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딩 토론 논란 비등…"앉으나 서나", "문재인 청문회인가"
'1 대 4 대결' 검증 취지 못살려...선관위, "사회자 역할 강화해야" / 정인혜 기자
대통령 후보 TV토론회가 국내 처음으로 ‘스탠딩 토론’으로 진행된 가운데, 형식과 내용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자유로운 토론을 통한 정책검증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난장토론'으로 흘렀다는 지적도 많다.
제2차 대선후보 TV토론회는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열렸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토론 시간 내내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스탠딩 토론은 이번 토론회를 주관한 KBS가 원내 5당에 제안하면서 성사됐다. 당시 문 후보 측은 “무조건 서서 진행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스탠딩 토론을 거부했다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러자 뜬금없이 ‘문재인 건강 이상설’로 논란이 불거졌다.
국민의당은 지난 14일 언론 논평을 통해 “대통령의 건강은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라며 “2시간도 서 있지 못하는 후보가 정상적인 국정수행을 할 수 있겠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결국 문 후보가 직접 나서서 토론 방식을 전면 수용함에 따라 스탠딩 토론이 성사됐다.
이날 토론회는 스탠딩 형식이었지만, 후보들이 연단을 앞에 두고 서 있어 결과적으로는 상반신만 노출됐다. TV토론회를 시청한 직장인 김권희(28, 부산시 동래구) 씨는 “후보들이 앉았는지 섰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던데 왜 다들 그렇게 스탠딩 토론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며 “대단한 게 있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앉으나 서나 달라진 건 없었다”고 냉소 섞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 대선 토론 형식을 구체적인 논의 없이 그대로 가져온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민주당, 공화당 양당에서 선출한 후보 두 명만 참석한 가운데 토론이 이뤄진다. 후보들은 단순히 연단 앞에 서 있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토론장을 이동하면서 객석에 있는 시민들과 직접 대화하기도 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 TV 토론에 참가한 후보는 총 5명이었다. 연단을 떠나 움직인 후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스탠딩 토론으로 확인한 건 모든 후보가 2시간 동안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뿐이었다”고 비판했다.
후보들도 스탠딩 토론회의 취지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문 후보는 토론을 마치고 만난 기자들에게 “스탠딩 토론이라면 자유롭게 움직인다거나 왔다갔다 해야 의미가 있는데,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면서 응답한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 후보도 토론 후 TV 인터뷰에서 “체력장 테스트같다”며 “꼼짝 않고 서 있으니 이건 좀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반면, 안 후보는 TV와의 인터뷰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형식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처음 시도하는 형식 아니냐”며 “다음부터는 더 자신감 있게 모든 후보가 자기 실력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시간 총량제’도 문제가 됐다. 각 후보들은 질문과 답변 시간을 합쳐 각 9분씩을 할당받았다. 이날 대선 후보들은 문 후보에게 일제히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문 후보에게는 총 18개의 질문이 집중된 반면, 안 후보는 14개, 홍 후보 9개, 유 후보는 3개의 질문을 받았다. 심 후보는 단 한 번도 질문을 받지 못했다. 문 후보는 다른 후보들에게 받은 질문에 답변하느라 질문은 하지도 못한 채 주어진 시간을 거의 모두 사용했다. 반면, 홍 후보는 시간이 남아 3분 동안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1위 주자 왕따 시키기’라는 평이 나왔다. 질문이 문 후보에게만 집중되면서, ‘문재인 청문회’를 방불케 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트위터리안 lee3** 씨는 “네 명이서 작당하고 한 사람 몰아가는 게 어떻게 토론회냐”며 “어제 토론회는 2시간 동안 문재인만 찾은 문재인 청문회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트위터리안 mya** 씨도 “질문에 답변할 의무는 있고 질문할 기회는 없는 게 어떻게 토론회냐”며 “문재인 답변하는 것만 보다 끝난 수준 이하 토론회였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스탠딩 형식이 5명의 후보가 참석하는 토론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놨다. 후보가 5명이나 되다 보니 모든 공격이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후보에게만 집중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동양대 진중권 교수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스탠딩 토론의 장점은 후보들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번 토론은 오로지 한 사람만 검증대에 섰다”며 “1등, 2등 후보만 별도로 하거나, 아니면 맞붙고 싶은 사람들끼리 15분씩 붙여서 맞물리게 하는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스텐딩 토론에 대한 여론의 비판에 대해 선관위 측은 사회자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선관위 관계자는 20일 “토론회 형식을 변경하겠다는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 있을 토론회에서는 사회자의 역할을 키워 시간 편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남은 TV 토론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하는 공식 TV 토론회 3회를 비롯해 한국정치학회·JTBC가 주관하는 TV 토론회까지 총 4회다. 선관위 주최 1차, 3차 토론은 스탠딩 방식으로 진행되며, 2차는 앉아서 이뤄진다. 시간 총량제 방식을 유지하는 가운데, 주제 구분 없이 후보당 18분씩 발언 시간이 주어진다. 한국정치학회·JTBC 토론은 아직 구체적인 룰이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