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모르는 '극한의 직업' 집배원...6개월간 12명 사망
연평균 2888시간 노동에 과로사, 자살 잇따라…노조 "죽지 않을 권리 보장하라" 절규 / 정인혜 기자
2017-07-18 취재기자 정인혜
“죽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라.”
6개월만에 현업 노동자 12명이 유명을 달리한 직업이 있다. 그것도 고위험군 직업이 아닌 우체국 집배원이다.
전국우체국노동조합(우체국노조)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6개월간 사망한 집배원은 12명,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따지면 총 18명에 이른다. 사인은 과로사, 분신, 자살 등이다.
고용노동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한 달 평균 노동시간은 240.7시간. 연평균 2888.5시간에 이른다. 이렇게 근무하는 집배원들은 1일 평균 1000통 이상의 우편물을 배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770시간보다 515시간이 많다.
집배원 A씨는 “먹고 살기 위해서 가진 직장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새벽 6시에 출근해 저녁 7시까지 우편물을 배달한다. 우편물 분류 작업을 하는 날에는 하루를 꼬박 지새우는 경우도 있다.
A 씨는 “일주일에 한 번 쉬기도 힘들다”며 “우체국 분위기가 너무 절망스럽다. 솔직히 이런 환경에서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상할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년 1년 동안 집배 노동자의 평균 휴가 사용일은 2.7일로 조사됐다.
이에 우체국노조는 집회를 열고 집배원의 노동 환경 개선 및 집배원 사망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우체국노조는 17일 국가인권위 앞에서 “국가적 차원에서 우체국 노동자의 죽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우체국노조가 요구한 바는 ▲정당한 노동을 할 권리 ▲ 정부조직의 시정 권고 ▲ 사망사고 진상 규명 등이다.
우체국노조는 이날 “지난 6개월간 우체국의 현업노동자 12명이 사고나 자살 등으로 유명을 달리하였으나 이에 대한 즉각적인 대책이 없다”며 “근무 중에 사망하였음에도 개인적인 병력이나 과실로 몰고 있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집배원들이 사망한 사례로 비춰 볼 때, 인원이 증원되기까지 남은 업무를 도맡아하는 집배원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정부는 내년까지 집배원 100명을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집배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직접 언급한 바 있다. 논란이 일자 우정사업본부는 내년까지 집배원의 근로 시간을 연장 근무 시간을 포함해 주 52시간 이내로 단축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우체국노조는 비판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여주기식’ 행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체국노조는 이날 “정부는 인력증원 요구를 외면한 채 현실과 맞지 않는 유연근무제 도입과 연가 사용을 강제하고 있다”며 “집배원 3600명을 즉각 증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국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직장인 정민경(35, 서울시 동작구) 씨는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가 열악한 집배원, 소방공무원, 택배관련업자들의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인력 늘리고 근무환경 개선하기 위해 추경 통과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박우석(29, 경기도 시흥시) 씨도 앞선 의견에 동조했다. 박 씨는 “관련 책임자를 처벌하고 하루빨리 노동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대접은 못 받더라도, 비상식적인 일터에서 착취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