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 샷' 찍으러 봉사활동 갔나...'인권 침해' 논란
장애인 시설 수용자 등 사진 찍어 SNS에 올리기 예사...인권위, "동의 없이 찍으면 초상권 침해" / 정인혜 기자
대학생 김모 씨는 얼마 전 SNS를 보다 깜짝 놀랐다. ‘요양원 봉사’라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 때문이다. 해당 게시글을 올린 친구는 요양원에서 봉사했다며 한 할아버지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훤히 드러난 채였다. 김 씨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지 않느냐고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어봤지만, 그는 삭제하겠다는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내 SNS인데 뭐 어때?”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찍는 ‘인증 사진’이 자칫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개 이런 인증샷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찍기 때문에 초상권 침해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SNS에서는 이른바 ‘봉사활동 인증샷’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 ‘#요양원 봉사’를 검색하면, 떠오르는 사진만 150여 장에 이른다. 해시태그를 설정하지 않고 올리는 사진도 많을 터. 이에 대해 시민들은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사회복지사 조모(32) 씨는 이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봉사의 기본 정신은 타인을 돕고 배려하는 것인데, 그들을 관심거리로 치부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조 씨는 “요즘 사람들은 봉사한다고 와서 사진 찍고 카메라 인증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정치인과 다를 게 무엇인가”라며 “본인의 행동이 봉사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깊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반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견도 더러 있다. 직장인 박모(33) 씨는 “봉사하러 간 곳에서 기념으로 사진 찍는 게 뭐가 잘못이냐”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찍은 것도 아니고, 일부러 연출한 상황도 아닌데 인증샷 하나로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등의 지적은 과민반응 같다”고 주장했다.
법은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법은 조 씨의 편이다. 우리 헌법에는 초상권을 다루는 명확한 조항이 없지만, 헌법 10조에 규정된 ‘행복추구권’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당사자가 사진 찍히는 것을 불행하다고 느끼면 헌법이 보장한 행복추구권이 침해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동의 없이 사람을 찍는 것은 헌법 10조를 위반한 위법행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고 민사상 손해배상만 청구할 수 있다.
요양원이 아닌 장애인 시설의 경우, 법의 잣대는 더욱 엄격해진다. 장애인 시설에서 당사자의 동의 없이 촬영한 사진을 유포할 경우, 법적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30조 2항에는 “가족, 가정 및 복지시설 등의 구성원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의 의사에 반하여 장애인의 외모 또는 신체를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복지 시설 내에서 촬영한 어르신이나 장애인의 사진을 유포하는 행위는 인권 침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며 “자원봉사자와 시설 내 관리자들 모두 사진 촬영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