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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돌에 새겨 그 이름과 한 일을 기록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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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타(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돌에 새겨 그 이름과 한 일을 기록해 두자
  • 칼럼리스트 강석진
  • 승인 2019.02.03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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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리스트 강석진
칼럼리스트 강석진
2019년이 황금돼지해라고 했던가. 연초부터 황금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문재인 정부는 여기저기 지방자치단체에 예타면제(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약속을 하더니 1월 29일 국무회의에서 총 24조 1000억 원 규모의 23개 사업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겠다고 의결했다. 이 가운데 18조 5000억 원이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즉 토목사업에 투자될 예정이다. 국가가 지방자치단체들과 토목 건축업자들에게 돈벼락 수표를 발행한 셈이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일을 이렇게 빨리 결정해 버리는 신속함,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의 엄청난 액수 어느 것 하나 놀랍지 않은 일이 없다. 미디어에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실려 있기에 필자가 덧붙일 말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설 연휴 며칠 쉬면서 찬찬히 들여다 보니 놀랄 일이 더 있었다. 우선 그동안 필자가 예타 면제에 대해 무지했던 점을 알게 돼 놀라웠다. 경실련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이번 건을 비롯해 지난 2년 동안 모두 61건 53조 6927억 원의 사업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다는 것이다. 또 국가 재정의 마구잡이 낭비를 막기 위해 김대중 정부 때 마련된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국가재정법 제 38조)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 때 10건 1조 9075억 원, 이명박 정부 때 88건 60조 3109억 원, 박근혜 정부 때 85건 23조 6169억 원의 사업이 예타 면제의 혜택을 누렸다는 것이다. 모든 정권이 법령의 틈을 보아 가면서, 정권에 이익이 되기만 하면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거추장스런 제도를 피해가려고 했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된 것은 부끄럽지만 필자의 무지의 소치다. 부끄러움을 일단 뒤로 하고, 위 자료를 보면 정권만 잡으면 국민 세금을 ‘쓰고 보려는’ 경향을 억제하기 위해 엄격한 통제를 가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으면 국민 세금을 흥청망청 쓰려는 행위가 되풀이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하나 어리둥절한 것은 이런 일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역대 정권을 비교해 보면, 노무현 정부가 예타 면제에 신중했고, 박근혜 정부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반면,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포함해 막대한 국가 재정을 충분한 타당성 조사 없이, 즉 경제성과 효율성에 대한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고 써 버린 것을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2년만에 그 규모에 육박하고 있다. 재정 건전 운영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문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손가락질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야당 시절부터 한국이 토목공화국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토목공화국이란 국가와 지방 재정을 토목 건축 사업에 과도하게 투자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토목 투자를 통해 경제를 끌어가려는 경제 체제를 비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토목 사업이 일시적으로는 지역 경제를 돌아가게 하지만 효율성이 낮을 경우 자원 배분의 왜곡이 일어나고 사후 유지 관리비로 많은 자금이 낭비되기 때문에 사업의 경제성 효율성을 엄밀하게 따져야 한다는 반성이 있었던 것인데 지금 문 정부가 그런 원칙을 스스로 접은 것이다. 문 정부와 지지자들은 과거 토목 정권들이 한 것과 똑같은 논리로 자신들의 결정을 옹호하고 있다. 대규모 토목 투자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며, 효율성을 따지다 보면 지방에는 투자가 일어나기 어렵고, 예타 면제 사업 가운데 성과를 거둔 사례가 이것저것 있다는 것이다. 토목사업이 성장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효율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하는 것보다 성장에 덜 도움이 된다는 점, 지방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예타 조사를 거쳐서 추진해도 사업이 충분히 추진될 수 있다는 점에는 눈을 감은 논리다. 여당 인사들은 예타 면제 내지는 예비 타당성 조사의 부정적 결과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추진해 성공한 사례도 내세운다. 하지만 인천공항 KTX처럼 KDI가 부정적인 평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했다가 텅텅 빈 열차를 4년 동안 운행한 끝에 아예 노선이 폐지된 사례 등 실패 사례는 널려 있다. 지방공항 가운데 텅텅 빈 곳은 얼마나 많은가. 의정부와 용인의 경전철 사업은 조사가 엉터리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예비타당성 조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규모 사업이 돈 먹는 하마가 될 수도 있다. 새만금 사업은 처음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예산이 8000억 원 들어가면 된다고 주장(강변)했던 사업이었다. 그 뒤 어떻게 되었는가. 사업 목적이 이리저리 바뀌고 결국 사업비는 모두 24조 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대규모 토목사업 추진은 신중해야 한다. 자칫하면 사업 시작과 함께 국민과 국가 재정이 인질이 되고 만다. 문 정부가 내세운 개혁의 깃발은 어느덧 빛이 바랬고, 과거 정권에 대한 비판의 칼날은 무뎌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명박 정부하의 예타 면제와 문 정부의 예타 면제 사이에 사소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은 재정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이 정부가 국민의 세금을 알뜰하게 써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문 정부의 예타 면제를 비판하는 야당 특히 한국당의 목소리 또한 공허하기 짝이 없다는 점도 지적해 두어야 한다. 그들은 이미 예타 면제로 불필요한 사업을 대거 벌인 전과가 있다. 여야는 예타 면제의 동업자가 되었을 뿐이다. 재정 운용의 건전성, 나아가 법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면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법으로 예타 면제의 요건을 훨씬 엄격하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대통령이나 여당의 선심으로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 면제를 위한 심의, 통제, 감사 절차를 마련해 마음대로 면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연구소나 대학에 연구를 맡겨 다른 나라들이 선심성 토목공사 예산 집행을 막기 위해 마련했던 제도와 사례를 모아 우리 사회에 적용 가능한 것들을 도입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예타 면제 사업의 경우 감리 절차를 철저히 해, 공사비 사후 증액과 부정이익의 발생을 원천봉쇄해야 그나마 낭비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고속도로든 철도든, 댐이든 예타 면제 토목 사업의 경우 눈에 잘 띄는 곳에 ‘광개토대왕비만큼 커다란’ 돌비석에 언제 누가 무슨 이유로 면제를 했는지를 기록해 두자. 이 비석에는 빈 공간을 충분히 두어 처음 제시됐던 공사비, 최종적으로 들어간 공사비, 유지관리비 등을 기록하고 비용편익 분석 결과를 5년 또는 10년 단위로 기록한다. 잘 한 결정이면 후대에 칭찬을 들을 것이고 잘못 내린 결정이면 두고두고 후대에 반성과 책임 추궁의 근거가 될 것이다. 황금돼지해가 ‘쓰고 보자’는 결정으로 밝아왔다. 개인이든 나라든 절약하고, 미래를 대비해 효율적으로 돈을 써야 위기에 대처해 나갈 힘이 커진다. 예비타당성 조사 앞에 떳떳이 설 수 없는 사업이 대거 포함된 예타 면제는 그런 점에서 법의 원칙을 무시한 무책임한 권력 남용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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