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색내기 초대권 없애자 관객 더 몰려
부산국제연극제의 공짜 손님 사절 캠페인 대 성공
평소 연극을 자주 보는 대학생 허모(23) 씨는 “난 돈 내야하면, (그 공연에) 안 간다. 요즘 누가 돈 내고 공연을 보냐?”고 호언장담했다. 초대권이 있기 때문이다. 초대권은 일반 관람객이 공연을 공짜로 관람하도록 주최 측이 제공하는 티켓을 의미한다. 행사 개최에 도움을 준 특별 게스트나 내빈을 위한 ‘초청장’과 달리, 초대권은 그간 특별한 목적 없이 단순히 객석 채우기 용도로 사용되거나 선심성 티켓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연극계의 정설이다. 예전부터 한국 공연 문화에 초대권은 관행화되어 ‘약방의 감초’처럼 빠짐없이 등장해왔다는 얘기다.
재정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초대권을 배포하는 행사 주최 측의 울며 겨자먹기식 행동에는 ‘머릿수’를 채워야하는 이유가 크다. 통계청에서 운영하는 국정통계정보시스템인 e-나라지표에 의하면, 2011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1년 동안 총 1만 7,801건의 공연이 열렸다. 하루에 약 49건의 공연이 열리는 셈이다. 공연기획사에서 일하는 지모 씨에 따르면, 부산국제영화제나 거창국제연극제처럼 행사 명칭에 지역 이름이 들어간 행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에 홍보 차원에서 해당 축제가 열리는 시, 도에서 지원을 받는다. 주최 측은 매년 성과보고서를 후원한 지자체에 올리고 그에 따라서 다음 해 예산을 배정받기 때문에 관객 동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축제는 사람이 많이 모여야 행사가 원활하게 진행된다. 초대권을 몇 백 장을 뿌려서 무료 관객을 어느 정도 채워두면, 그걸 보고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고 한다. 지 씨는 ‘뮤즈(MUSE)’ 같은 세계적인 락밴드를 공연자로 새워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는 ‘안산 록 페스티벌‘ 같은 경우는 공연하는 밴드에게도 초대권을 두세 장밖에 주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티켓 값이 10만원이 넘지만, 안산 록 페스티벌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록 페스티벌로 인지도를 쌓았기 때문에, 후원 기업이나 지자체에 예의상 제공하는 초대권을 제외하면, 굳이 초대권을 남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도 마찬가지다. 검색 엔진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초대권’을 검색하면, 제일 먼저 ‘돈을 줄테니 초대권을 팔아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뜰 정도로 초대권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소규모, 혹은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는 사정이 다르다. 인지도가 낮은 한 밴드의 공연에 300명 정도가 왔는데, 개중 절반이 초대권으로 온 관객이었다며 지 씨는 한숨을 쉬었다. 지 씨는 “설령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사람이 이렇게 많이 왔다는 점에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말을 흐렸다.
영화를 좋아해서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다닌다는 대학생 김모(22) 씨는 행사 주최 측에서 초대권을 남발하면서 거기에 따른 재정 손실을 줄이기 위해 유료 티켓을 구입하는 관객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오죽하면 그런데 돈 내고 가는 사람은 호구라는 말까지 있겠어요?”라고 김 씨가 말했다.
2012년 11월 26일자 뉴시스의 보도에 의하면, 전주시 신성장산업본부에 대한 행정 사무 감사에서 김남규 전주 시의원은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 티켓 판매분이 2008년 28%의 점유율을 보였으나, 2012년에는 20%로 하락한 점을 지적하며 이를 주최 측의 초대권 남발로 보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재준 경기도 의원도 자신의 블로그에 고양시 시설관리공단인 고양어울림누리 행사에서 2006년 상반기에 열린 공연의 초대권 발행 통계를 올렸다. 이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 통계에 의하면 초대권이 전체 표의 약 40%를 차지했다고 언급하며 초대권 발행 관습에 대해 비판했다.
이렇게 한국 공연계에서 일종의 필요악이 된 초대권 남발 관습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낸 행사도 있다. 바로 지난 3일부터 12일까지 열렸던 부산국제연극제다. 개최 10주년을 기념해서 부산국제연극제 조직위원회는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더불어 야심찬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것은 초대권이 난무하는 한국에서 주목할 만한 ‘초대권 폐지’ 캠페인이었다.
부산국제연극제 홍보 담당자는 건전한 공연 관람 문화 정착을 위해 초대권을 폐지했다고 설명했다. 이 담당자는 초대권이 사용되어 정당한 돈을 지불하지 않고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창작자들에게 적절한 보상과 수익이 없어 공연의 질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초대권을 폐지함으로써 공연자에게는 보다 더 나은 여건을, 관람객들에게는 보다 더 좋은 공연을 제공할 수 있는 서로 상생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초대권 폐지 캠페인을 실천한 부산국제연극제가 거둔 성과는 놀라웠다. 먼저 올해 제10회 부산국제연극제는 역대 최고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 부산국제연극제는 행사 기간 동안 개폐막식 및 야외 부대행사를 포함하여 3만 1,363명이 관람하였으며, 총 58회 공연 중 5개 작품 7회 매진을 기록하여 부산국제연극제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증명했다. 부산국제연극제 조직위원회는 이를 초대권 폐지 캠페인과 연극제의 대중화를 위해 전 연극의 1만원 균일가 정책을 동시에 병행하면서 낸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유료 관객 점유율도 상승했다. 개폐막식 초청장을 제외하고는 모든 공연의 초대권을 폐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객석 점유율이 60%를 훌쩍 넘었다. 또한 총 5개 작품, 7회 매진되었다는 점에서, 부산국제연극제가 부산을 대표하는 공연 예술 축제로서 자리 매김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조직위원회가 전했다. 전국의 모든 공연 예매를 취급하는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개최 기간 중 부산국제연극제의 예매 순위가 상위에 랭크되었고, 부산국제연극제 공연장 중 하나인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1500석 좌석이 매진되는 등 초대권 없는 부산국제연극제의 성황을 증명하는 일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부산국제연극제 조직위원회는 앞으로도 초대권 폐지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펼쳐, 부산의 건전한 공연 문화 정착을 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산국제연극제의 초대권 폐지 캠페인은 내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