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마켓이 되버린 농촌 봉사활동
과거부터 현재까지, 농촌 봉사 활동은 시대의 흐름을 타고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심훈의 상록수에서는 학생 농촌봉사활동이 브나로드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농민 계몽을 목적으로 학생들이 농촌에서 강습소를 운영하고, 또 부조리한 시대의 저항으로 농촌운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대학생들은 학점을 얻기 위해 농촌 봉사 활동을 한다.
대학별로 다르지만, 학생들은 농활을 적게는 2박 3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의 기간 동안 간다. 이 대가로 학생들은 1학점 내지는 봉사활동 시간을 받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일정금액을 지불하고 농활을 간다는 것이다.
최근 10년 전 까지만 해도 학생들은 교통비로 최고 3만원을 부담하거나,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교통비를 받아 농활에 참여했다. 그 외의 비용은 단대별로 매년 걷는 학생회비로 충당했는데 이 금액 역시 제한적이었다. 또한 해가 갈수록 유가와 물가가 상승하면서 학생들의 농활 참여 비용 인상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경성대학교 멀티미디어대학 김성완(27) 회장은 “단대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 한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모자란 비용을 학생들이 내도록하니 가격이 점차 올라가는 거죠”라고 했다.
울산대학교 실내디자인학과 조혜림(22) 씨는 신입생 시절 ‘대세’를 따라 농활을 다녀왔다. 3박 4일간, 6만원이라는 금액을 주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해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몇 시간 농사일을 한 후, 6만원이나 내고 왔다는 사실이 후회됐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이동주(22) 씨는 3학년이 되어서야 동기들과 농활을 가기로 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농활 비용이 2박 3일에 8만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갈 생각이 사라졌다. 이 씨는 “농활을 가려고 해도 비싼 가격 때문에 엄두도 못내요. 봉사활동을 하는 대가가 이렇게 터무니없이 비쌀 수 있는 건가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이렇게 농활의 비용 때문에 불만을 토로하지만, 결론은 돈을 내고 농촌에가서 1학점을 사오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동아대학교 태권도학과 박상일(25) 씨는 비싼 비용의 농활을 가는 것보다 1학점에 2만 5천 원 하는 학교 계절 학기를 듣는 것이 낫다고 했다. 그는 “농촌에 가서 돈 많이 들여 고생하는 것보다 차라리 학교에서 편하게 적절한 비용을 들여 학점을 얻겠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농활로 인한 비용문제로 학생들만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아니다. 경북 울진군 성곡마을의 이장인 박진하 씨는 농활 기간 때마다 학생들을 어떻게 대접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마을의 1년 예산 중, 학생들이 농활을 왔을 때 대접할 비용은 따로 책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손자같은 학생들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먹이고 싶지만 예산이 없어 현재까지는 주민들의 사비로 충당해왔습니다. 하지만 매해 반복되면서 이제는 주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됩니다”라며 고민을 털어놨다.
이처럼 과거에는 계몽을 위해 이루어진 농활이 현재는 농민과 학생, 상호간의 부담감만을 주는 행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부산여자대학 사회복지학과의 늦깎이 재학생인 김경옥(45) 씨는 딸 같은 동기들과 함께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새마을 운동시기인 1970년대에 시골에서 학생시절을 보낸 그녀는 농촌 계몽 운동에 대한 원래의 취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녀는 요즘 대학생들이 학점을 얻기 위해 농활에 참여한다는 이야길 듣고 깜짝 놀라며, 21세기에는 농활이 학점을 얻기 위한 마켓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씁쓸해 했다. 김 씨는 “학생들이 농촌 봉사 활동을 학점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삶에서 한번은 경험해야할 의미 있는 봉사라고 생각하며 참여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