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5-11-19 18:15 (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상태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 경북 포항시 김도란
  • 승인 2014.03.14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은 낡고 허름해진 나미야 잡화점에 우연히 방문한 빈집털이 도둑 세 명이 과거로부터 온 편지에 답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 명의 도둑들은 가게에 설치된 우체통의 편지가 시대를 초월해 도착한다는 것에 놀라는 것도 잠시, 그들에게 배달된, 저마다의 고민이 담긴 편지들에 집중하게 된다. 우선 고민이 담긴 편지에 답장을 쓰게 되는 주인공이 다름 아닌 빈집털이범들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를 고를 때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 혹은 자신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즉 신뢰가 가는 사람을 찾기 마련인데, 진집털이범들은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신뢰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다 고민 상담사가 되어버린 이 세 명의 빈집털이범들은 하루하루 경찰을 피해 숨어 살면서 본인들 자신도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도둑들은 하찮은 자신들에게 누군가가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생전 처음 있는 일에 믿을 수 없어 하면서도 어느새 최선을 다해 그들 나름대로 진심이 담긴 충고를 해주기 시작한다. 나는 이 모습을 보고 좋은 고민 상담사의 조건은 얼마나 똑똑하고 훌륭한지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얼마나 진심으로 들어줄 줄 아느냐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이 도둑들은 사람들의 고민이 담긴 편지에 집중하고 그들만의 진심을 담아 답장했기에 좋은 고민 상담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정성스런 충고를 모든 사람이 순순히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충고해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면서도 결국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결정을 내리고 실천했다. 자신들의 말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도둑들은 "결국 자기들 마음대로 할 거면서 왜 나에게 묻긴 왜 묻는 거야?"라며 답답해하기도 했다. 나 역시도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충고를 따르지 않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답답함은 나미야 잡화점의 진짜 주인, 나미야 할아버지의 이 말 한마디에 눈 녹듯이 해소되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마음이야."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이기에 자신의 충고를 따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할아버지. 나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존중해주는 나미야 할아버지의 모습에 감동했다. 나는 나의 고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속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비록 그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나미야 잡화점에 편지를 쓰는 사람들도 해결을 바라고 쓴다기보다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전함으로써 무겁게 자리 잡았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쓴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랬기에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사는 도둑들이 쓴 편지는 휴대폰도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을 텐데도 사람들은 도둑들에게 감사했던 것이다. 자신의 고민을 누군가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민이 반으로 줄어든 기분을 느꼈을 테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난 매번 내가 무슨 고민이 있을 때마다 귀찮은 내색 한 번 없이 나의 고민을 들어줬던 사람들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고민거리일지라도 자기 일처럼 걱정하고 고민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내 나름의 조언을 해준 경험이 많은데, 누군지도 모르는 남이 보낸 편지에도 고심하며 답장을 보내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친구들에게 해줬던 많은 고민 상담은 친구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을까. 정작 친구들의 진짜 고민은 파악하지 못한 채 대충 위로하고 넘기진 않았을까. 요즘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면서, 나는 작년 여름에 읽었던 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책이 자주 생각났다. 남의 말을 귀담아 잘 듣는 능력은 기자로서 꼭 갖춰야 할 소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단 한마디를 말하더라도 깊게 생각하고 말하는 능력은 예나 지금이나 실천으로 옮기기가 어려운 말 중 하나인 것 같다.

상대방을 배려하면서도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조심스레 전하는 진심이 담긴 말들을 난 몇 번이나 해봤을까. 해본 적은 있을까. 나는 나미야 할아버지처럼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적을 선물해 줄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남 얘기를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상대방이 존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