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신호등 지자체마다 들쭉날쭉, "어휴 헷갈려"
전용도로 정책 혼선, 신호체계도 제각각...."있을 곳엔 없고, 필요 없는 곳엔 너무 많다" 불만도 / 김민정 기자
2018-02-26 취재기자 김민정
자전거 도로가 설치된 경남 창원시 한 횡단보도. 녹색 신호가 들어오자 신호등엔 보행자가 걷는 모습이 아니라 자전거가 그려진 그림이 점멸한다. 이는 보통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등 옆에 자전거 안전을 위해 설치된 ‘자전거 신호등’이기 때문.
자전거 신호등이란 차량이나 보행자보다 자전거의 안전 통행을 보장하기 위해 설치된 자전거 전용 신호등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자전거 도로는 차량이 달리는 차선 오른쪽에 위치해 차량과 분리되어 있으므로 안전하게 자전거가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자전거 도로가 교차로에 도달하면, 위 그림의 노란색 방향으로 직진하는 자전거는 우회전하는 차량과 충돌할 위험성이 크다. 이때 오른쪽의 보행신호등과 동시에 점멸되는 자전거 신호등이 있으면, 자전거는 녹색 화살표를 따라 보다 안전하게 직진할 수 있다. 이렇게 자전거의 안전한 교차로 통과를 돕는 것이 자전거 신호등인 셈.
해외에서는 이미 1990년대부터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영국,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자전거 신호등이 설치, 운영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개정된 자전거보호증진법에 따라 자전거 신호등 설치가 가능해졌고, 같은 해에 발표된 교통운영 체계 선진화 방안에 따라 각 시·도에서 자전거 전용 도로와 근접 차로에 자전거 신호등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전거 이용객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자전거 신호등이 정작 필요한 곳에는 없고 자전거 통행량이 적은 곳에는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2009년 대전지역 NGO인 대전충남녹색연합이 대전 대덕대로 계룡네거리부터 대덕대교 구간(5.8km)에 설치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운용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한 적이 있다. 모니터링 결과,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자전거 신호등이 전혀 없어 자전거 운전자의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이 파악됐다. 녹색연합은 자전거 도로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자전거 도로에 자전거 신호등 설치가 필요하다는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고, 이후 2010년 대덕대로 인근에는 총 8대의 자전거 신호등이 설치됐다. 하지만, 대전시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차량 운전자에게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2011년에 대덕대로 자전거 전용도로와 자전거 신호등을 모두 철거해버렸다. 현재 대덕대로를 자전거로 달리는 사람들은 차도 갓길을 조심스레 다녀야 하고 횡단보도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손으로 끌고 보행자처럼 길을 건너야한다.
대전충남녹색연합 녹색사회국 고지현 부장은 애초 대전시가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무작정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든 게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고 부장은 “그러다보니 자전거 신호등을 설치했는데도 자전거 운전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결국 자전거 도로와 신호등을 모두 철거해 결과적으로 예산을 낭비한 꼴이 됐다”고 말했다.
2007년 대전시는 대전을 ‘자전거 도시’로 만들겠다는 선언과 함께 4년간 103억 원을 투입해 주요 3대 하천과 도심 간선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조성했다. 하지만 현재 대전시에 남아있는 자전거 신호등은 단 한 대도도 없다. 대덕대로의 사례처럼 일부 자전거 전용도로는 아예 철거됐고, 남아있는 자전거 도로도 원활하게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15년간 전국을 돌며 자전거를 타 온 김성주(51, 대전시 유성구 원내동) 씨는 대덕대로에 설치됐던 자전거 전용도로는 교차로에 자전거 신호등이 없어서 특히 네거리를 직진하려는 자전거 이용자에게 위험했던 도로라고 설명했다. 그는 “차도의 마지막 차선은 보통 버스나 트럭 등 대형차들이 많이 다니는데, 대덕대로는 마지막 차선의 폭을 줄여 임시방편으로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었던 곳이라 자전거 타기에 아슬아슬했다”고 말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곳에선 자전거 이용자들은 차도 갓길로 다니다가 횡단보도가 나오면 보행자와 같이 길을 건너야 한다. 자전거 전용도로라 해도 교차로에서 직진할 때 자전거 신호등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김성주 씨는 “전국의 자전거 전용도로와 자전거 전용 신호등은 후속 관리가 미비해 불법 주정차하는 택시 등에 점유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푸념했다.
반면, 경남 양산시는 불필요하게 많은 자전거 신호등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평소 운동을 위해 자전거를 즐겨 타는 신모(24, 경남 양산시 물금읍) 씨는 "양산시 물금읍 근처에만 자전거 신호등이 왜 유달리 많은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산시 물금읍에 조성된 자전거 도로에는 보행자 신호등 옆에 자전거 신호등이 나란히 설치돼 있다. 신 씨는 "자전거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 자체보다는 너무 많이 설치되어 있다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양산시 관계자는 지난 1994년부터 물금읍 일대를 양산물금신도시로 조성할 때 양산시 전체가 아닌 양산물금신도시에만 자전거 신호등이 설치됐는데, 이는 양산시가 아니라 물금읍 택지 개발을 담당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차량 신호등, 보행자 신호등도 있는 상황에서 굳이 자전거 신호등을 추가 설치하는 것은 오히려 신호 체계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반면 LH의 입장은 이와 달랐다. LH 도시개발과 관계자는 당시 양산시 택지개발 및 자전거 신호등 설치를 맡았던 담당자가 바뀌어 정확히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양산시가 자전거 신호등을 먼저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산물금신도시의 기반사업을 LH가 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시의 요구대로 시공했을 뿐”이라며 LH가 임의로 자전거 신호등을 설치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이렇게 지자체마다 자전거 도로와 신호등 정책이 혼선을 빗는 가운데, 우리나라 자전거 보유대수는 2015년 기준 1,022만 대를 넘어섰고, 전국 자전거 사고는 2014년 기준 1만 7,471건으로 늘어났다. 특히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닌 곳에서 자전거가 불쑥 나타나 차량 운전자를 놀라게 하는 사람들을 고속도로에서 로드킬당하는 고라니에 비교하여 ‘자라니 족’이라 부른다고 시빅뉴스가 보도한 바 있다(본지 2016년 2월 25일 보도).
도로교통공단 교통과학연구원 미래전략연구처 책임연구원 김중효 박사는 “각 시도나 지자체에서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 전용 신호등을 설치할 때는 자전거 이용자 외에도 자동차, 이륜차, 도보 이용자들의 불편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어느 지역에서는 특정 교통시설을 설치할 수도 있고 설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자전거 신호등 설치의 적절성 여부를) 일률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각 지자체가 자전거 신호등과 같은 교통시설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고 시민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공청회나 세미나 등을 통해 교통수단 이용자들의 의견을 듣고, 만약 과다하게 설치되었다면 철거하거나 재배치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김효중 박사는 “무엇보다도 고령자, 임산부, 어린이와 같은 교통약자의 의견 반영이 중요하다”며 “우리나라는 도심지가 먼저 개발되고 나서 자전거 도로나 자전거 신호등을 설치하므로 효율적인 자전거 정책을 펴기가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