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예술, 백 스테이지 예술가들 구슬땀으로 완성되지요"
권경환 벡스코 총괄감독, "부산 공연문화 부진은 무대 전문인력 부족이 한몫" / 김민정 기자
화려한 조명 아래 펼쳐지는 연극이나 음악 공연을 보면서, 가끔은 저 무대 뒤편은 어떻게 생겼나 하는 궁금증이 생기곤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의외로 꽤 있는 모양이다. 무대 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벤트가 있다. 바로 백스테이지 투어(back stage tour)다. 공연·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무대 뒤편의 모습을 둘러보며, 음향이나 조명기기에 대한 체험도 할 수 있는 견학 프로그램이다. 주로 각 지역에 있는 문화재단이 주최하거나 공연장 자체에서 프로그램을 열기도 한다.
지난 10월, 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백스테이지 투어가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 이 날 투어에서는 공연 전 가수가 대기하는 대기실과 분장실을 둘러보고, 일반인은 이용할 수 없는 무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무대 뒤 쪽으로 가서 조명, 음향기기를 조작해 보는 기회도 주어졌다.
이날 투어 진행을 맡은 사람은 권경환(35) 벡스코 오디토리움 총괄감독이다. 무대감독이 공연 무대를 총관리하는 사람이라면, 권 감독이 맡은 총괄감독은 공연장 관리자로서 무대, 조명, 음향, 영상 등의 장비를 관리하고 장기적 개선 계획을 세워 운영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다. 벡스코 오디토리움은 100% 대관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장이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공연팀들은 오디토리움의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권 감독은 공연장에 있는 기술 전문가들과 함께 외부 공연팀들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공연장 시설을 설명해 주고 설치와 조작을 도와준다. 총괄감독인 권 감독은 백스테이지 투어에서 “공연·예술 관련 전문 인력들이 많이 부족하다는 게 부산 공연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권 감독은 무엇보다도 부산에 있는 공연시설이 매우 열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실 영화의 전당, 벡스코 오디토리움, 소향 아트홀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산 공연장들은 지어진 지 최소 15년 이상이 됐다. 권 감독은 “서울의 유명 오페라나 뮤지컬 공연이 부산 무대에 잘 오르지 않는 것은 지리적인 문제보다도 그만한 공연을 담당할 장소도 없고, 무리해서 한다고 해도 큰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연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공연 전문 인력이 부족하고 그 인력을 양성할 시스템도 열악하다고 한다. 권 감독은 “미술이나 음악을 배우고 싶다면 학원에 가서 쉽게 배울 수 있지만, 공연·예술 무대 운영 기능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고3 때부터 무대 디자인을 배우고 싶었던 권 감독은 입시철에 대학의 관련 학과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학과가 없어서 결국 경성대 공예디자인 학과에 진학했다. 우리나라에서 무대미술 교육을 정규학과로 가르치는 대학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전국에 총 27개의 대학이 무대미술 관련 학과를 두고 있고 이 중에서 학과 이름을 무대예술학과로 붙인 대학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상명대. 용인대, 중앙대 등 네 곳이다. 이들 대학이 모두 서울이나 경기도에 있기 때문에, 지방에서 무대 미술을 배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권 감독은 “부산시나 관련 재단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악순환만 반복될 거예요”라고 주장했다.
이런 열악한 무대미술 분야 환경 속에서 어떻게 현재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에게 묻자 그는 "그냥 운이 좋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권 감독은 대학 시절 학교 내에 있는 콘서트홀에서 근로 장학생으로 아마추어 무대 관리자가 돼 실무를 배울 수 있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무대 관련 일을 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더니 마침 아는 분 소개로 무대에서 일할 수 있었죠. 면접을 볼 때 일이 힘들어도 좋으니 일만 배우게 해달라고 했어요”라고 그 때를 기억했다.
공연·예술 무대미술의 길에 들어선 뒤, 권 감독은 방송, 뮤지컬, 연극, 음악회, 미술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무대 미술을 알기 위해 닥치는 대로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 다녔다.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증 중 하나인 무대조명 분야 자격증도 취득했다. 무대예술전문인 자격증은 1999년 무대예술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만든 것으로 무대 음향, 무대 기계, 무대 조명 세 분야의 국가자격 인증제도를 말한다.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던 권 감독은 대학원에 진학해서 무대예술에 대한 이론을 보완하기로 했다. 그는 “당시 부산 문화예술 및 공연 현장에서는 실무나 이론 중 한 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이 많았어요. 실무와 이론을 모두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어서 대학원을 선택한 거죠”라고 말했다. 권 감독은 대학원 졸업 후 벡스코 오디토리움 개관단의 한 사람으로 일자리를 잡았고 지금의 총괄 감독 자리에까지 이르게 됐다.
공연예술 전문인력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들려달라고 부탁하자, 권 감독은 가장 먼저 열정을 꼽았다. “공연 포스터 같은 걸 보면 밑에 제작사와 주최사가 적혀 있잖아요? 그걸 기억하고 나중에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어떤 회사가 있는지 정보를 얻어야 합니다. 또한 부산 불꽃축제 같이 유명한 축제들은 어디서 주최하고 후원하는지, 축제 기획은 어떻게 하는지 다 찾아보면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혼자서 기획도 해보는 거죠.”
권 감독이 일하고 있는 벡스코 오디토리움은 다목적극장으로 국제회의, 컨벤션, 뮤지컬, 콘서트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예술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다. 숱한 공연이 그의 손을 거쳐 지나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그는 컴퓨터 프로게임 대전인 2014년 ‘월드 리그 오브 레전드(Leage Of Legend)’ 챔스 8강전 경기를 꼽았다. 그는 “오디토리움 건립 이래 가장 특별한 무대 디자인, 기술적인 운영, 그리고 해외 에이전트의 기술 지원 등이 기억에 남아요. 객석에 중계 부스, 카메라, 구조물이 설치되기도 했고, 여태 했던 공연 중 가장 화려했던 행사라 기억에 남아요”라고 말했다.
벡스코 오디토리움은 세계적 수준의 공연, 국제 컨벤션, 기업행사, 음악회, 오페라가 연중 무휴로 열리는 곳이다. 이곳의 무대 설치와 운영을 총괄하는 권 감독은 밑바닥 실무부터 대학원 이론까지 자신처럼 본인이 스스로 배우고 익혀야 했던 사람이 다시는 없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무대예술 전문인력은 좋은 공연의 전제 조건입니다. 부산에서 공연 문화가 꽃피우려면 가장 먼저 무대예술 인력을 양성하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무대예술 전문인력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