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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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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당신에게
  • 편집위원 신병률
  • 승인 2015.06.29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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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인류의 경험과 사고가 누적된 무형의 유산이다. 최초의 인간이 발견한 지식에 후손들이 새로운 지식을 추가하면서 인류는 지식의 풀(pool)을 확장해왔고, 그것으로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했다. 지식 없이 현대 사회에서 자립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식은 곧 돈이고 명예고 권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식에 대해 일종의 경외감을 가지고 있고 스스로 지식인이 되기를 갈망한다. 지식인이 되려면 아무래도 지식의 총량이 많아야 할 것 같다. 공부를 해본 사람이라면, 눈앞에 존재하는 막대한 양의 지식을 저장하기에 스스로의 기억력이 너무나 부실하다는 사실에 절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머리가 좋아진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인생을 좀 더 살아보니 지식의 총량이 많다고 자동으로 지식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고 그래서 다소 안심하게 되었다. 사실 한 개인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열심히 노력한들 그의 뇌에 축적될 지식의 총량은 인터넷 속 지식의 총량에 비해 턱없이 초라한 수준일 것이다. 백과사전이나 네이버 지식인을 우리가 지식인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지식인이 되기 위해 단순히 지식의 총량만을 늘이려는 생각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니 지식의 총량이 좀 모자라 보인다고 스스로 자책할 일은 아니다. 유명 박물관에 가보면 세계적인 명화를 퍼즐로 만들어 팔곤 하는데 나도 1000피스짜리 고흐의 그림 퍼즐을 사서 맞춰본 적이 있다. 며칠에 걸쳐서 퍼즐을 다 맞추고는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들이 대체로 퍼즐의 한 조각처럼 파편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맞춰지지 않은 상태의 퍼즐로 전체 그림을 알 수 없듯이 지식의 퍼즐도 그것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들 그것 자체로는 별로 쓸모가 없다. 그것들을 모아서 하나의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할 수 있을 때 비로써 그것은 쓸모 있는 지식이 된다. 그림 퍼즐을 맞춰 전체 그림을 확인하듯이 지식의 퍼즐을 맞춰서 세상(혹은 진리)의 전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보기에 그것을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 세상은(혹은 진리는) 비유하자면 무한대의 조각을 가진 퍼즐이다. 1000피스짜리 퍼즐을 사면 상자에 함께 딸려오는 전체 그림이 있어 그것을 통해 조각을 맞출 수 있지만, 세상이란 퍼즐에는 그런 밑그림도 없다. 만약 딸려온 밑그림이 없었다면 나는 1000피스짜리 퍼즐을 아직도 다 맞추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밑그림도 없는 무한대의 조각을 가진 세상(혹인 진리)의 퍼즐을 우리가 다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기껏해야 그것의 일부를 볼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지식 무용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식을 추구하는 근본적 이유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좀 더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즉 지식의 총량을 늘여서 얻은 파편적 사실들로 세상을 재단하고 그것으로써 부와 명예와 권력을 휘두르는 거짓 지식인들에게 주눅들 필요가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미디어 철학자 마셜 맥루한은 그의 책 <미디어의 이해>에서 “지식인이라는 것은 언제나 묵은 권력 집단과 새로운 권력 집단 사이의 연락원, 혹은 매개자의 역할을 해왔다. 그 예로서 가장 유명한 것이 그리스 노예의 경우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로마 권력 체제의 교육자였으며, 신임 두터운 사무관이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교육자가 서구세계에서 맡아온 역할은 상업상 군사상 정치상의 거물에 대한 신임 두터운 사무관이라는 노예적 역할인 것이다”라고 했다. 즉 지식인은 권력자의 노예라는 것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로 유명한 신영복 선생 또한 "전문성은 대체로 노예 신분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였고 권력자(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는 결코 전문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자본가가 하나의 전문적 업종에 집중하기보다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고용하여 여러 분야에 문어발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것을 그 실례로 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품성을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단연 ‘양심적인 사람’을 꼽겠다고 했다. 바늘 끝이 떨리지 않는 지남철이 더 이상 방향을 지시하는 나침반일 수 없듯이, 예민한 양심을 가지지 않은 지식인은 그가 아무리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냥 유능한 노예일 뿐이라는 것이다. 고백컨대 나는 지식의 총량이 많은 유능한 전문가가 못된다. 교수가 전문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자랑일 수는 없으나, 바로 그것 때문에 나는 어떤 역설적 위안을 얻는다. 그것은 나의 지식을 사려는 자본가나 권력자가 없고 그래서 그들에게 나를 팔고 싶은 유혹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이 점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앎이 머리에 소장되어 있을 때는 지식이고, 앎이 가슴으로 내려오면 지성이고, 지성이 사랑에 의해 발효되면 지혜가 된다"는 소설가 이외수의 잠언이 전문성 부족한 내게 또 다른 위안이 되어주고 있다. 물론 지식을 쌓은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무턱대고 지식의 총량만을 늘이려는 시도는 경계해야 한다. 지식에 대한 우리들의 욕망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우리는 권력에 알리바이와 이론을 제공하는 노예적 지식인을 우상화하게 된다. 나는 지식의 총량은 많으나 소수의 권력자를 위해 봉사하는 노예적 지식인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물론 그들을 존경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적은 지식이지만 만인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려고 애쓰는 가슴이 따뜻한 소시민들(그들은 요리사일수도 이발사일수도 있겠다)을 더 존경한다. 사과 한 쪽 반으로 쪼개 나누는 지혜를 가졌다면, 필부라해서 그를 존경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뭐 좀 아는 척하는 인간들에게 주눅 들지 말고, 삭막한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가슴이 따뜻하여 지혜로운 사람들을 더 많이 아껴주고 우리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는데 더 힘을 쏟도록 하자. 그것이 파편적 지식을 주워섬기는 일보다 훨씬 멋진 일이고 훨씬 도전적인 일이고 또 세상을 위해 유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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