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2만 2,000km를 달리며 넓은 세상을 품에 안았죠"

모터사이클로 대륙 횡단한 대학생 박성근 씨, "러시아 곳곳서 바이커들과 우정 쌓아" / 박상민 기자

2016-12-12     취재기자 박상민
모터사이클 한 대만 끌고서 광활한 대륙을 끝없이 달린다면 그 얼마나 짜릿한 경험일까? 그러나 낯선 나라 대륙에서 눈앞에 닥칠 험난한 여정과 일어날 지도 모를 돌발사고에 대한 걱정이 길을 나서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나 모터사이클 바이커들에겐 신념이 하나 있다. 바로 ‘전 세계 모든 바이커는 형제다’라는 것. 어느 나라, 어느 곳을 가다가 위험에 부딪쳐도 국적 불문하고 바이커는 바이커를 돕는다는 신념이 바이커들을 모험의 세계로 유혹한다. 이 신념 하나만 믿고 ‘유라시아 대륙횡단’에 뛰어들어 글자 그대로 ‘짜릿한’ 경험을 한 청년이 있다. 117일 동안 2만 2,000km를 달리며 16개국을 여행한 그 주인공은 박성근(26) 씨. 성근 씨는 평소에도 호기심이 많고 실천력이 강했다. 경남 김해에서 나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얻어 탄 오토바이에서 느낀 쾌감을 잊지 못해 바이크에 흥미를 갖게 됐다. 그는 대학 진학, 군 입대를 거쳐, 2013년 갓 전역한 후 자전거로 4대강 종주에 도전했다. 4대강 종주 성공에 희열을 느낀 성근 씨는 더 큰 도전을 꿈꿨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흥미를 가졌던 모터사이클을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다. 무언가 더 큰 도전을 하고 싶어졌던 것. 그는 “자전거로 우리나라를 돌아보았으니, 내가 좋아하는 모터사이클로는 더 큰 세상을 경험해 봤으면 좋겠다”고 해외여행을 결심하게 됐다.
그러나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미친놈’이라고 빈정댔다. 부모님도 아들이 오토바이 타는 걸 반대했다. 그는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머니한테는 사실을 말씀 드렸지만, 아버지한테는 여행 중에도 차마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며 “아버지는 그냥 배낭여행인 줄 아셨다가 내가 여행을 갔다 오고 난 뒤에야 알게 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지금은 성근 씨의 ‘바이크 사랑’을 부모님께서 응원하신다고 웃으며 말했다. 여행을 결심한 2015년 1월, 경남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과감히 휴학을 신청했다.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해서였다. 예정된 여행 출발일이 2015년 7월 5일이었는데, 6개월 동안 그는 낮에는 보트 제작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햄버거 가게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행경비 900만 원을 모았다. 성근 씨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지만, 목표가 있었기에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도 그는 인터넷 여행사이트 ‘이타세’(이륜차를 타고 세계여행)를 통해 틈틈이 여행 계획을 짰다.
우리나라 동해항에서 모터사이클을 배에 싣고 대륙을 횡단할 수 있는 가까운 나라는 일본과 러시아 두 나라인데, 더 큰 나라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러시아를 선택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으로 끝없이 가다 보면 유럽이 나오잖아요. 바이크를 타고 러시아 동쪽에서 유럽까지 닿아보고 싶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여행을 떠난 성근 씨는 점점 모터사이클 여행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배 편이나 비행기 편을 예매할 필요 없이 길이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달릴 수 있다는 점이 모터사이클 여행의 엄청난 매력이죠”라고 말했다. 그러나 워낙 험난한 여행이다 보니 우여곡절도 적지 않았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어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여행 초반, 성근 씨가 러시아 하바롭스크를 여행하던 중 바이크 휠에 금이 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이크를 주행하다 포트홀을 밟고 휠에 금이 가 타이어 바람이 빠졌어요. 짐이 많은 데다 도로 사정도 안 좋아 생긴 사고였죠”라고 그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은 성근 씨를 보고 우연히도 지나가던 현지 라이더가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성근 씨를 수리할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고, 수리 기간 동안 자신의 집에서 재워줬으며, 마을 투어도 시켜줬다. 역시 바이커는 국적 불문하고 형제였다.
