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부산비엔날레'의 유혹에 흠뻑 빠지다

시립미술관·고려제강 수영공장서 이달 말까지...한·중·일 전위작품 등 전시 / 황혜리 기자

2017-11-03     취재기자 황혜리
지하철역 기둥이나 도심의 전광판을 유심히 살펴보면 ‘혼혈하는 지구’ 라고 적힌 홍보물이 보인다. 부산시 해운대구 APEC로와 수영구 망미동에 가면, 이 포스터를 크게 붙여둔 건물들이 눈에 띈다. 바로 이곳이 현재 ‘2016 부산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는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이다.
2016 부산 비엔날레가 지난 9월 2일 프레스 오픈을 시작으로 11월 30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수영공장 두 군데에서 동시에 개최되고 있다. 이번 부산 비엔날레에서는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이 힘을 합쳐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회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지금까지의 행사와 다르게 각각의 주제를 가진 두 개의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프로젝트 1은 ‘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를 주제로 3개국 65명(팀)의 작가들이 148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전시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의 한국, 중국, 일본의 자생적 실험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하는 전시라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고려제강 수영공장 F1963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 2는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Hybridizing Earth, Discussing Multitude)’을 주제로 23개국 56명(팀)의 작가들이 168점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윤재갑 전시감독은 "다양한 종교, 인종, 국적의 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를 토론하는 자리"라고 이 주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시립미술관 전시장에 들어가면 중국의 선위엔, 일본의 쿠도 테츠미, 그리고 한국의 김성배 작가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돼 관람객을 맞는다. 이는 한·중·일 자생적 전위예술의 영역을 재확인하려는 2016 부산 비엔날레의 의도가 엿보이는 전시형태.
2층에 위치한 첫 번째 전시장에는 ‘약술: 1976-1995년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을 주제로 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중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도 있는가 하면, 장샤오강 작가의 <혈연: 대가족 3>, <황야 시리즈>처럼 한국 작가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품도 전시돼 있다. 이어서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면, 형형색색의 물감을 머금은 여섯 개의 긴 천들이 보인다. 바로 김동규 작가의 <빛기둥>이다. 김 작가는 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시간의 흐름과 그 변화에 따른 물질의 변화, 그리고 원색의 원시적 아름다움을 통해 사변적인 현대미술에 나름의 아름다움, 즐거움을 함께 추구하면서 자연 발생적인 현상을 작품화하고자 하였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감이 천을 타고 퍼져 올라가는 것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 박연정(22,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물감이 천을 타고 올라가는 현상을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발상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빛기둥>을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전시장이 있다. 한 군데는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 불온한 탈주’를 주제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다른 한 군데는 ‘전후 일본의 전위미술’을 주제로 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한국 작품들이 전시된 전시장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수십 겹의 신문지와 종이가 흩어져 있는 작품과, 캔버스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철사로 감싼 작품이 보인다. 바로 하종현 작가의 <작품 71-11>과 <작품 73-15A>이다. 하 작가는 비엔날레 홈페이지를 통해 이 작품에 대해서 “시대상이나 자신의 처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고 설명했다. <작품 73-15A>의 경우, 단순히 철사와 캔버스만을 이용한 듯한 작품이지만 똑같은 크기의 마대로 된 칸이 있고 또한 이 칸을 만들어 낸 소재가 철사라는 것에서 답답함이 느껴진다. 이 두 작품 외에도 이곳에 전시된 전시물들을 보고 있으면 폐쇄, 침묵, 억압 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작품이 많았다.
또한 이곳에서는 전시용 작품 뿐 아니라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촬영한 것도 감상할 수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행위예술가인 오리모토 타츠미 씨의 <26인의 빵 파는 사람들: “처벌”>과 호리 코사이 작가의 <혁명> 등이 그것이다. 특히 코사이 작가의 전시장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해당 작품을 전시해 둔 전시장에 들어가면 바닥에는 온통 구겨지고 찢겨진 신문지 조각들이 놓여있다. 전시장 벽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낙서가 되어있는데, 이를 읽다보면 사회를 ‘혁명’하려는 의지가 느껴진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면 전시장의 바깥 쪽 벽에는 “벽의 반대편에 말이 다다를 수 있을까? 벽의 반대편에서 말이 다다를 수 있을까?”라는 글귀가 보인다. 공포영화에서나 본 듯한 빨간색의 글씨에 다소 소름이 돋기도 했지만 이것이 이 작품을 조금 더 인상 깊게 만들었고 다시금 이 작품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프로젝트 1 관람을 하던 직장인 김원영(29, 부산시 사상구) 씨는 “각국 작가들의 작품을 구경하면서 각 나라의 특색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립미술관 관람이 끝나면 오전 10시부터 30분 간격으로 미술관 앞 정류장에서 고려제강으로 가는 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다. 고려제강 수영공장 F1963은 수영구 망미동 수영공장 3,000여 평에 100억 원의 리모델링 비용을 들여 전시장을 갖춘 복합문화시설로 탈바꿈한 시설이다. F1963에 들어서면 이곳의 작품들은 미술관보다 공간의 제약을 덜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파도가 물결을 해변으로 미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두 개의 긴 밧줄을 공간에 펼쳐 회전시키는 조로 파이글 작가의 <조수 Untangling the Tides>가 있다. 이외에도 성(性)의 노예로서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한 여성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 프로비르 굽타 작가의 <Requiem>도 커다란 바위 모형과 문 모형이 어우러져 두려움, 억압, 공포 등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2016 비엔날레를 관람한 석혜진(27, 울산시 동구) 씨는 “예술은 어렵다는 편견 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비엔날레를 감상하고 나니 부담감이 덜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람객 조정은(47, 부산시 진구) 씨는 “직장 생활과 집안 일 때문에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었는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전 세계의 미술 작품을 구경하는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일 비엔날레 관련 기자회견에서 중국 측 큐레이터로 나선 구어 샤오옌 베이징 민생현대미술관 부관장은 “중국 섹션은 중국 아방가르드 미술사를 기초로 당시 미술실천의 역사적 상황을 되돌아보고 역사와 변화 속에서 형성된 사상이 중국 현대미술의 구축과 매핑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전시를 기획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한국 측 큐레이터 김찬동 경기문화재단 뮤지엄 본부장은 "한국의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사회 비판적인 담론을 제시했던 개념미술·해프닝·미디어아트 등의 미술작품을 집중 조명했다"고 말했다. 2016 부산 비엔날레의 입장료는 성인 1만 2,000원, 청소년 6,000원, 어린이는 4,000원이다. 해당 입장권을 한 장 구매하면 부산시립미술관과 고려제강 모두 입장할 수 있다. 전시회의 작품들에 관해 설명을 해주는 안내사와 함께 관람하는 ‘도슨트 투어’를 신청하면 흥미롭게 전시회를 즐길 수 있다. 도슨트 투어는 일반 관람의 경우 화요일에서 금요일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에 가능하다. 토요일, 일요일 및 공휴일에는 오전 11시, 오후 1시, 오후 3시, 오후 5시에 신청할 수 있다. 부산 피엔날레는 11월 말에 막을 내린다. 아직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 짙어가는 가을엔 미술관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