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잔치 놓고 미혼·기혼 눈치싸움…"남의 자식 생일에 내가 왜" vs "부모 되면 알게 돼" / 정인혜 기자
직장인 김모(32) 씨는 요즘 주말이 다가오면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밀려드는 지인들의 경사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 때문이다. 결혼식, 집들이 등 수많은 경사가 있지만 이 가운데 김 씨를 가장 성가시게 하는 것은 단연 ‘돌잔치’다. 김 씨는 “결혼식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인 자식의 생일 파티에 참석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그는 “남의 자식 한 살 생일 파티에 도대체 내가 왜 가야 하느냐”며 “왼팔에 돈 가방 걸고 오른 팔엔 아기 손 잡고 인사 다니는 엄마들 보는 일도 짜증난다. 돌잔치만큼은 제발 가족끼리 했으면 좋겠다”고 불평했다.
아이의 첫 생일을 기념하는 돌잔치가 ‘민폐 행사’로 취급받고 있다. 대개 돌잔치가 주말에 치러지는 만큼, 이를 '휴일 도둑'이라고 칭하는 하객들이 적지 않다.
돌잔치는 과거 영아 사망률이 높을 때 처음 등장했다. 1년을 살아남았으면 앞으로도 살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 잔치를 벌였던 것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개 집에서 돌잔치가 열렸지만, 급속도로 진행된 핵가족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예식장이나 전문 뷔페, 컨벤션센터에서 치러진다. 참석하는 손님들은 축의금을 내고, 식사를 하며 돌잡이 등의 행사를 지켜본다.
돌잔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돌잔치는 ‘남의 자식 생일 파티’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불만은 특히 젊은 연령대의 미혼자에게서 두드러진다.
직장인 황모(28) 씨도 돌잔치 반대파다. 황 씨는 돌잔치를 ‘시대착오적인 행사’라고 잘라 말했다. 1년간 살아남은 아이를 축하하는 행사가 100세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영유사망률은 1000명당 3명(2016년 기준)으로 선진국 수준이다.
황 씨는 “평생 한 번밖에 없는 행사라 돌잔치를 한다는데, 그렇게 따지면 두 살, 세 살 매년 생일이 평생 한 번밖에 없는 것 아니냐”라며 “아이 추억을 구실로 삼는데 한 살짜리가 무슨 기억을 하겠냐. 돈 걷으려고 그러는 것 다 아는데 돌잔치 하는 사람들은 정말 후안무치한 것 같다”고 열을 올렸다.
온라인에서도 돌잔치는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기사에 ‘돌잔치’라는 말만 들어가도 돌잔치를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진다. 지난해 올라온 돌잔치 전문 업체 소개 기사에는 “돌잔치 자체가 문제다”, “제발 돌잔치는 가족끼리 해라”, “돌잔치를 도대체 왜 하는 건지 모르겠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돌잔치에 대한 네티즌들의 불만이 읽히는 대목이다.
돌잔치를 하는 엄마들도 할 말은 있다. 양가 어른들이 돌잔치를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해 돌잔치를 치른 김모(32) 씨는 “간단하게 기념사진이나 찍고 싶었는데, 시댁, 친정 어른들께서 ‘돌잔치는 꼭 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다. 어른들이 손주 자랑하고 봉투 받고 싶어 하시는 걸 어떻게 막냐”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건 알지만 어쩌겠느냐. (반대하는 사람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다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간 지출한 축의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보상심리도 돌잔치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직장인 정모(39, 부산시 남구) 씨는 “솔직히 요즘 같은 시대에 부모 입장에서도 돌잔치 귀찮고 눈치 보이지만, 그간 냈던 축의금을 생각하면 할 수밖에 없다”며 “본가와 처가 어른들이 지출한 축의금까지 합하면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여태 냈는데 못 돌려받으면 아깝고 억울하니 (부모들이) 돌잔치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