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살아간다. 그 사연은 대학 합격, 결혼, 취업과 같은 누군가에게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기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아무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할 치욕스런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리얼 인생 스토리를 웹툰으로 지어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이 불쑥 떠오르고 이를 신천에 옮겨 조용한 파문을 읽으키는 웹툰 작가가 있다. 사람들의 다양한 사연과 생활 속 소소한 경험담을 만화로 재구성해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웹툰 작가는 바로 포털 다음의 웹툰 코너 ‘만화 속 세상’의 인기 웹툰 <새싹툰>의 작가 정진욱(21) 씨다.
고등학교에 처음 입학해 장래희망을 적을 때, 정 씨는 주저 없이 웹툰 작가라고 적어 담임에게 제출했다. 만화 그리는 것이 취미였던 그는 그림을 전공해 제대로 꿈을 펼치고 싶어 미술학원 입시반을 2년 동안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웹툰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모의 반대가 매우 심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그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그림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다가 왔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취업률이 높은 간호학과로 진로를 바꿨다. 정 씨는 “부모님의 반대로 인해 꿈을 접어야 해서 많이 힘들었다. 부모님의 지지가 있었다면 미대로 진학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간호학과를 목표로 공부하면서도 그림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정 씨는 결국 미술학원을 반년 더 다녔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술을 붙잡고 있던 그는 현직 간호사이면서 웹툰 작가를 병행하는 실제 국내 작가인 ‘바리’ 씨가 지은 간호사 이야기 <오늘도 무사히>를 보게 됐다. 간호사가 웹툰을 그리는 실제 작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간호학과를 가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간호와 미술을 함께 쥐고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미술학원을 그만 두고 간호학과 입시에 몰두했다.
정 씨는 2014년 울산에 있는 춘해보건대학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바쁜 대학 생활에 그림을 잊어두고 평범한 대학생으로서 한 학기를 보냈다. 그렇게 그림을 잠시 내려놓고 지내던 그는 그의 그림 솜씨를 아는 친구들로부터 “SNS에 그림 같은 걸 올려보는 것 어때?”라는 제안을 받았다. 친구들은 정 씨의 그림 실력을 살려 그의 캐릭터를 일러스트 형식으로 올리면 인기가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친구들의 제안에 그는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갖고 2014년 5월 28일, 자신의 캐릭터를 위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정 씨의 캐릭터들은 모두 머리 위에 새싹이 그려져 있고 얼굴은 붉은 홍조를 띠고 있다. 그의 캐릭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아주 간단했다. 대학생 웹툰 작가답게 푸른 이미지의 밝은 만화를 그리고 싶었던 정 씨는 새싹의 이미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머리 위에 새싹을 달고 있는 캐릭터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정 씨는 페이지를 만든 후 자신의 캐릭터로 대학생의 일상인 시험, 다이어트, MT 등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화를 일러스트를 그렸다. 그는 계속해서 그림을 그리고 올려가며 페이지를 운영해나갔다. 그렇게 페이지가 만들어진 지 3주가 지난 어느 날, 한 명의 페이지 구독자에게 “혹시 사연도 받으시나요?”라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생각도 못했었지만 <새싹툰>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드리고 싶어 그는 사연을 토대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의 사연 만화 콘텐츠의 시작이었다.
단순히 제보 받은 사람들의 사연으로 만든 만화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제보를 받는다는 소식을 본 독자들이 너도나도 사연을 그에게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20통씩 오던 사연 제보는 나중에는 하루 100~200건은 기본으로 왔다. 정 씨는 모든 사연을 웹툰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단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사연을 읽어봤다. 그는 “수 천통의 사연을 읽다보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사연들로 구성되는 새싹툰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1일1식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하루에 한 끼를 피자, 치킨으로 먹다가 실패했다”는 경험담이나 “‘어디야?’라는 문자에 ‘집인데 누구?’라고 답장했는데 알고보니 택배기사님이었다”는 등의 사연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면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또, “좋아하는 선배에게 사랑 고백했는데 뚱뚱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래서 독하게 마음먹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다”와 같이 힘들었던 사연을 정 씨는 만화로 유쾌하게 풀어내 그만의 방식으로 독자들을 위로한다.
정 씨는 많은 사람들과 사연을 공유하고 싶었고, 열심히 작품을 연재해나갔다. 그리고 노력의 결실이 맺어진 것일까? 페이스북 페이지에 사연 만화 7화를 연재한 날, 그는 다음의 만화 속 세상 웹툰팀 PD에게 연락을 받았다.
정 씨는 잘 오지도 않는 메일함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별 다른 생각 없이 메일함을 열어봤는데 포털 다음 웹툰팀 PD에게 연재를 제안하는 메일이 와있었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음 날 연재를 해보겠다고 답장을 보냈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메일 수신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나타났다. 누군가의 장난이었는지, 메일이 누락된 건 아닌지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던 순간, 그는 처음으로 받은 메일에서 PD의 명함을 발견해 전화를 걸었다. 실제 현실은 싱겁게도 담당 PD가 바쁜 업무로 인해 메일 확인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 씨는 며칠 뒤 서울 본사로 올라가 PD와 미팅을 가진 후, 본격적으로 <새싹툰>이란 이름으로 포털 다음의 웹툰 코너에 작가로 데뷔하게 됐다.
정 씨는 “제가 운 좋게 페이스북에서 인기를 얻어 정식 웹툰 작가가 된 경우이기 때문에 질투 아닌 질투도 많이 받고 눈치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정식 연재를 했다고 해서 완벽한 작가는 아니다”라며 “웹툰 작가를 향해 달려가는 그 누구든지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작품을 다져간다면 언젠가는 분명 빛을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새싹툰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좋아했던 웹툰으로 인해 상처를 받기도 했다. 정 씨는 웹툰 연재를 시작하고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악플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일방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보내는 사람들의 말은 비수가 되어 마음에 꽂혀 시간이 지나도 무뎌지기가 힘들다. 또, 모든 창작자라면 독자들의 반응에 굉장히 예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악플이 많이 올라온 날에는 힘이 빠져 하루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었던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 씨는 “작품 반응이 좋지 않을 때는 마음이 아팠지만 오히려 다양한 반응들을 피드백 삼아 더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자신의 최종목표를 크게 두 가지로 소개했다. 우선 간호학과 전공에 맞게 간호사가 되는 것이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활동하며 쌓은 경험을 토대로 간호사라는 직업을 소재로 한 간호 웹툰을 연재하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목표이다. 남자 간호사라는 특성을 살려 흥미진진한 웹툰을 그려내고 싶다고 한다.
그의 두 번째 목표는 아동심리 동화를 출간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정 씨가 도서관에 가면 항상 동화책이 제일 먼저 그의 손에 있었다. 그는 “동화책은 어린이들이 주로 보기 때문에 짧게 만들어 놨을 뿐이지, 그림과 짧은 글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씨는 웹툰 작가를 꿈꾸던 시절부터 동화책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울림이 있는 동화책을 만들어 보고싶다’고 생각했다.
현재 정 씨는 자신의 첫 작품 새싹툰 연재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직 21세라는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그는 차기작을 서두르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저의 다음 작품은 제가 간호사가 되고 나서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림을 좋아하던 소년에서 하루아침에 웹툰 작가로 바쁜 일상을 보냈지만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라디오와 같은 만화를 연재할 수 있어서 참 뿌듯했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