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서 화장하면 민폐인가요?" 뜨거운 찬반 논란
“피해 주는 것도 아닌데, 뭐 어때” vs “그럼 아예 겨드랑이 털도 밀어라” 네티즌 갑론을박 / 정인혜 기자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 직장인 신모(29) 씨는 얼마 전 앞 좌석에 앉은 할아버지로부터 ‘한 말씀’을 듣고부터는 영 눈치가 보인다. 할아버지가 아이라인을 그리는 신 씨를 보고 “여자가 칠칠치 못하게 지하철에서...”라며 혀를 끌끌 찼다고.
신 씨는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게 남들한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왜 눈치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사람이 뭐 하는지 쳐다보는 사람이 더 이상한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남성 최모(31) 씨는 신 씨의 생각과 다르다. 최 씨는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것은 ‘민폐’라고 단언했다.
그는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자를 보면 에티켓을 모르는 사람 같다는 생각만 든다”며 “피해만 안 끼치면 괜찮다는 논리라면, 남자들은 지하철에서 면도해도 된다는 소리인가 보다. 화장만 할 게 아니라 겨드랑이 털도 밀지 그러냐”고 비꼬았다.
지하철 안에서 화장하는 여성을 ‘민폐’로 봐야 할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이를 주제로 한 논쟁은 과거부터 꾸준히 있어 왔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사회적 규범이나 합의가 확고하게 굳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게 왜 욕먹을 일인가요"라거나 반대로 "제발 지하철에서 화장 좀 하지 마세요"라는 글이 심심치 않게 올라오고, 관련 기사에는 댓글이 수백 개씩 따라붙는다.
지난해 10월 일본에서는 ‘화장은 집에서 하세요’라는 공익 광고를 내걸어 논란이 일었다. 해당 광고에는 “도시의 여성은 모두 아름답다. 하지만 때론 꼴불견이다”라는 내용이 담긴 문구와 함께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여성의 그림이 실렸다.
당시 광고를 접한 네티즌들은 “여성에 대한 억압이다”, “꼴불견인 남자 승객들이 더 많은데 왜 화장만 문제 삼느냐”는 항의를 쏟아냈다.
논란이 이어지자, 광고를 내건 도큐전철 측은 “고객들의 의견을 수용해 광고에 반영했을 뿐”이라며 “다른 의견들도 앞으로 공익 광고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비슷한 논란은 한국에서도 있었다. 지난해 4월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화장하고 나오지 못한 여성을 위해 지하철역에 ‘파우더룸’을 설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다.
당시 네티즌들은 “지하철에서 화장하기 불편했는데 파우더룸이 생긴다니 좋다”는 등 반기는 의견과 “남자를 위한 변기룸은 왜 없냐”는 등의 의견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펼쳤다.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것”이라며 파우더룸 설치가 무의미하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더러 있었다.
여론이 갈리는 현상은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3월 허핑턴포스트가 ‘지하철에서 화장하기’에 대한 찬반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조사에 응한 9273명 중 ‘화장해도 괜찮다’는 의견이 전체의 61%, ‘부적절하다’는 39%를 차지했다.
지난해 8월 영국의 데일리메일이 보도한 설문 결과에서는 약 41%의 응답자가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렇듯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것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고 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르고, 생활 방식이 다른데 법적으로 정해진 문제가 아닌 이상 이 문제를 결론 내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주변에서 불편을 느낀다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