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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즈 할머니들과 함께 한 아홉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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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일즈 할머니들과 함께 한 아홉 달
  • 장가희 시빅뉴스 영국 웨일즈 특파원
  • 승인 2014.03.31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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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연수 갔다 왔니?” 내가 휴학하는 동안 영국에 갔다 왔다고 했을 때, 제일 많이 들은 질문이다. 또는, 묻지도 않고 “넌 영어공부를 했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나는 휴학하는 동안 영국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이렇게 대답했을 경우, 대개 사람들은 눈과 목소리, 그리고 리액션이 커진다. “영국에 봉사를 하러 갔다고?”, “거기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나도 처음 영국으로 봉사활동하러 갈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앞선 사람들과 같은 반응이었다. 듣지도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일에 낯설고 당황스러웠지만 별 것 있겠냐는 마음으로 도전했고, 나는 영국으로 갔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는 나이 드신 할머니를 방문해 1~2시간 머물며 말벗이 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거동이 불편해서 나가질 못했고 게다가 방문자도 별로 없었다. 그런 분들께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활기를 불어 드리기 위해 나는 열심히 노력했다. 수다를 떠는 것이 직업이다 보니, 영어는 자연적으로 늘었다. 사실 영어를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서 늘었다기보다는 영어가 조금 더 편해졌다는 표현이 더 맞다. 처음에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고 어떤 얘기를 나눠야 할지도 몰라서 할머니 옆에서 같이 텔레비전만 보았다. 조금씩 말을 붙이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할머니 발음을 알아듣기 힘들어 무슨 질문을 해도 못 알아듣고 내 얘기만 주구장창 하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할머니도 내 영어를 알아듣기 못해서 다른 질문을 계속 했다고 했다. 한달 반부터는 할머니 억양과 발음도 조금씩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나도 알아 듣지 못한 할머니 말에 반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내 자신 스스로 영어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인정하고 나니, 얼굴이 두꺼워 졌다고 해야 할까? 영어 쓰기가 더 편해졌다.
▲ 양로원에서 만난 80세의 Olga 할머니(사진: 영국 웨일즈 특파원 장가희)
영어 실력보다 눈치가 더 많이 늘었지만, 나도 모르게 실전에서 습득한 것들이 많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가 영어가 모국어인 할머니들이었기에 할머니께서 쓰는 단어와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 내가 틀린 발음이나 표현을 쓰면, 할머니들은 그 자리에서 항상 바로 지적하고 고쳐주었다. 내가 그리니치 천문대로 여행 갔다 와서 할머니께 “저 그리니치 갔다 왔어요”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할머니가 어딜 갔다 왔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또박또박 ‘그리니치’를 갔다 왔다고 했다. Greenich는 우리나라 표기법으로도 ‘그리니치’다. 하지만 영어로는 ‘그레니치’라고 발음을 해야 한다. 나는 Green을 ‘그린’이라고 말하는데 왜 ‘그리니치’가 아닌 ‘그레니치’냐고 반문하였으나, 할머니들에겐 당연한 것이었기에 제대로 설명해주는 할머니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했던 일이 할머니 댁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다 보니, 이 일은 언어 습득 외에도 영국 문화에 실제로 풍덩 빠질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었다. 영국 집 구조는 어떻게 생겼는지, 난방은 어떻게 하는지, 식사는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 영국은 설거지하는 방법도 우리와 달랐다. 먼저, 접시가 있는 소쿠리에 물을 담고 세제를 뿌려 수세미로 닦는다. 여기까지는 비슷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접시를 닦고 물로 헹구지 않는다. 바로 티타올로 닦으면 그것이 설거지 끝이다. 처음에 나는 그렇게 설겆이한 컵을 쓰기가 찝찝해서 몰래 물로 헹궈서 썼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어느 날 할머니께서 물을 많이 낭비한다며 꾸짖었다. 나는 이게 꺼렸던 영국 문화 중 하나였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물을 아껴 쓰는 것이 몸에 베인 좋은 문화가 아닌가 생각된다.
▲ 양로원에서 만난 80세의 Pat 할머니(사진: 영국 웨일즈 특파원 장가희)
런던이나 런던 근교엔 사람이 많아서 아파트도 있지만, 내가 살았던 곳은 시골이라서 아파트를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집이 자신의 정원을 가지고 있었고, 여러 할머니를 방문하면서 정원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정원을 가꾸는 것이 취미인 할머니 댁에 가면 예전에 가꿨던 정원 사진부터 시작해서 지금 가꾸고 있는 정원의 꽃들까지 내가 방문할 때마다 정원 얘기를 들려 주었다. 가끔은 나를 정원으로 데리고 가 함께 잔디에 물을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날씨가 좋은 날 정원에서 햇살을 맞으며 갖는 티타임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골프를 좋아하던 할머니의 정원은 할머니의 작은 골프 연습장이었다. 내가 골프를 배우고 싶다고 하니, 할머니는 골프 클럽을 가지고 나와서 나에게 골프를 가르쳐 주었다. 치매가 있는 할머니였는데도 나에게 골프를 가르쳐 준 건 잊지 않았고 매주 내가 방문할 때마다 골프 클럽을 준비해 두곤 했다. 나는 나이 든 할머니만 만나 뵈었지만 할머니들이 주로 하는 얘기가 가족이다 보니 모든 세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이 어디로 휴가를 갔는지, 손녀가 누구와 어떻게 연애를 하는지, 결혼하지 않은 손자가 같이 사는 파트너 이야기 등 할머니 한 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일을 맡기 전까지 노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 외할머니가 가까운 곳에 계심에도 불고하고 나는 전화로 조차 안부를 먼저 여쭤보는 착한 손녀가 아니었다. 그래서 ‘할머니’라는 단어를 나이가 많은 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영국에 와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만났던 20명 조금 넘는 할머니들은 나이가 들어도 ‘예쁘다’는 말을 좋아하며 화장을 하지 않고는 사진 찍는 것을 꺼려했고, 파티 갈 때에 빨간색 드레스를 준비했다. 손녀의 연애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고, 60년 전 남편과의 러브 스토리에는 부끄러운 미소를 내비치는 할머니를 보며, 할머니도 여자라는 것을 느꼈다. 영국에서의 생활은 영어와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운 것만을 떠나, 나의 생각까지 바뀌게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 가장 큰 자산이다. 이렇게 영국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처럼 항상 열린 마음과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소소한 일상에서도 생각을 깨우치는 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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