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난 후의 일이다. 지방 문화재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셨던 아버지 덕에 절에 따라다니면서 스님들께 인사드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덕분에 어느 한 스님은 내게 특별한 이름까지 지어주시고 다른 생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기도 하셨다. 다음의 이야기는 어느 절의 주지스님께 이제 곧 중학교에 간다고 인사드리러 갔다가 겪은 일이다.
꽃샘추위가 있던 봄방학 어느 날, 발그레한 얼굴로 스님 방에 들어서서 넙죽 절을 하고 나니 스님께서 가까이 와보라고 말씀하셨다. 조심스레 다가가니, 대뜸 천 원짜리 100장 한 묶음을 주시면서 반으로 나누어 가지고 나머지는 돌려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자리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반을 나누려고 애를 좀 썼던 기억이 난다. 잠시 후 나머지를 스님께 돌려드리니 서로 얼마씩 가졌는지 세어보자고 하셨다.
결과는 각각 내게 49장, 스님께 51장이었다. 잠시 후 스님께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비교적 정확히 반을 나누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가능하면 평생을 그렇게 정확하게 반을 나누려고 애쓰면서 살아라. 그러다가 중요한 결단의 순간이 오거든 지금처럼 네가 49을 갖는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손해 본다는 느낌으로 살라고 하셨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잘 몰랐다. 아마 열세 살 남짓한 한창 사춘기의 아이에게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손해를 결단해야 할 만한 일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탓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10년 넘은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문득 그 일화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퍼뜩 질문 하나가 이어졌다. 만약 그 때 내게 51장, 스님께 49장의 천 원짜리가 돌아갔다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아마도 같은 맥락에서 그 중에 한 두어 개쯤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다는 느낌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하지 않으셨을까?
가끔씩 약간 손해보고 사는 삶이 과연 옳은 것인지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스님의 말씀은 내 인생 전반의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때로는 내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아쉽지만 의도적으로 결론을 낼 때도 있는 걸 보면 스스로도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그 결과가 내 마음의 자연스런 발로인지 의도적인 선택이었는지 구분하기도 힘들다. 다만, 손해 안 보려고 아옹다옹 사는 모습보다 약간 손해 본다는 느낌으로 일종의 선함을 베풀고 그것을 통해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또 20여 년의 시간이 지나고 혜민 스님도 책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그냥 내가 약간 손해 보면서 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사십시오. 우리는 자신이 한 것은 잘 기억하지만 남들이 나에게 해준 것은 쉽게 잊기 때문에, 내가 약간 손해 보며 산다고 느끼는 것이 알고 보면 얼추 비슷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 시절 주지스님은 내게 이런 말씀까지 해 주시지는 않으셨지만 아마 대충 비슷한 맥락이지 않으셨을까?
지금 내게는 2-3년이 지나면 그 때의 내 나이가 되는 딸아이가 있다. 큰 녀석인데 동생에게 좀처럼 양보하는 사례도 드물고 그래서 가끔 엄마나 아빠로부터 잔소리를 듣는다. 아직은 깊이 사고할 수 있는 나이가 못 된다는 생각에 저렇게 훌륭한 내 마음 속의 이야기를 꾹 참고 있는 중이다. 대신 이 기회를 통해 먼저 풀어 놓으니 부디 이 각박한 세상, 아주 작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조금 손해 보는 마음으로 남들이 나에게 해 준 것에 대해 보답하며 사는 방법을 택하시라. 작지만 그것으로 인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지고, 덤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지름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