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슬픈 날을 이겨내는 방법
/ 칼럼니스트 손동우
나는 원래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에 별로 흥미가 없었다. 국내 프로야구에 관심이 있는 편이었지만 메이저리그에 대해 장황하게 떠드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은근히 경멸하곤 했다. 그런데 2012년 9월 간암 수술을 받고 다니던 신문사에 휴직계를 낸 뒤 강원도 산사에 요양하러 간 것이 메이저리그 야구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됐다.
그해 연말 한화 이글스의 에이스 류현진이 LA다저스에 입단했고, 이듬해 팀의 제3선발투수로 빼어난 활약을 하면서 나는 류현진과 다저스의 열혈팬이 됐다. 사실 다저스는 박찬호가 전성기를 보낸 곳이라 이미 많은 한국 팬을 갖고 있는 팀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류현진과 다저스의 활약 여부에 나는 일희일비했고, 류현진이 호투하면 금방이라도 병이 완쾌된 듯한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와 관련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빈 스컬리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는 다저스가 LA로 근거지를 옮기기 이전 뉴욕의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인 1950년부터 올해 시즌 끝까지 무려 67년 동안 다저스 전담 중계방송을 맡았던 전설적인 인물이다. 192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아흔 살인 그는 파릇파릇한 24세 청년시절 다저스와 인연을 맺은 뒤 올해까지 마이크를 잡으면서 ‘다저스의 목소리’로 불렸다. 부드럽고 편안한 중저음의 목소리, 야구나 선수들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 등으로 그는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가 LA 지역을 넘어 미국 전역의 많은 야구팬들로부터도 박수를 받은 까닭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륜을 내세우지 않고 가장 중요한 순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진심으로 팬들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9회말 다저스가 끝내기 안타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을 경우 흥분해서 마구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간단하게 사실을 전달한 뒤 팬들의 환호성으로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곤 했다.
내가 빈 스컬리의 진면목을 보게 된 것은 다저스의 올해 마지막 홈 경기가 열린 지난 9월 25일이었다. 구단은 이날 은퇴하는 그를 위해 이 경기에 ‘스컬리 감사의 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기 시작 직전, 심판진은 마운드에 선 뒤 스컬리를 향해 모자를 벗고 경의를 표했다. 모든 타자들도 첫 타석에서 중계 부스의 스컬리를 향해 헬멧을 벗어 인사했다. 남녀노소 팬들은 너나없이 ‘Win for Vin(빈을 위한 승리)’이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5만 6,000 관중석을 꽉 메웠다.
경기 직전 열린 은퇴식은 팬들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그가 얼마나 팬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 LA 시장, 배우 케빈 코스트너,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턴 커쇼 등 유명 인사들은 한 사람씩 연단으로 나와 떠나는 스컬리에게 송별사를 전했다.
특히 샌디 쿠팩스의 연설이 인상적이었다. 쿠팩스는 1950~60년대 다저스의 좌완 에이스투수로 활약했으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이다. 그는 “정규 시즌이 끝나고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면 스컬리는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 기도는 다저스의 승리를 기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포스트 시즌에 참가하는 각 팀의 선수들, 특히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른 선수들이 팬들과 언론의 비난에 상처받지 않기를, 그 상처를 잘 견디고 이겨나가기를 기도했다고 쿠팩스는 증언했다. 포스트 시즌의 큰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소속팀의 승리를 날려버린 선수들이 여론의 비난에 크나큰 상처를 받거나, 때로는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해 슬럼프에 빠지는 모습을 스컬리는 오랫동안 중계방송을 진행하면서 적지않게 목격했던 것이다. 그런 선수들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인간에 대해 따뜻함을 가진 사람인지를 잘 보여준다.
빈 스컬리에 대한 참석인사들의 칭송이 이어진 뒤 드디어 주인공이 등장했다. 그는 팬들을 향해 “여러분들이 저를 필요로 했던 것보다 제가 여러분들을 훨씬 더 필요로 했습니다(I have needed you far more than you have needed me)”라고 말했다. 그러자 관중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No! No! No!”라고 외쳤다. 우리가 스컬리 당신을 더 필요로 했다는 뜻이었다. 이에 스컬리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가로 저으며 “True! True! True!”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다’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스컬리와 5만 6,000여 관중들이 주고 받은 이 대화에는 서로에 대한 진심과 애정이 가득 실려 있었다.
스컬리는 이어 자신이 67년 동안 어떤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는지 한 명씩 열거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야구 관계자들, 정계 언론계 인사들, 가까운 친구 친지들이었다. 그는 “그러나 저에게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관중석에 앉아 계신 바로 여러분들입니다(You people sitting in the stand)”라고 외쳤다. 그 순간 드넓은 다저스타디움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멋진 유머감각의 소유자인 스컬리는 마지막 팬 서비스를 잊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은퇴한 뒤 계획이 뭐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65세 정도의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다. 곧 90세가 되는 나의 은퇴 이후 계획은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해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빈 스컬리는 이미 살아있는 역사이기도 하다. 그는 1991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는데, 얼마 전에는 LA 시의회가 다저스타디움 진입로를 ‘빈 스컬리 거리(Vin Scully Avenue)’로 명명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지난 23일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마이클 조던, 카림 압둘 자바, 브루스 스프링스턴, 로버트 드 니로, 톰 행크스 등과 함께 대통령훈장 수상자로 선정됐는데 대통령은 이렇게 스컬리를 소개했다. “야구 경기에서만 들리는 몇 가지 소리가 있다. 배트로 공을 때리는 소리, 관중들이 7회 스트레칭 시간에 노래하는 소리, 그리고 빈 스컬리의 목소리가 있다.”
다저스에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선사한 명감독 토미 라소다는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라는 명언을 남긴 바 있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그 재미있는 야구를 내년 봄까지 볼 수 없으니 당연히 답답하고 슬픈 것이다.
메이저리그 야구도 끝나고 국내 KBO리그 야구도 끝난 지금, 나는 ‘라소다의 슬픔’에 빠져 있다. 그 뿐이 아니다.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여성과 그녀의 40년 절친 여성이 함께 일으킨 ‘온나라 아작내기 게이트’로 인한 분노와 참담함, 자괴감과 슬픔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다.
이 슬픔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빈 스컬리에게서 한 수 배우기로 했다. 그리하여 나와 같은 슬픔에 빠진 사람들에게 “여러분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내가 여러분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하기로 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부산 서면에서, 대구 동성로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함께 촛불을 밝히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우리 이웃들에게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지금 바로 그곳에서 촛불을 들고 계신 바로 여러분들입니다”라고 고백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