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반성
요즘 연예가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연기자 박시후의 성폭행 사건이다. 그가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가 잇따라 인기를 얻으며 기대되는 연기자로 주목받던 박시후가 연기자 지망생을 성폭행했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연일 경찰에 출석하여 진실 공방을 벌이는 그에 대해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견해를 보였는데, 그중 몇몇 반응들은 나를 의아하게 했다. “그래도 잘생기긴 했다”, “저 정도 얼굴이면 안 넘어가고 못 버틸 것이다”라는 식의 댓글들이 그랬다. 공인의 섹스 스캔들인 만큼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할 텐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외모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람이 본질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어떤 성품을 가지고 있는지보다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주목을 받는 세상인 것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는 신림동의 한 거지가 큰 화제가 되었다. 덥수룩한 머리칼에 빨지 않은 두꺼운 옷을 입은 그는 영락없는 거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잘 생겼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에게 ‘꽃거지’라는 애칭까지 붙여주었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 남자를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거지의 외모가 이슈가 되는 세상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어릴 적 우리에게 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옷에 흙이 묻어도 머리가 조금 헝클어져도 모두가 같은 친구였다. 눈이 조금 작고 코가 낮은 것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기의 과자를 반으로 쪼개 나눠주는 친구가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였을 테니까... 그렇다면 사람의 본질을 선명하게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가리는 것은 뭘까? 나는 이러한 현상에 미디어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미디어는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방법을 통해 우리의 시선을 왜곡한다. 최근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에는 유난히 ‘외모혁신’을 슬로건으로 하는 것들이 많다. SBS의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의 ‘다이어트킹’이라는 코너가 바로 그 예인데, 소재 고갈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프로그램을 다시 도약하게 해주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코너는 초고도 비만으로 건강상 위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도전자로 나와 몇 주간의 지독한 훈련을 통해 살을 빼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건강을 되찾고 숨겨진 외모까지 발견한다는 취지 아래 인기리에 방영됐다.
도전자의 다이어트는 저마다 간직한 사연들과 적절하게 섞여 시청자들에게 놀라움과 감동을 동시에 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무리한 다이어트를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었다. 365일을 다이어트를 하며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또 하나의 동기부여일 뿐만 아니라 외모의 중요성을 한 번 더 강조해 주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뚱뚱한 그들의 모습도 각자의 개성을 간직한 채로 충분히 멋있어 보였다. 오히려 다이어트 성공 후 완벽한 몸매로 무대 위에 선 모습이 어딘가 모르게 찡해 보였다. 보통의 사람들 속에서 튀지 않는 평범한 외모를 갖추게 된 것이 박수갈채의 대상이 되는 것 말이다. 흉하지 않을 만큼 적당한 외모란 것이 도대체 누가 정해 놓은 것이란 말인가.
일요일을 웃음으로 마무리해주는 KBS 2TV의 ‘개그콘서트’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소수의 뚱뚱하고 못생긴 개그맨들이 억지스럽고 흉측한 역할을 모조리 다 연기하고 있다. 외모 차별은 대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장난스러운 포즈에서 더 나아가 못생긴 외모 자체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슬프다. 외모가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는 사실을 이토록 심심치 않게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금 못 생기고 잘 생긴 얼굴 때문에 많이 울고 웃는 세상이다. 이 가슴 아픈 현실이 전파를 타고 퍼졌을 때 외모라는 조건은 더 크고 중요하게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스크린 속 완벽한 연예인들은 외모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형을 권유한다. 못 생긴 사람들이 무참하게 차별받는 차가운 TV 속 허구의 이야기는 곧 실제처럼 그려진다. 순간의 사탕발림처럼 예쁘고 잘생긴 외모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는 좋다. 하지만 미디어 속 세상이 특별하고 아름답다 할지라도 평범한 얼굴로 각자가 가진 매력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외모에 감사해 하며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미디어가 그런 면에서 더욱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사람이 가진 매력 100가지 중에 1가지가 외모인데 그 하나로 전체의 사람을 평가할 수 없는 법이다. 항상 본질은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차갑고 어두운 땅 밑에 정말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시원한 우물이 있다. 거칠고 딱딱한 껍데기 속에는 항상 부드럽고 달콤한 알맹이가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겉으로 드러난 얼굴로 그 속을 함부로 정의내릴 수 없다.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지 못하고 “내가 세상에서 최고야”를 외치던 그 때를 생각해 보자. 그리고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다시금 자부해 보자. 미디어가 주는 왜곡된 안경을 벗고 주관적으로 자신의 겉과 속 모든 모습을 사랑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