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사회

2014-05-06     양혜승 시빅뉴스 편집위원
요즘 대학들이 비상이다. 취업률 때문이다. 정부는 각 대학의 취업률에 따라 해당 대학에 대한 정부지원금이나 여러 혜택에 차별을 둔다. 일자리 창출을 근본적으로 책임져야 할 정부가 대학을 상대로 횡포를 부린다. 그러다보니 많은 대학들도 비이성적인 행태를 보인다. 대학의 구조조정을 하면서 취업률을 기준으로 삼는다. 취업률이 낮으면 학과가 폐지되는 것이다. 교수들이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기업체에 발품을 팔고 다니는 것은 잘 알려진 현실이다. 대학사회의 판단기준과 활동이 모두 취업률로 귀결된다.  대학의 상황이 이럴진대 취업의 당사자인 대학생들의 긴박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달콤한 캠퍼스의 낭만은 취업이라는 현실 앞에서 철없는 호사다. 이십대의 태반이 백수라 하여 이태백 세대라 일컬어지는 그들. 자신도 그 백수 대열에 합류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산다. 평균 월급 88만원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세대라 하여 88만원 세대로도 일컬어지는 그들. 취직이 된다 해도 과연 버젓이 먹고 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도 엄습한다. 이 세대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스펙 쌓기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철없는 호사’를 뒷전으로 하고 스펙 쌓기에 ‘몰빵’한다. 외국어, 공모전, 사회봉사, 해외경험, 인턴 등등. 좁디좁은 구직시장에서 자신의 상품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따로 있다. 미래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과 스펙 쌓기를 악용하는 사회적 구조다. 사실 대학생들이 쌓는 스펙들 중 많은 것들은 그들의 젊은 피를 사회에 헌혈한 대가다. 공모전만 해도 그렇다. 대학 캠퍼스 곳곳에는 하루가 머다 하고 공모전 포스터가 나붙는다. 사기업부터 공기업까지 공모전을 개최하는 기관들도 참 다양하다. 공모전을 소개하는 잡지가 따로 있을 정도이니 두 손 다 든 셈이다. 공모전은 분명 미래를 준비하는 대학생들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모전에서 참을 수 없는 상술의 가벼움이 느껴진다. 알량한 상금을 보노라면 더욱 그렇다. 수상자가 받는 상금을 모두 합해도 저녁시간대 20초짜리 지상파 광고 한 편 금액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저작권은 거의 대부분 주최 측이 가져간다. 젊은 아이디어를 아주 싸게 획득하려는 속셈에 다름 아니다. 인턴 제도도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고용을 보장하지 않는 단기인턴 자리가 유행이다. 물론 그야말로 쥐꼬리 임금이다. 인턴을 채용하면서 회사들이 내거는 조건이 가관이다. 인턴기간이 끝나고 인턴 인원 중에서 고용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고용이 ‘될 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죽어라고 일하는 것밖에 도리가 없다.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강자에게 대항할 방법은 많지 않다. 더욱이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사회적 강자는 시스템을 만들고 거기에다가 사회적 약자의 희망이라는 이름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다. 마치 그것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애당초 기획된 것처럼.  <88만원 세대>라는 책에서 저자들은 젊은 세대의 열악한 경제상황은 기성세대와의 세대간 경쟁에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존 세대가 젊은 세대의 안정적인 노동시장 진입을 구조적으로 막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의 공모전과 단기인턴 열풍은 거기에 더해 또 하나의 우려를 제기하게 만든다. 이제는 젊은 세대가 노동시장에 대한 진입 이전에서부터 구조적으로 착취를 당하는 현상이 선명해지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그리고 기성세대는 가진 것 없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의 피를 잔인하게 흡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뱀파이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