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개명절차 간소화 따라 10년만에 4배...인터넷 개명도 가능
25세 대학생 신상욱(申相旭, 경남 창원시) 씨의 원래 이름은 '신광조(光兆)'였다. 그런데 신 씨는 어릴 때부터 주변으로부터 "이름에 담긴 기운이 너무 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조선 중종 때 개혁정치를 펴다 훈구파의 모함을 받고 죽임을 당한 조광조의 운명을 연상시킨다는 얘기도 들었다. 결국 신 씨 어머니는 성명 철학관을 찾았다. 철학관 관장은 "특히 빛 광(光)자가 이 사람의 사주와 맞지 않다"면서 "대학 가기 전 이름을 바꾸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새 이름 '상욱'을 받아내고 5년 전 법적 개명절차를 마쳤다. 상욱 씨와 같이 원래 이름에 빛 광자가 들어있던 상욱 씨 동생도 함께 개명했다.
원래 호적 이름을 바꾸는 것은 어렵고 까다로웠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신청해야 하고, 법원의 판결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저해한다는 여론에 따라, 10년 전 대법원은 개명 절차를 간소화하는 조치를 내렸다. 그 결과 신 씨처럼 개명하는 사례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대법원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04년에는 4만 6000건이었던 개명 건수가 2013년은 16만 8000건으로 증가했다. 거의 네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대법원은 이어 올해 7월부터 인터넷 상으로 전자 개명 신청신고를 받고 있다. 늘어나는 개명 신청을 위해 행정 절차를 더욱 간소화한 것이다.
인터넷에서도 개명이 활기를 띠고 있다. 포털 사이트에 작명이나 개명이라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금세 작명소 홈페이지들의 링크가 쏟아진다. 몇몇 언론에는 '대박 작명소', 'xx작명소, 서울에서 입소문…대박' 등의 제목으로 작명이나 개명 관련 기사들도 실렸다.
철학관을 운영하는 이월임(55, 부산시 부산진구) 씨는 일주일에 꼭 두세 명은 개명을 위해 찾아온다고 했다. 그들이 이 씨를 찾는 것은 개명하기 좋은 이름을 작명하고 싶어서였다. 이 씨는 이들의 원래 이름이 사주를 통해 어떻게 풀이되는지를 보고 새 이름이 무엇이 좋을 지를 며칠간 검토해서 알려준다고 했다.
사람들이 개명을 하는 이유는 삶이 더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 씨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사무실에 들어오면 꼭 하는 말이 인생이 힘들다는 말이다"라며 "막히는 인생을 이름을 바꿔서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주로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가족이 단체로 이름을 바꾸는 사례도 있었다. 이런 경우의 대부분은 부모가 아이들 때문에 작명소에 갔다가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운이 막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서균오(24, 부산시 동래구) 씨를 포함한 그의 가족도 그 중 하나이다. 그는 가족들이 모두 함께 이름을 바꿨다. 서 씨는 갑자기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오더니 다짜고짜 어머니는 "작명소에 갔는데, 우리 가족 모두 개명해야 한다더라. 그래서 얼떨결에 개명해서 지금 이 이름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개명하고 나니 아버지 이름이 헷갈려서 군대 가서 아버지 이름을 신상기록부에 기재해야 하는데 못 적어서 선임들에게 불효자 소리를 들었다"고 쓴 웃음을 지었다.
백주혜(31, 경남 양산시) 씨 일가족도 최근 모두 이름을 바꿨다. 이유는 워낙 집안이 힘들어서라고 그는 밝혔다. 백 씨는 "어머니가 가게 장사가 잘 안 됐다. 하루는 작명소에 찾아갔는데 가족 이름을 쫙 뽑아주더라"며 "결국 가족이 전부 이름을 바꿨다. 부모님도 나도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개명을 하고 인생이 잘 풀렸다는 사람도 있었다. 이동오(56, 부산시 사직동) 씨는 원래 이름이 이용구였지만 4년 전 이동오로 이름을 바꿨다. 그는 원래 원양어선을 타는 선원이었지만, 인생 고락이 너무 많아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이 씨는 어선을 타고 해외에 나간 사이 아내와 장모가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렸다고 한다. 그가 결국 아내랑 이혼하고 다른 일을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는데, 하나 같이 폭삭 망했다. 그는 하는 일마다 쪽박을 차니 혹시 내 팔자가 기구한가 싶어 작명소를 찾아갔다. 이 씨는 "거기서 받은 이동오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뒤 지금 재혼해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개명이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사회 전반 시스템은 이에 익숙하지 못한 실태이다. 신상욱 씨는 이름을 5년 전에 바꿨지만 여전히 포털 사이트 내 이름이 신광조로 되어 있다. 회원정보란에서 이름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화로 문의를 해도 회원 탈퇴하고 재가입하거나 신분증 복사본을 팩스로 보내야 하는 등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다.
인터넷 블로거인 닉네임 'k-pax'는 개명하고 나서 인터넷상의 회원 정보를 수정하는데 엄청난 고행을 겪었다. 그는 "평소 애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들 중에 이름 변경 서비스를 지원 안 하는 곳이 절반 이상 되었다"며 "주민번호 의무 입력이 폐지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꽤 큰 기업들까지도 이름 변경 서비스를 구축해놓지 않았다"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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