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장애 딛고 날아오를래요"...'더 날개'의 희망 날개짓
작년 9월 창단한 발달장애인 앙상블....지역 음악인 등 재능기부 받아 전문 연주인 꿈꾸며 구슬땀 / 강주화 기자
2017-04-12 취재기자 강주화
부산 동서대학교의 대학교회. 건물 밖에서부터 모차르트의 세레나데가 아련히 들린다. 10여 명의 학생들이 이 건물 합주실에서 한창 연습 중이다. 음악감독인 백재진 교수가 손바닥을 부딪치며 “얘들아, 이 대목부터 다시 맞춰보자”며 손바닥을 마주 두드린다. 강사도 학생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직접 켜가며 같이 소리를 맞춰준다. 교수, 강사들은 연습하는 도중 일일이 입으로 소리 내 박자를 맞춰 준다. 학부모 몇 명도 학생 옆에 서서 악보를 손가락으로 짚어주고 있다. 주변 사람들의 정성스런 도움을 받으며 연주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이 학생들은 누구일까.
이들은 부산·경남권 발달 장애인 앙상블 ‘더 날개’ 소속 단원들이다. 더 날개는 지적장애 2, 3급, 자폐장애 2, 3급인 12명의 연주자들이 소속돼 있다. 15세부터 3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된 연주자들은 주로 부산, 대구, 창원의 일반 중·고교와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단원도 있다. 이들은 매주 금요일 동서대학교에서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연습하고 있다.
더 날개를 창단한 곳은 복지단체인 선민사회복지회. 더 날개는 지난해 9월 창단됐다. 사단법인 선민사회복지회는 현재 청소년상담소와 함께 '더 날개'를 운영하고 있다. 더 날개는 우리은행의 투게더 우리사랑 지원 사업에 선정돼 받은 자금을 종잣돈 삼아 지난해 9월에 1차 오디션을 거쳐 단원을 모집했다. 선민사회복지회가 더 날개를 창단한 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발달 장애인들이 전문 음악인으로서 진로를 찾아 나갔으면 하는 소망 때문.
선민사회복지회 음악 심리상담사 주민애 씨는 “발달 장애인들의 현재 직업은 단순 노동 아니면 바리스타로 한정돼 있다”고 했다. 그녀는 “음악 감각이 좋은 장애인들을 훈련시켜 장차 음악 활동을 직업으로 삼아 살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다는 취지에서 창단했다“며 “그 과정은 힘들겠지만 더 날개가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더 날개는 교수, 음악가 등 10명이 재능 기부로 학생들의 음악 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음악감독 백재진 동의대 교수는 수영로교회의 ‘엘미소 오케스트라’라는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에서 7년째 단장을 맡고 있다가 지난해 더 날개의 제안을 받고 이곳에서 재능기부를 해 오고 있다. 백 교수는 “지인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마음 편히 참여할 수 있는 발달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부산, 경남 지역에 없으니까 하나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 와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발달 장애 학생들의 사회성을 기르고 나아가 관청중과도 소통하고 같이 호흡할 수 있는 연주자들로 키워볼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더 날개는 작년 9월 1차 오디션에 이어 올해 2월에 2차 오디션을 가졌다. 더 날개 학부모 회장인 최명숙 씨는 발달장애인인 아들 윤광세(19) 군에게 수준 높은 여가활동이나 전환 교육이 필요할 것 같아서 더 날개 1차 오디션에 참가하도록 했다. 최 씨는 “광세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쭉 혼자 연습해 왔다. 작년부터 참여하게 됐는데 다른 친구들과 어우러져 음악을 하니까 아이가 너무 행복해한다”고 말했다.
발달 장애인은 일반인보다 인지력이 부족한 데다 손 근육도 약해 악기 연주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더 날개 단원들은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힘든 것을 참아내며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있다. 최명숙 씨는 “발달 장애 아이들이 반복 연습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지만, 연주회를 마치고 난 후의 성취감으로 연습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 날개에 참여하면서 단원들은 자율적으로 연습도 하며 사회성도 좋아졌다. 단원들은 매주 과제가 주어지면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집에서 더 열심히 연습한다. 최 씨는 “자폐성 아이들이 사회성이 부족한데 비슷한 아이들끼리 어울리니까 동질감, 소속감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 심리상담사 주민애 씨는 본인도 더 날개에 참여하면서 장애인 학부모들로부터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주 씨는 “발달 장애인들이 음악하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고 결과를 나타내는 것도 어렵다”며 “하지만 학부모님들이 아이를 위해서 기도도 하시고 열심히 뒷바라지하는 것을 볼 때마다 감동을 느낀다”고 했다.
학부모들과 교수들이 바라는 것은 발달 장애인에 대한 정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 최 씨는 “서울에는 벌써 발달 장애인 오케스트라가 사회적 기업이 돼서 시에서 월급도 주면서 교향악단처럼 연주활동을 한다”며 “부산·경남의 지자체들도 그런 지원을 해줘서 아이들이 월급을 받으면서 음악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고 말했다.
더 날개는 이번 1월에 부산 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창단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창단 연주회에서 관객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주 씨는 “객석이 꽉 찰 장도로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 줘 너무 뿌듯했다”고 말했다. 학부모 최 씨도 “관객들이 연주가 이렇게 수준 높을 수 있냐고 감격하시는 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고 회상했다. 그는 “우리 아들 고등학교 선생님 네 분이 오셨는데, 그분들도 감격해서 말을 잇지 못하셨다. 연주회를 보고 관객들이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고 말했다.
더 날개는 오는 10월 경남 창원과 부산에서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이번 연주회 주제는 '찾아가는 희망 나눔 콘서트'다. 더 날개는 차츰 연주 횟수를 늘려 희망과 꿈을 나누면서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한 바탕을 차근차근 마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