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핵보유론, 위험천만한 발상...북한처럼 ‘고난의 행군’하겠다는 건가?
/ 편집위원 이처문
북한이 유엔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거듭하고 미사일을 쏘아대자 일각에서는 유엔(UN)의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안정보장이사회가 그 어떤 제재를 해본들 북한은 눈도 꿈쩍 않고 제 갈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정부 상태인 국제사회에서 국가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거나 아니면 상대를 속여 싸우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외톨이로 지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이기적인 국가들이 어떻게 협력을 통해 ‘국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가를 설명하는 게임이론이 있다. 바로 ‘죄수의 딜레마’다.
로버트 액설로드는 <협력의 진화>에서 이 이론을 근거로 한 국제 관계에 대한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나와 상대가 모두 협력하면 각각 3점, 둘 다 배신하면 각각 1점, 상대는 배신하지 않았는데 내가 상대를 배신할 경우 나는 5점, 상대는 1점을 준다. 이런 방법으로 컴퓨터 프로그램들끼리 200회 게임을 했더니 ‘팃포탯(tit-for-tat)’ 전략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반면 높은 점수를 노리고 늘 배신하는 전략은 점수가 가장 낮았다.
팃포탯은 협력에 대해 보상하는 맞대응 전략이다. 처음에는 상대가 협력해줄 것으로 믿고 무조건 협력한다. 그런데 상대가 배신하면 그 다음 게임에서는 자기도 배신한다. 협력에는 협력, 배신에는 배신이다. 하지만 세 번째 게임에서는 모든 기억을 지우고 다시 협력을 선택한다. 먼저 배신하지 않고, 상대가 배신하면 단호하게 응징하되 그 다음은 용서하고 다시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게 액설로드의 주장이다. 이 전략은 기본적으로 국제 협력의 가능성을 믿는 자유주의자들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이 같은 전략이 잘 먹혀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북한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 사이에 신뢰가 약해 국제기구의 힘을 빌어 협력을 유도하거나 국제 질서를 바로잡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
자유주의자들과 달리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사회는 기본적으로 위계질서가 없는 무정부적 체제이기 때문에 국가들은 세력 균형과 억지를 통해 자신들의 안보 불안을 관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따위의 국제 기구는 국가들이 원할 때만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더구나 강대국의 조종에 취약하고 개별 국가의 행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현실주의자들은 안보 문제에 관해서는 협력을 달성하기 어렵고 국가권력에 더 의존하게 된다고 본다. 무정부 상태가 안보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에 국가들은 다른 국가들에 의존하는 것을 꺼린다. 대신 더 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추구하게 된다고 한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핵무기와 미사일을 고집하는 까닭을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국내 정치권, 특히 야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핵보유론’ 또한 현실주의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분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핵무장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면 단순명쾌해 보이는 논리이긴 하다. 자유한국당이 최근 미국에 대표단을 보내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를 주문했다가 퇴짜를 맞기도 했다. 그런데도 홍준표 대표는 “전술핵 배치가 안 되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핵개발을 위해 북한처럼 NPT(핵확산금지조약)도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경제 제재가 무서워 국민의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정말 가능한 일일까.
NPT가 공인된 핵무기 국가들과 비핵무기 국가 사이의 ‘불평등 조약’인 것은 분명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5개 핵보유국이 비핵보유국에 원자력 발전 기술을 전수해주는 대신 군사적 목적의 핵무기 개발을 원천 금지하는 조약이다. 핵무기 보유국들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 핵무기를 포기하고 비핵보유국에 평화적 핵기술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현재 가입국은 190개 국. 북한은 1993년과 2003년 두 차례 탈퇴를 선언했다. 인도, 이스라엘, 파키스탄, 쿠바는 미가입 상태다.
핵보유국들은 핵무기 개발에 대한 제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NPT는 분명 형평에 어긋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PT는 핵 기술의 평화적 이용에 도움이 됐고, 핵무기 확산 저지에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핵무기가 IS(이슬람국가) 등 테러 집단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고 생각해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나라가 핵무기 개발을 위해 NPT를 탈퇴한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당장 국제사회가 제재에 나서게 될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인정해주지 않는 이상 미국도 당연히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한미 동맹이 위태로워지고 주한미군 철수가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다.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하나로 굴지의 롯데와 현대차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데 전방위적인 무역 제재와 금융 제재가 단행될 경우 국가 경제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설사 핵무장을 결정하더라도 핵무장을 위한 일거수일투족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카메라를 벗어날 수 없다. 한국은 미국산 핵연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이 파기되면 원전 연료는 물론 X레이나 CT 촬영에 쓰이는 의료용 핵물질까지 공급이 끊겨 의료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한국의 NPT 탈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핵무장이 아니더라도 미국과 한국의 핵억지력만으로도 얼마든지 우리를 보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핵무장 주장은 북한과 똑같은 길을 가겠다는 선언이나 다를 바 없다. 무역을 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한국이다. 이런 나라에서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핵무장을 위해 ‘고난의 행군’에 동참할지 의문이다. 핵보유론은 글로벌 시대에 대한민국의 생존 기반인 국제 질서를 거부하는 일이다. 하루속히 접는 게 현명할 것 같다. 어리석은 주장을 계속 하다보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 ‘멍청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