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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주말 오후다. 부산시 진구 범전동과 연지동에 자리 잡은 ‘부산시민공원’에는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비 우산 속에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산책하는 시민들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가족끼리 산책으로 주말 오후를 보낸다. 저녁 공기를 가르며 조깅을 하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산시민공원은 지난해 5월 미군부대 캠프 하이야리아가 있던 자리에 개장된 곳으로 국제 규격 축구장 70여 개를 합친 넓이의 대규모 광장이다.
부산시민공원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오면, 역시 지난해 6월 개장된 ‘송상현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송상현 광장은 임진왜란 때 동래성을 지키다 순국한 송상현 동래부사를 기리기 위해 부산진구 부전동 일대 간선도로 중앙에 조성된 도시 공원이다. 여기서도 다정한 가족들과 연인들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흐름과 소통의 연결고리”라는 취지로 조성된 송상현 광장은 개장 초기에는 찾는 시민들이 적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문화행사가 개최되면서 활기를 찾고 있다. 이곳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의 연등축제, 시민단체들의 고리 원전 1호기 폐쇄를 촉구하는 탈핵 퍼포먼스가 열렸고, 부산 스타트업 청년 창업 카페도 들어섰다. 개장 이후 방문객이 매우 적어 ‘도심 속 섬’으로 불리던 송상현 광장에 각종 흐름과 소통의 연결고리가 된 행사들이 열리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광장(廣場)은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물리적 빈터이며, 동시에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 하여 만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런던, 파리, 로마 등 도심 곳곳에 광장이 조성돼 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은 사람들이 모여서 민의를 수렴하던 광장들이 있었다. 유렵 고도시들 광장의 원조는 역시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프닉스, 아고라와 로마의 포럼이다. 이곳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민중들이 모여 정보를 나누고, 토론하고, 여론을 형성했다. 광장은 그래서 고대부터 정치, 종교, 사법, 민주주의의 발원지였다. 이들 광장은 열린 장소, 소통의 공간이었다.
대한민국 수도의 광화문에도 광장이 있다. 광화문에서는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무력시위를 벌인 곳이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의 주 무대이기도 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붉은 열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곳이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은 천주교 신자인 나에게는 순교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광화문 일대에는 주요 관청들과 함께 형조, 포도청, 의금부, 전옥서 등 조선시대 죄인을 심문하고 수감했던 곳들이 있었는데, 한국 가톨릭 신앙의 선조들은 천주교인이라는 죄목으로 이들 광화문 일대의 관청에서 고초를 겪으며 순교했다. 형조는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앞에 있었고, 우포도청은 동아일보 옛 사옥 터에 있었으며, 좌포도청은 종로 3가 단성사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서슬이 시퍼랬던 의금부는 오늘날 종각역 1번 출구 앞이었고, 전옥서는 영풍문고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곳 광화문부터 천주교 성지인 ‘서소문 밖 네거리 처형장’까지 순교자들은 포승줄에 묶여 끌려갔던 것이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문(南門)이며, 국왕이 드나드는 궁성의 정문이었다. 광화문은 1395년에 창건되어 정도전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됐고,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 후 1425년 세종 7년에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光化門)으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광화문의 뜻은 '나라의 위엄과 문화를 널리 펼치는 문'이라고 한다.
최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쳤고, 많은 이유로 국가는 이들을 막았다. 최인훈 작가는 소설 <광장>에서 공동체의 ‘광장’과 개인의 ‘밀실’을 대비시키고 있다. 밀실은 모순이고, 광장은 원만이다. 밀실은 극복되어야 하고 광장으로 수렴되어야 한다. 각 개인의 밀실, 각 정파의 밀실, 각 의견의 밀실은 광장으로 다 모여 서로 치열하게 부딪치고 다투어야 한다. 그래서 밀실의 각이 깎여 광장의 원을 이룰 때, 광장은 하나가 된다. 남북 이데올로기라는 밀실에 갇혀 광장에 가지 못하고 죽음으로 체념하는 소설 <광장>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우리 사회 모든 주장과 의견들이 소설 <광장>의 비극처럼 막을 내려서는 안 된다. 우리도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와 로마의 포럼처럼 모여 대화하는 광장을 가질 수는 없을까? 21세기 대한민국 호가 광장이 닫혀있는 비극의 나락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희망의 사다리로 나아갈 묘수는 없을까? 비오는 날 주말에 광장에서 광장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