또 한 번은 성근 씨가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 여행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한 살 터울의 한국인 선배와 시기와 루트가 겹치는 바람에 잠깐 러시아에서 동행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 스보보드니에서 일행의 바이크와 러시아 현지인 차가 충돌하는 사고가 일어나게 됐다. 성근 씨 일행은 말도 통하지 않아 막막한 상황에 놓였다.  “그때가 저녁 7시였는데, 경찰서가 사고 난 곳과 40km 이상 떨어져 있어 경찰이 1시간 만에 왔어요, 우리는 구글 번역기를 써가며 사고 경위를 설명했어요.”  그러던 중 성근 씨가 멀리서 다가오는 바이크 두 대를 보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들은 부자지간으로 로만 이라는 이름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아들은 경찰이었다. 로만 씨 부자는 사고 처리는 물론 수리 기간 동안 맘 편히 자기들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해줬다. 성근 씨는 “러시아가 라이더 간 유대감이 강하고, 추운 날씨로 인해 서로 뭉치려는 성격이 강한 나라라 그런 도움을 준것 같아요”라며 그들을 고마워 했다. 
이렇듯 여행 내내 성근 씨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낯선 이방인인 그를 대해 주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성근 씨가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만난 슬라워라는 이름의 현지인은 여행객 차림인 성근 씨를 보고 선뜻 자신의 집에서 묵으라며 친절과 호의를 베풀었다. 그런 슬라워 씨를 보고 성근 씨는 “왜 이런 친절을 베푸느냐?”고 물었고, 그는 “작년에는 독일 라이더, 재작년에는 일본인 라이더가 우리 집을 다녀갔다. 너 또한 러시아를 여행하는 라이더이기 때문에 돕고 싶다”고 말했다. 성근 씨는 그에게서 바이크 여행자에 대한 러시아 사람들의 순수한 배려를 또 한 번 느끼게 됐다.
성근 씨는 여행 초반에는 문제가 생기면 걱정부터 앞섰지만 종반에 이르면서 차근차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시간과 인내심만 있다면 해결 안 될 일은 없었죠”라고 말했다. 자신처럼 멋진 여행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그는 “모터사이클 세계 여행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이나 글에서 보이는 것처럼 낭만적이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어려움을 감내할 만큼 매력 넘치는 여행이라고 자부합니다”라고 말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달라진 부분에 대해 묻자, 그는 당장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은 없다고 소박한 답변을 내놓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을 통해서 세계 각국의 문화와 사람을 만났지요. 그리고 그들을 통해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답했다.  성근 씨가 폴란드 시치르크를 여행 중, 한국에서 온 자신을 보고 신기해하는 현지 바이커들이 함께 호텔에 묵자는 제안에 그들과 며칠을 같이 보냈다. 폴란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지배를 경험했던 적이 있는 나라여서 그런지 성근 씨는 “비록 그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정서적으로 통하는 느낌을 받았죠. 그리고 그들을 보면서 사람은 부유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라고 말했다.
여행을 가기 전 성근 씨도 토익점수나, 취직 걱정을 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여행 후, 그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꿈꾸며 마음 한 편에 여유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싶은 생각에 가득차 있다. 그는 “돈이야 많이 벌면 좋죠.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안 것 같아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성근 씨는 지금 또 다른 도전을 꿈꾸고 있다. 현재 그는 졸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 4학년생이지만, 모터사이클 딜러로 일하며 자신의 꿈을 향해 차근차근 전진 중이다. 그의 꿈은 모터사이클 엔진 설계 연구소에서 일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사람은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음을 성근 씨는 깨달은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경쟁 사회에서, 남들이 보기엔 다소 무모한 성근 씨의 도전은 사회가 정해 놓은 행복이 아닌, 각자가 정의하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는 점을 알려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