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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의 생명과 자연 지키려 온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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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의 생명과 자연 지키려 온 몸을 던졌다"
  • 취재기자 성민선
  • 승인 2015.10.2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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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와 새들의 친구’ 박중록 씨 이야기..최장거리 철새 '얄비' 발견하기도
다리에 황색‧적색‧청색 가락지를 찬 250g의 자그마한 새가 자신의 고향 알래스카 본토를 떠나 뉴질랜드를 향해 자그만치 1만 1,700km를 비행한다.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난 뒤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세아니아-동아시아 경로를 우회하는 이 새는 조류 중 가장 장거리를 비행하는 ‘큰뒷부리도요’다. 참새만한 작은 새가 고향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하늘을 나는 총 거리는 무려 2만 8500km. 자신이 머무를 땅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쉬지 않고 일주일 동안을 논스톱으로 비행한다. 기나긴 여정에 지칠 대로 지친 이 새가 어느 날 우리나라 낙동강 하구 습지를 찾았다. 게와 갯지렁이 먹이가 풍부한 이 지역은 철새들에게 단비와 같은 곳이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굶주리고 지쳤던 이 새는 낙동강 하구 습지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곳의 먹이들로 실컷 배를 채우고 체력을 보충하며 한 달 동안을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고는 알을 낳고 자식을 돌보기 위해 알래스카로 돌아갔다. 왜소한 몸을 이끌고, 쉴 틈 없이 태평양을 건너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 대장정을 평생 되풀이하는 이 새는 뉴질랜드 조류학자 제시 콘클린이 새의 체색 변화 연구를 위해 가락지를 부착하여 날려 보낸 개체로, ‘얄비’라고 불리기도 한다. 현재 얄비는 외국에서 더 이상 관찰되지 않아 보기 힘든 귀한 새다. 콘클린은 얄비를 발견한 사람은 자신에게 회신할 것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공지했고, 마침내 얄비는 지난 2008년 4월, 낙동강 하구 지역에서 습지와 새를 끔찍이도 사랑하는 한 사람에 의해 발견됐다.
▲ 낙동강 하구에서 발견된 큰뒷부리도요 ‘얄비’의 모습. 위 새는 다리를 감싼 가락지 색깔들을 따라, Yellow의 철자 ‘Y’, Red의 ‘R’ , Blue의 ‘B’를 따서 ‘얄비’라는 별명을 가졌다(사진: 박중록 씨 제공).
‘귀한 손님’ 얄비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맞이한 사람은 부산 대명여자고등학교 생물교사 박중록(57) 씨다. 얄비를 발견한 박 씨는 그 순간 곧바로 사진을 찍어 얄비의 생존 상황을 기록했고, 인터넷 커뮤니티와 이메일로 그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해 얄비와의 재회에 대한 감동을 전 세계 국민들과 함께 나눴다. 현재 고등학교 생물교사면서 습지환경 보전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흔히 줄여서 ’습새‘로 불린다)’의 운영위원인 박중록 씨는 10년이 넘도록 매월 정기적으로 낙동강 하구를 방문해 낙동강 생태와 철새 전수 조사를 한다. 이른바 ‘낙동강 하구 지킴이’다.
▲ 박중록 씨가 자신의 수업 공간인 대명여고 생물실 복도에서 다양한 조류 관련 자료들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취재기자 성민선).
박 씨가 10년이 넘도록 낙동강을 방문해 철새 개체 수를 조사하는 이유는 새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 데 필요한 자료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박 씨는 약 18년 전 명지대교‧산업단지 건설 등 낙동강 생태계 위협으로 이어지는 서부산권 개발 계획에 맞서기 위해 낙동강 하구 생태보전의 필요성을 증명할만한 자료가 필요했는데, 당시 학자들과 정부가 기록한 낙동강 하구 생태 자료의 내용은 빈약했다. 그는 “그 지역에 생물이 얼마나 있는지 등의 여부를 통해 습지 생태계의 건강성을 증명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낙동강 습지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보여 줄 만한 충분한 자료가 없었다”고 말했다. 낙동강 인근에서 자라 유년시절을 낙동강 자연과 어울려 보냈기에 새들의 삶의 터전이 곧 자신의 삶의 터전이었던 박중록 씨는 무분별한 서부산권 개발정책에 맞서 새와 자연을 지키기 위해 낙동강 하구 보전을 목적으로 하는 독립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박 씨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모아 2000년 10월 8일 습지 보전단체 ‘습지와 새들의 친구’를 창립했고, 2003년부터 현재까지 회원들과 매월 낙동강 하구를 방문해 철새 전수 조사를 하고 있다. 그는 “당시의 부실한 자료로 무분별한 개발 사업이 정당화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낙동강 습지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그곳을 조사하는 것이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11년 간의 철새 전수조사 보고서를 모은 책자와 그 내용 중 일부의 모습. 박중록 씨와 ‘습새’ 회원들은 2003년에 철새 전수 조사를 시작하여 2004년부터 현재까지 공식적인 보고서 형식으로 조사결과를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낙동강 하구를 46개 구역으로 나누어, 철새를 꼼꼼히 조사한다(사진: 취재기자 성민선).
