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사람들의 쓰라린 삶의 현장을 가슴으로 담아내고...
탈북 아이들, 사할린 동포, 외국인 노동자 등 사진집 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 씨 이야기 / 손은주 기자
2016-12-04 취재기자 손은주
연변, 외국인 노동자, 러시아 동포, 일본의 조선학교... 이 단어들은 왠지 한국 사람에게 낯설다. 그런만큼 이들의 삶은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라는 인상을 준다. 이들은 대개 소수자로 사람들의 관심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산다.
그런데 이들의 삶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아 기록한 사진첩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2000년에 나온 <연변으로 간 아이들>을 시작으로, 2001년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 2005년 <러시아의 한인들>, 2008년 <거대 공룡과 맞짱뜨기>, 그리고 2013년의 <일본의 조선학교>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45) 씨의 작품들이다.
여성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 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에 관심이 많았고 사진 공부도 그때부터 시작했다. 1990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사진 공부의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프랑스의 대학원에 진학할 때까지 그가 공부했던 것은 사진 예술이었다. 그녀는 “예술사진만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 사진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며 “그래서 미련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귀국 후 20대 후반을 한국에서 보내다 우연히 접하게 된 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녀의 사진 인생을 바꿔 놨다.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가 바로 그것. 이 다큐멘터리는 변 감독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하며 만든 3부작이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해머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큰 충격을 그에게 주었다. 김 작가는 그때 ‘나도 무언가 저런 걸 해야겠다’고 느꼈다.
변 감독의 작품에서 큰 영감을 받은 그는 경기도 광주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 나눔의 집을 찾아갔다. 1998년 주말마다 그곳을 방문한 그는 설거지 등 허드렛일을 마다않았다. 사진은 찍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한 할머니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며 궁금해 했다. 그는 “사진하는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럼 다음부턴 사진기를 가져와서 사진을 찍어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가 미디어에 오래 전부터 등장했기 때문인지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익숙했다. 할머니들은 그의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 덕분에 그는 자신감 있게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김지연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보며 학교를 해외에서 다녔던 탓에 한국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것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과 고뇌를 사진으로 담은 뒤, 그녀는 1999년에 연변으로 떠났다. 연변에서의 결과물이 <연변으로 간 아이들>이었는데, 이 사진집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연변에서 그녀는 갈등을 겪었다. 사진 윤리 때문이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 공개될 경우 위험 지대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 걱정이 앞섰던 것. 결국 그는 아이들의 얼굴을 커튼이나 인형으로 가리고 카메라에 담았다.
우여곡절 끝에 연변에서 찍은 사진은 2000년에 사진집으로 발간돼 큰 반응을 얻었다. 그의 사진이 우리 국민들에게 연변의 아이들을 ‘동포애’로 감싸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 준 것. 이에 힘입은 그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이어갔다.
사진 작업을 할 때 그는 의도적인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대상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고 집중한다. 나중에 그 사진들을 모으면 나름대로 메시지가 담기게 된다. 그는 연변 작업을 끝내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유린 문제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타국에 흩어져 사는 한 민족을 뜻하는 ‘디아스포라’에 주목하게 된 것.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난 우리 동포 문제를 다루는 디아스포라 작업을 20년 가까이 계속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그는 동포들이 조국을 떠난 이유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해외 동포들이 조국을 등진 데는 한국의 근현대사 전개 과정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됐다. 김 작가는 해외 동포들의 사진 속에서 한국 근대사의 그림자를 읽어냈다.
최근에 작업을 마친 작품은 사할린 동포 이야기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아 해결되지 못한 문제인 사할린 이야기는 3년간 작업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난 10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갤러리 고도’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이란 타이틀로 전시회가 열렸으며, 같은 시점에 사진집도 출판됐다. <사할린 동포들의 귀환> 전시회에서는 러시아 한인 신문사인 새고려신문사 이예식 사진기자가 찍은 1세대 동포들의 이야기와, 그녀가 찍은 2~3세대 동포들의 사진 모습이 동시에 전시됐다.
사할린 동포 사진전으로 디아스포라 작업의 한단락을 지은 그는 이제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와 그들의 가정에 눈길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요즘 외국인 노동자 가정, 즉 ‘다문화 가정’ 사진을 기획 중이다. 그녀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자존감 형성을 위한 사진 프로그램을 계획 중”이라며 “아이들과의 놀이를 통해 찍은 사진으로 아이들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테마 하나하나를 끝낼 때마다 뿌듯함과 함께 아쉬움을 느낀다. 한 테마를 설정해 그것을 붙들고 몇 년을 고심하고 작업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피사체인 해외 동포들의 고뇌와 정서적으로 교감했을 때, 그녀는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되고 그 아픔 속에서 빠져 나오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는다. 겁내지도 않는다. 사진 작업을 하려면 이것저것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직장을 계속 다녔다. 주로 기업 홍보실에서 일하면서 휴가를 이용해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지금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경성대학교와 청강대학교 등에서 사진을 강의한다. 이번 학기엔 경성대에서 포토 저널리즘을 강의하는 데, 다큐멘터리가 ‘진실을 알리는 작업’이므로 포토저널리즘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학생들을 만나는 게 좋다”며 “오랜 만에 강의를 하는 것이어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하니 나름대로 재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취업 문제, 흙수저 논쟁이 일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녀는 “걱정하고 겁낸다고 해서 되는 건 없다. 발을 떼기만 하면 한걸음이라도 가 있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 전진이 없다. 사회가 원하는 나를 만들지 말고 도전하라. 쫄지 말고 덤벼봐라”라며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