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형조판서, 우의정 등을 거치면서 황희, 맹사성과 함께 3대 청백리로 이름 높았던 문화 류씨 류관(柳寬)의 본래 한자 이름은 류관(柳觀)이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을 함부로 바꾸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이었음에도 그가 개명을 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때는 세종 8년(1426년), 류관의 아들 류계문(柳季聞)이 충청 관찰사에 임명된다. 당시 관찰사는 지금의 도지사격으로, 관직에 입문한 자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막강한 권력의 지방 고위직이었다. 하지만 류계문은 이 보직을 제수하기를 주저한다. 이유는 관찰사(觀察使) 직함의 ‘관’자가 부친 이름의 ‘관(觀)’과 같았기 때문이다. “어찌 감히 아버님 함자를 내 직함으로 쓸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아버지 류관은 자식의 창창한 미래를 위해 자신이 개명하기로 작정하고 세종 임금에게 주청, 볼 ‘관(觀)’자 이름을 넓을 ‘관(寬)’으로 바꾼 것이다.
한글 전용 시대 요즘의 젊은이들에게는 낯설지 모르겠지만 경상북도 내륙의 광역시 ‘대구’는 한자로 표기할 때 ‘大邱’로 쓴다. 그런데 원래 땅이름 대구의 한자는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大丘’였다. ‘丘’에서 ‘邱’로-. 뜻은 같지만 이렇게 한자가 바뀌게 된 것은 조선 중기 한 유생이 “일개 변방국의 지명에, 중국의 대성현 공자의 이름 공구(孔丘)와 같은 ‘구(丘)’를 쓰는 것은 외람스럽다”며 조정에 상소, 정조 임금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인명이나 지명에서 존숭받아야 할 위대한 인물의 이름 함자를 피하는 이같은 ‘피휘(避諱)’ 문화는 유교의 전통이 강한 동양 3국, 특히 중국과 한국에 뿌리 깊다.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唐朝李世民)의 통치 시절 중국의 모든 관민의 이름에서 ‘세(世)’자가 사라졌다. 기왕의 ‘世’자를 쓰던 이름이면 그 글자를 빼던지, 아니면 다른 글자로 바꿔 작명해야 했다. 심지어 족보에서 대물림을 셈하던 ‘세(世)’자도 ‘대(代)’자로 바꿔써야 했고 불자들이 자비의 부처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를때도 ‘세’자를 빼고 ‘관음보살(觀音菩薩)’로 불러야 했다.
고려시대 역사가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쓰면서 고구려 말기의 영웅 연개소문(淵蓋蘇文)을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 표기했다. 당나라 고조 이연(李淵)의 함자 ‘연(淵)’를 피휘한 것이다.
경복궁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 있는 중문에는 ‘흥례문(興禮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이성계가 서울에 도읍하면서 지었던 이 문은 원래 ‘홍례문(弘禮門)’이었다. 이 것이 흥례문으로 개명된 것 역시 피휘였다.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재건하면서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휘(諱) ‘홍력(弘曆)’을 피해 비슷한 발음의 글자 ‘흥(興)’으로 바꾼 것이다. 요즘 외국인 관광객들의 기념 사진 베스트 뷰포인트로 이름 높은 흥례문에 이런 사대주의적 피휘의 사연이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 싶다.
서양의 작명 문화는 정반대다. 위대한 큰 인물이나 조상의 이름을 피하기는커녕 그대로 따라서 짓는 경우가 많다. 골프 선수 데이비드 라브 3세처럼 ‘2세’, ‘3세’ 하는 식으로 아버지, 할아버지와 똑 같은 이름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며, 좋아하는 친구, 또는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을 자신의 아들 딸에게 붙여주는 장면을 헐리우드 영화 등에서 자주 볼수 있다. 일종의 ‘오마주’인 셈이다.
또 유럽인들은 성서에 나오는 히브리 성인이나 그리스 로마 영웅의 이름을 자주 빌려다 쓴다. 창세기 인류의 조상 ‘아담’을 비롯, ‘이삭’ ‘아브라함’ ‘데이비드’(다윗의 영어식 표기) 등은 구약에 나오는 성인의 이름이고 ‘피터(베드로), ‘존(요한)’, ‘조셉’ ‘사이먼’ 등은 신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이름이다. 또 ‘알렉스’는 그리스의 영웅 ‘알렉산더 대왕’ 이름에서 나왔다.
작년 10월 박근혜 국정 농단 사건이 터진 이후 ‘박근혜’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개명 신청을 한 사례가 서울에서만 18건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이름을 바꾸고자 하는 이유로 “박근혜란 이름이 나쁜 뉴스의 주인공으로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고, 박근혜란 이름에 대해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고 있으며, 박근혜란 이름으로 감수해야 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고 한다.
의미와 취지는 정 반대이지만 이것 역시 ‘피휘’인 셈이다.
또 신청자 중 한 사람은 아버지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 나머지 그의 딸과 같은 이름을 자신에게 붙여줬는데 탄핵 사태 이후 도저히 불편해서 못쓰겠다고 개명 신청 사유서에 적어 놓았다고 한다. ‘오마주’에서 ‘피휘’로 돌아선 사례라 할 수 있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