얄비를 발견한 것도 습새의 철새 전수조사 활동 중의 일이었다. 그는 얄비와 같은 희귀한 조류와의 만남은 새들의 비행력 뿐만 아니라 낙동강 습지 지역이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얼마나 중요한 기능을 하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얄비가 그 후 4년간 열 번을, 그것도 비슷한 시기마다 낙동강 하구 습지에 머물렀다. 이는 박 씨에게 낙동강 하구를 보전하기 위한 노력과 경각심을 더욱 일깨워주는 사례였다. 그는 “새들은 먹이가 풍부하고 안전한 곳, 자기가 다니던 곳을 골라 다닌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낙동강 하구 습지가 이 새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땅인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낙동강 하구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서 온몸으로 투쟁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1993년 12월, 부산시가 계획했던 낙동강 하구 명지대교 건설에 대한 투쟁의 기억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사건이다. 박 씨는 낙동강 하구 생태계의 심장과 같은 을숙도 남단을 가로질러 교량을 건설하겠다는 시의 개발계획에 맞서 싸웠다. 그는 “습지보전법에 의하면, 군사상‧공익상 개발이 불가피한 구역이 아니면 습지 지역을 개발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당시 명지대교를 건설하는 일은 군사상‧공익상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습지보전법 제13조(행위 제한) 1항에 따르면, 농업생산기반시설 유지를 위한 경우나 군사 목적 및 응급조치를 위한 목적을 위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습지 지역의 인공구조물 신축 행위가 금지돼있다. 이에 따라, 그는 새 교량 건설대신 기존에 있던 낙동강 하굿둑 교량의 교차로를 넓혀서 쓰는 방안을 시에 제안했지만, 시는 을숙도 남단을 관통시켜 명지대교를 건설하는 계획을 계속해서 추진했고, 이에 맞서 2001년부터 약 2년 간, 박 씨와 습새 회원들은 을숙도 지키기 운동을 벌였다.
▲ 2000년대 초반 명지대교 건설 반대 운동 모습(왼쪽). 박 씨가 소속된 습새는 녹색연합 등과 토론회‧서명운동을 통해 명지대교 건설 반대 운동을 조직적으로 벌여나갔으며, 명지대교 공사 중지 소송까지 제기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2010년, 시청 앞에서 4대강 정비사업 반대를 위해 1인 시위에 참여한 모습이다(사진: 박중록씨 제공).
결국 2006년 11월 1일, 대법원의 ‘재항고 기각’이라는 판결로 재판은 끝이 났고 2009년 10월 29일 명지대교는 ‘을숙도대교’ 라는 이름으로 개통됐다. 을숙도를 지키지 못했지만 투쟁의 성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을숙도 남단을 직선으로 통과하도록 예정됐던 명지대교가 낙동강 하구 생태의 중요 부분을 피해 곡선 형태로 건설됐다”며 위안을 삼았다. 이후 2009년 6월 6일,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에 맞서기 위해 박 씨와 습새 회원들은 전교조생명평화특별위원회와 함께 시청 앞 광장에서 땅바닥에 배와 가슴을 대는 ‘오체투지’ 시위에 참여했으며, 박 씨는 일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 씨의 낙동강 하구를 지키기 위한 이런 노력들은 오늘날 그의 머리숱까지 빠지게 했지만, 그는 자신이 원해서 한 일이기에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는 “마지못해 한 일이라면 못 했을 것이다. 자연이 이대로 무너져선 안 된다는 생각과 새에 대한 애정이 이뤄낸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까지도 낙동강 탐사 중 망원경을 통해 새를 발견하면 가슴이 쿵쾅 뛴다. 그는 “특히 새들을 만날 때의 가슴 뛰는 순간은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마주하지 못했을 순간들”이라며 습지보전가로서의 인생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180도 달라진 그의 표정은 그가 속한 단체 이름처럼 정말 ‘습지와 새들의 친구’를 보는 듯 상기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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