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명의 청약통장 급증...분양권 당첨 노린 '꼼수' 비판
법적 문제 없지만, 아파트 투기 과열 요인...실수요자들, "규제 필요" / 정인혜 기자
주부 박모(35, 부산시 남구 문현동) 씨는 얼마 전 부산 명륜 자이 아파트에 청약하면서 청약통장 4개를 동원했다. 이 중에는 미성년자 자녀 명의의 통장 2개도 포함됐다. 자녀 명의로 주택청약 통장을 만들고 이를 이용해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인 것이다. 박 씨는 이번 청약에서 탈락했지만, 다음 청약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아이들도 주택청약에 가입시켰다”며 “아무래도 통장 하나보단 네 개가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미성년자 명의 주택청약 통장이 늘고 있다. 미성년자는 실입주와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이들 통장이 분양권을 노리는 부모들에게 당첨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성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까지 청약저축에 가입한 미성년자는 총 336만 4,924명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미성년자 수가 1,007만 7,000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미성년자 3분의 1이 청약통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6월 기준 미성년자 청약저축 잔액은 약 5조 4,030억 원가량으로 조사됐다.
미성년자 청약통장은 부모들의 ‘내 집 마련’이 주목적이지만, 당첨 뒤 분양권을 되팔기 위한 '단기투자'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요즘 어린 자녀들의 명의로 아파트 청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주택 구매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분양권을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평균 청약경쟁률은 13.91 대 1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평균 11.15 대 1을 넘어선 것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일각에서는 미성년자 청약이 이런 청약 광풍에 일조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인터넷 부동산 포털사이트에는 미성년자 청약통장 가입 가능 여부를 묻는 글이 거의 매일 올라온다. 대체로 분양권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자녀의 명의를 동원하려는 경우다.
회사원 정지용(33, 부산시 중구) 씨는 이를 두고 “치사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정 씨는 “안 그래도 청약 경쟁률이 높아지는 통에 머리가 아픈데, 자녀 명의까지 동원해서 청약 넣는 사람들 때문에 너무 짜증 난다”며 “실수요자가 아닌 미성년자들은 청약통장 가입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로써는 이를 제지할 방법이 없다. 지난 2009년 5월 주택청약종합저축이 도입되면서 미성년자를 포함해 누구나 1명당 1개의 청약저축에 가입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 청약은 성년이어야 가능하지만, 미성년자가 세대주로 등록된 경우 직접 청약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같은 청약 과열이 실수요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성년자 청약저축이 아파트 투기와 가격 상승에 악용되고 있지는 않은지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부동산 114 관계자는 “미성년자가 청약저축에 가입하는 것은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지만, 이 때문에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는 게 사실”이라며 “현재 상황에서는 1순위 대상자의 청약저축 가입 기간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