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테, 안단테...

2013-08-26     정일형 시빅뉴스 편집위원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세계적인 히트송을 내며 활동했던 그룹 ABBA의 “Andante Andante”라는 노래가 있다. Andante는 음악에서 곡 전체 또는 한 부분을 얼마나 빠르게 연주해야 하는지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숫자나 문자로 ‘느리게’를 의미한다. 초등학교 어느 음악 시간에 메트로놈을 켜 놓고, “라르고 – 렌토 – 아다지오 – 안단테 – 안단티노 – 모데라토 – 알레그레토 – 알레그로 – 비바체 – 프레스토 – 프레스티시모” 등을 외치던 기억이 남아 있다. 아바의 노래 “안단테 안단테”는 남녀의 사랑이 조용한 음악처럼 천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바라는 의미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유독 이 ‘안단테’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바로 우리 삶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부터 아바의 “안단테 안단테”를 틀어 놓거나, 안단테에 버금가는 느린 음악과 함께 느림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 바란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닫기 버튼을 재빨리 누른다. 스마트 폰이나 컴퓨터에서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고 화면이 로딩되는 시간 동안 속 터짐을 호소하거나 화면을 닫아버린다. KTX 열차나 고속버스가 2-3분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교통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먼저 튀어나온다. 또 우리는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한 달 정도 지났는데 몸무게에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스포츠센터의 재등록을 고려한다. 신호등을 건너는 도중 파란불이 깜박이는 것을 보면 무조건 뛰어 건넌다.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를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거나 올라간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우리 일상의 조급한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위에 열거한 몇 가지 사항을 한 번 되짚어보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닫히는 시간은 보통 5-7초 정도 된다. 조금 빠른 동작을 하는 엘리베이터는 3-4초 정도에 반응하기도 한다. 누가 알겠는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3-4초 또는 5-7초 정도의 시간 동안, 혹 급하게 올라가려 하는 사람이 탈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내가 닫힘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는 사이 다른 급한 일로 엘리베이터의 탑승이 필요한 사람의 원망어린 시선을 우리는 보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몸은 완벽하게 자연적인 것이어서 어떤 변화에 반응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아이가 세상을 나오기 위해 약 40주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이 다이어트 식단과 운동 리듬에 반응하기까지 최소한 3개월 가량, 혹 살이 많이 찐 사람은 6개월 이상의 변화 주기를 필요로 할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1주일 또는 길어야 한 달 정도 지나고 아주 급격히 변화한 내 몸을 보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방법들을 총동원한다. 이렇듯 소위 우리 문화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빨리빨리’ 문화는 그동안 여러 장단점이 어우러진 사회문제들을 야기시켜 왔다. 우리는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나라에서 50여년 남짓한 기간 동안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어 OECD 회원국이 되었고 우리 정책을 여러 회원국들과 비교하는 통계를 수시로 뉴스에서 접하는 환경을 만들어냈다. 1899년 경인선 철도가 서울 노량진에서 운행을 시작한 이래 시속 305Km 속도를 자랑하는 KTX 산천을 독자적으로 개발함으로써 세계 10위권 초고속 열차를 보유한 나라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컴퓨터 메모리, 초고속 인터넷, 스마트폰 보급률 등 속도로 대표되는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상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마치 우리의 빠름에 대한 욕구를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속도에 반하는 상대적인 느림에 대한 많은 것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아주 빨리 사라지거나 지워지고 있기도 하다. 우선, 어렸을 적 기차 여행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삶은 달걀과 소금, 그리고 사이다는 기차 여행의 필수품이었고, 정차하는 역마다 독특한 문화를 체험할 수가 있었다. 그 중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대전역의 가락국수다. 일제 강점기 호남의 좋은 농산물을 부산항으로 실어 나르기 위해 대전역에서 호남선을 분기하여 부산으로 방향을 바꾸어 기차를 운행했기 때문에 대전역은 다른 기차역들보다 정차 시간이 길었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사람들은 기차에서 하차해 승강장에서 비교적 빠르게 나오는 음식이었던 가락국수를 시켜먹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호남선이 서대전역을 경유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이후에도 여전히 경부선의 대전역 가락국수가 명물로 남아 80년대 정차 시간이 5분 남짓 하던 시절에도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기차 노선이 KTX로 대체되고 대폭 줄어든 새마을호나 무궁화호 모두 2분이라는 공통적인 정차시간을 가진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덕분에 대전역의 명물 가락국수는 역 안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사라졌다가 옛 추억을 회상하는 많은 철도 이용객들이 민원을 넣어 대전역사 입구 쪽에 지난 5월 정식으로 판매점이 문을 열었다고 한다. 어디 그 뿐이랴.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하얀 밤을 지새고 꼭꼭 눌러 쓴 마음을 편지로 보내고, 혹시 못 받았으면 어쩌나, 배달이 안 되었으면 어쩌나 마음 졸이던 편지쓰기도 언제 마지막으로 편지를 써 보냈을까 싶을 정도로 사라져간다. 사람들이 밀리면 3-4일씩 걸려 야속하기만 하던 사진관 아저씨에 대한 기억도 저편으로 사라져간다. 이제 우리는 ‘슝~’하는 바람소리나 ‘땡“치는 종소리의 효과음과 함께 1-2초면 상대방이 내 메일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 카메라에서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하고 마음에 들면 직접 인화지에 프린트해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줄을 서고 혹시 상대방이 직접 전화를 받지 못하고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가슴 졸이던 풍경이 사라지고 직접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난 날의 기억이 소중하고 좋기 때문에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는 얘기는 아니니, 혹 아직도 우리의 욕구를 채우기에 지금의 변화 속도조차 부족하다는 사람들은 안심하기 바란다. 다만, 이 짧은 글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속도감이 지나치게 빠른감이 있으니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생각을 편히 가져보자는 것이다. 흔히 모든 습관은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변화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지나친 속도에 대한 조급함은 우리의 모습을 조급하고 분주한 이미지로 만든다. 아마 미래의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얼굴에 짜증 가득하며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그릴지 모른다. 우리의 모든 일상을 안단테로만 진행할 수 없고, 반대로 모든 일상을 비바체나 프레스토로만 진행할 수도 없는 일이다. 다만, 일상에서 몇 초 안되는 조금의 안단테적인 여유가 다른 모데라토, 비바체, 프레스토적인 다양한 것들과 어우러져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아름다워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것이 조급한 우리의 습관을 바꾸는 훌륭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디 지금부터는 앞서 언급했던 엘리베이터, 스마트폰이나 PC, 고속철이나 버스, 다이어트나 신호등 등의 상황에서 한 숨 쉴 만큼이 여유를 가져보도록 하자.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엔 분명 어느 순간 잠시 멈추어야만 비로소 바라보이는 것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