맞다고 치더라도 서양문명의 태생적 우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서다. 물론 그 태생적 여건의 차이가 사람들이 기진 능력적 차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던 지리적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느껴진다. 또한 인류 문명을 너무 물질적으로 해석하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인류 문명이 이런 물질적 요소들이 아니라 인간적 요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주장을 하는 책들도 있다. 톰슨(Thompson, 2015)이 쓴 <노동, 성, 권력>이라는 책이 그렇다. 원 제목은 <Work, Sex and Power>다. 이 세 가지가 인류의 역사를 바꾸어 왔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이 책이 <총, 균, 쇠>보다는 좀 더 보편적인 내용을 다루는 듯하다. 그러나 이 책 역시 인류 문명이 현재까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 인류 문명이 어떻게 전개되어야 할지에 관해서는 별 통찰을 얻지 못한다. 물론 앞으로도 그렇게 전개될 것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지만 뭔가 부족한 듯하다.
이에 이 글의 컨셉을 생각하게 되었다. 컨셉(concept)이란 모두(con)를 잡을(cept) 수 있는 끌리는 그 무엇이다. 앞으로 인류문명이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총, 균, 쇠>나 <노동, 성, 권력>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야 끌림과 공감이 있을 수 있다. 애초에는 아름다움(美)에 관해 쓰려고 작정했었다. 먼저 필자는 지난 2015년에 쓰레기에 관한 글을 썼었다. <아~쓰레기 : 1년 365일 everyday 인문생태학 관점의 보고서>란 책이 그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쓰레기에 관해 썼기에 올해에는 정반대 개념인 아름다움에 관해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올해 팔순을 맞이한 어머니 이야기인 <울 엄마 이야기>를 쓰느라 잠시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2016년 상반기에 걸쳐 이 이야기를 다 써가는 와중에 <美~女~文>이라는 제목을 정하게 되었다. 이 제목은 <총, 균, 쇠>와 비교되는 제목이다. '총균쇠'가 물질적 차원에서 과거에 서양문명이 정복하였던 이야기라면 ‘미녀문’은 앞으로 문화적 차원에서 인류문명이 전개되어야 할 이야기다. 이렇게 비교하니 정반대의 책을 쓰려는 것이다. 미국에서 사는 다이아몬드의 필력과 한국에서 사는 필자의 필력을 전반적으로 비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는 그 나름대로의 필법이 있으며 나는 내 나름대로의 필법이 있다. 그러니 수준이 높고 낮고의 문제가 아니라 차원, 관점, 그리고 입장이 전혀 다르며 아울러 하려는 이야기의 내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앞으로 책으로 묶일 이 연재 칼럼의 제목인 <美 女 文>을 하나로 모아 문장으로 만들자면 ‘아름답고(美) 여성스러운(女) 삶의 문화(文)’다. 영어로는 ‘Amenity, Feminism and Lifeway’란 제목을 달았다. 지금까지 인류문명을 주로 이루어 온 것은 총균쇠 등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고(强) 단단한(剛) 것들이었다. 더군다나 질병처럼 생명을 몰살하는 위험한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남성적 현대문명을 이루어 온 것임은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남성주의(machoism)에 기반한 찬란한 문명을 이루어갈 수 있을까? 이제 대전환이 필요할 시점이 도래했다. 이 대전환은 절대적 존재자에 의한 구원보다는, 또는 천지개벽에 의한 변화보다 우리 인간 스스로의 자각과 행동과 실천에 의해 먼저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때 대전환의 키워드로 제시되어질 있는 것이 가장 쉬운 한자로 표기될 수 있는 美, 女, 文이다. 첫 번째로 美, 즉 아름다움이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인 미(beauty)나 미를 연구하는 미학(aesthetics)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부터 우리 인간이 기분좋게 얻을 수 있는 미적 쾌감, 즉 미감(美感)으로서의 아름다움인 미(amenity)다. 두 번째로 女, 즉 여성성은 남성성과 상대되는 말로 세고 단단한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하고 부드러운 여성주의(feminism)을 추구해가자는 뜻이다. 세 번째로 文, 즉 문화는 서양적 관점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가는(cultivate) 문화(culture)나 동양적 관점에서 말을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는(文) 부분적 문화(文化)가 아니라 우리 사람이 살아가는 전반적 생활양식(lifeway)를 뜻한다. 이 세 가지 ‘美女文’을 추구하며 살고자 할 때 우리 인류는 대전환의 문명을 이루게 되고 보다 지속 가능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하나하나 머릿속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파편적 지식들을 서로 연결하여 인류문명의 대전환에 관한 이야기를 바깥으로 끄집어 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