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느림의 여유를 갖자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이 급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빠르게’ 해야 한다. 특히 자동차를 몰 때 그런 성향이 극대화된다. 평소에 성격이 유순한 사람도 자동차만 탑승하면 성격이 급해진다. 별것 아닌 일로 경적을 울리고 성질을 부린다.
대한민국이 한국전쟁 후에 세계 최빈국에서 시작해, 현재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었던 이유 중 하나도 이런 빠름을 우선시하는 성격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50년 만에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 OECD에 가입한 나라는 세계에서 거의 없다. 그런데다가 민주화까지 이룩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이 100여 년 전에는 국민성이 빠르지는 않았다. 해방이후 서양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양반으로 대표되는 느림의 미학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반에 대해 상상해보면 이런 이미지를 떠올린다. 한 손은 뒷짐을 지고 다른 한 손으로 부채를 부친다. 걸음은 팔자걸음이며, 속도는 느긋하다. 양반은 조선시대 느림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었다. 농촌에서도 한 해 수확을 기다리며 정성들여 농사를 짓는 느림이 있었다.
그런 느림이 있었다는 것이 무색하게 현대사회는 정말 빠르다. 그중에서 특히 대한민국 사회는 정말 빠른 것을 추구한다. 빠름에 대비해서 그만큼 부작용도 많이 늘었다. 불과 50년 만에 빠르게 경제대국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그것은 대기업 위주의 성장 때문이었다. 그래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횡포에 시달린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대기업에 빼앗기기 일쑤고 사업이 잘 돼도 대기업의 자본에 밀리게 된다.
인터넷에서는 빠른 속도를 얻었지만 문화적 성숙도는 빠르게 올라오지 않았다. 악플, 불법 다운로드 등 인터넷 윤리 부재는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빠름에 대한 부작용을 느림으로서 보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느림이라는 것은 다시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빠름에 비해 행동력은 적지만 느림은 미래를 한 수 앞서서 볼 수 있다. 신중하게 생각함으로써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느림이다.
느림이야말로 현재 여러 문제에 봉착한 대한민국 사회에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인터넷 악플의 경우 글을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함으로서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빠르게 성장해오면서 등한시 했던 문제들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어찌 보면 느림은 옛날 것이다. 현 시대와 안 맞을 수도 있다. 더 빠르게 해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반론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옛말에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을 지키고 새것을 안다는 사자성어다. 느림이라는 것은 현재 난관에 봉착한 현대 사회에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 빠름과 느림이 적절히 조화되면, 사회는 좀 더 나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