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는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다. 두껍지 않은 책들이 실내 곳곳의 책꽂이에 꽂혀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이곳 책꽂이가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고, 조무래기 꼬마들이 그 주위에 둘러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누가 봐도 이곳은 어린이들을 위한 맞춤 도서관인 듯하지만, 보통 어린이 도서관과는 조금 모양새가 색다르다. 아이들이 저마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는 것까지는 여느 도서관 모습과 같지만, 아이들 모두 헤드셋을 낀 채 책을 보고 있는 게 이색 포인트다. 책을 읽는데 왜 굳이 헤드셋이 필요할까? 한 아이가 천진난만한 미소와 함께 말한다. “지금 저는 책 읽고 있어요. 이 나무가 저한테 책을 읽어주고 있거든요”라고 말하는 그 아이는 곁에 있는 나무 모양의 책꽂이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그 아이가 가리킨 나무 모양의 책꽂이는 ‘북트리’라고 불린다. 북트리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교육형 학습 기구다. 북트리에 책을 대면, 책에 부착된 음원 태그를 북트리가 자동 인식해 음원 태그에 녹음된 책 내용을 소리로 재생해 준다.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갖다 대면, 단말기가 카드를 인식하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사람이 책을 북트리에 대면, 북트리는 책의 음원 태그를 인식하고 자동으로 책 내용이 녹음된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다. 북트리 내부에 자체 스피커가 숨겨져 있고, 아이들은 남에게 방해되지 않게 북트리 스피커와 연결된 헤드셋을 끼고 소리를 들으며 책을 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 40여 개의 출판사가 제공하는 6,000여 권의 도서가 책 내용이 녹음된 음원 태그가 장착돼 있다. 제휴되지 않은 출판사의 책들은 북트리 회사가 제공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엄마, 아빠가 직접 자신들의 목소리로 책을 읽고 녹음해서 음원 태그 스티커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책에 붙이면, 북트리에서 재생된다. 책을 낭독해주는 것이 주류를 이루지만, 음악책을 대면 그 속의 동요나 클래식이 재생된다.
나무 모양이 기본형이라 북트리로 불리지만, 북트리는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다. 바오밥 나무 형, 꿀벌 모양의 반디 형, 아이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까지 딸려있는 소나무 형 등 책 읽어 주는 북트리는 다양한 모습으로 준비되어 있다.
책을 읽다가 도중에 화장실에 가야하는 등 피치 못한 사정이 생기면, 노란색 손가락 모양의 인형인 일명 ‘조용히 손가락’을 들고 손바닥 부분을 북트리에 대면 소리가 멈춘다. 그리고 나중에 또 다시 가져다 대면, 중지된 부분부터 책이 다시 재생된다.
이런 북트리를 이용해 최근 전국 동네 곳곳에 작은 규모의 어린이 도서관이 생겨나고 있다. ‘책 읽어주는 도서관’이라 불리는 이 도서관은 북트리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책을 들려주는 형태의 도서관이다. 전국적으로 가맹점 형태로 번지고 있다. 경기도 일산을 1호점으로 해서 작년 6월엔 부산 사상구 모라동에서도 개업됐으며, 현재 가맹점 수는 50여 곳이 넘는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약간의 회비를 내야 한다.
소문을 듣고 호기심에 ‘책 읽어주는 도서관’을 방문한 동네 주민 김지영(22, 부산 사상구 모라동) 씨는 직접 북트리를 사용해보고 신기해 했다. 그녀는 “마치 동화 속에 있는 듯한 쾌적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책을 마음대로 남이 읽어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들이 너무 부럽다”고 말했다. 부산 사상구 모라동에서 ‘책 읽어주는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는 관장 서현란 씨는“북트리가 올바른 독서 환경을 형성시켜 주기 때문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시는 부모님들도 많고, 어린이집에서 단체로 견학을 와 북트리를 통해 책을 읽고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들려 주는 책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 책을 친하게 하는 좋은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ADHD(집중력 결핍 과잉행동장애)까지 의심될 만큼 정신이 산만한 아들을 걱정하는 강은희 (40, 경북 포항시 북구 양덕동) 씨는“아이가‘책 읽어주는 도서관’을 다니게 된 지 한 달 만에 집에 와서도 얌전히 책을 읽고 있다”며 “책 읽는 습관이 생기니 자연스럽게 집중력도 길러진 것 같다 ”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