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의 황새론.... '큰 뜻'인가, '몽니'인가?
/ 논설주간 강성보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 격언 가운데 그 뜻이나 유래를 잘 못 알고 쓰는 경우가 더러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알아야 면장한다”는 격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옛 지방 행정 단위 읍, 면, 동 중 하나인 면(面)의 장(長)이 되려면 거기에 합당한 학식을 갖춰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오해다. 정확히 말하면 틀렸다.
원래 이것은 공자 말씀이다. 논어(論語)에 나온다. 공자는 자신의 아들이자 제자인 리(鯉)에게 이렇게 말한다. “시경(詩經: 춘추전국시대 고전)을 제대로 공부해서 수신제가의 이치를 익혀야 면면장(免面牆)한다”
여기서 ‘면장(面牆)’은 “담장을 마주한 것 같은 답답함”이란 뜻이다. 면사무소의 ‘장’인 면장(面長)하고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 ‘담장을 마주한 답답함에서 벗어난다’는 ‘면면장(免面牆)’이 줄어 ‘면장(免牆)’이 됐고 우리말 속에 “알아야 면장한다”는 속담으로 정착된 것이다.
발명왕 에디슨이 남긴 불후의 명언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말도 대부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에디슨은 당시 기자와 인터뷰하는 도중 자신의 발명 업적에 관해 자랑하면서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을 말했다. 하지만 원래 그 뜻은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은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즉 노력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영감, 천재성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영감이 없는 보통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가 안된다”는 쿨한 지적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기자는 이 말을 약간 비틀어 “1%의 영감이 중요한 게 아니라 99%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미화했는데, 그것이 에디슨의 명언으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전기, 전화 등 수많은 발명품으로 인류에게 문명의 혜택을 선사한 에디슨의 찬란한 공학적 업적을 폄하할 필요는 없지만, 한 과학 전문지 기자의 왜곡된 ‘오보’를 근거로 그를 위대한 사상가로 인식하는 것은 ‘동굴의 오류’일 수도 있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 영수회담 제의를 거부하면서 비판 여론이 일자 “뱁새가 아무리 재잘거려도 황새는 제 갈 길을 간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황새라 ‘자뻑’하고, 비판하는 타 정당 정치인을 ‘뱁새’로 폄하한 것이다. 뜻은 충분히 알아듣겠지만 홍 대표의 이 말도 속담을 착각에서 잘못 인용한 오류라 지적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뱁새와 황새가 나오는 속담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것이다. 사자성어로는 ‘작학관보(雀學?步)’라 한다. “무리하게 남따라 하다가 낭패본다”는 뜻이다. 홍 대표는 “하찮은 시정 잡인이 아무리 왝왝거려도 나는 독야청청 우아하게 날아다닐 것”이라는 취지로 ‘뱁새~ 황새~ “ 운운했으나 동물들을 잘못 동원하는 오류를 범했다.
아마 홍 대표 머리 속에서는 사기 진섭세가에 나오는 ‘연작안지(燕雀安知) 홍곡지지(鴻鵠之志)’의 고사가 들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큰 기러기와 고니의 뜻을 제비나 참새가 어찌 알겠느냐”는 뜻이다. 이 고사를 잠시 소개하면-.
진시황 폭정 시대 양성(陽城)이란 곳에서 남의 집 종살이를 하던 진승(陳勝)이란 사람이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다 “이 놈의 세상 뒤집어 놓아야지, 원”이라며 푸념했다. 이를 들은 다른 머슴들이 “종 주제에 뭐한다고? 츳츳”이라고 핀잔했다. 이 때 진승이 한 말이 ‘연작안지, 홍곡지지’다. 실제로 진승은 나중에 동료 머슴들과 함께 “왕후장상 씨가 따로있나”라며 무장 봉기를 일으켜 진(秦) 제국을 무너뜨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의 반란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농민 봉기로 기록되고 있다.
명문대학을 나오고 사법시험을 합격했으며 국립묘지 방명록에 남들과 달리 한자어를 써넣을 정도로 한학에 일가견을 가진 홍 대표가 이런 사자성어나 고사들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아마 그는 의도적으로 두 고사를 버무려 자기 나름 새 버전의 경구를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뱁새가 짖어도 황새는 제 갈 길 간다”는 그의 말에 ‘뱁새’로 칭해진 정치인들이 발끈했다. “속좁은 쫌팽이”라는 거의 욕설에 가까운 험담도 나왔다. 그의 표현대로 남 ‘조지는’ 데 일가견을 가진 홍 대표가 이 험담에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하다.
혹여 이 글을 쓰는 필자도 홍 대표의 눈에는 재잘거리는 뱁새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뱁새’는 홍 황새의 큰 걸음에 태클을 걸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