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교생들 "누가 더 웃긴 청원하나" 경쟁하기도…실명제·연령제한 도입 요구 봇물 / 정인혜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악성 네티즌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당초 개설 취지와는 거리가 먼 글들이 다수 올라오면서 일각에서는 연령 제한, 실명제 등의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극단적인 폐쇄 주장까지도 나온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문재인 정부의 소통 정책 일환으로 마련된 정책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청원을 등록하고 30일 동안 20만 개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정부나 부처 관계자들이 직접 답변을 제공한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이디어로 등장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하에 취임 100일이 되던 지난해 8월 17일 공식 출범했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된 공간이지만, 최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수준 이하의 글은 점입가경이다. 대통령을 향한 인신공격에서부터 연예인 비난, 특정인을 겨냥, ‘사형’을 요청하는 글도 있다. 많은 국민들 사이에서는 도가 지나쳤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장난 글은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 이용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일베 회원들은 청원 게시판에 장난 글을 올리고, 해당 글을 캡처해 사이트에 인증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같은 글을 모방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청원을 우스꽝스럽게 소개한 글을 접한 미성년자들은 청와대 청원글을 놀이로 인식하는 경향마저 띤다.
중학교 2학년 A 군은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본 적이 있다고 했다.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담임 선생님을 사형시켜달라’는 청원을 했다는 친구 이야기를 들은 뒤, 경쟁심이 생겨 비슷한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고 한다.
A 군은 “선생님을 사형시켜달라는 청원을 한 친구가 그 화면을 캡처해서 보냈는데, 친구들이 많이 웃고 반응이 좋았다”며 “인터넷에 댓글 쓰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A 군과 친구들이 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 내용은 ‘피자 시켜주세요’, ‘여자친구 소개해주세요’, ‘롤 스크린 사주세요’, ‘수학 과목 폐지해주세요’ 등이었다고.
문제는 정상적인 청원들이 이 같은 장난조의 청원 글에 묻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국민 청원을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청원 게시판 연령 제한이나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직장인 하모(29, 부산시 북구) 씨는 “요즘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을 보고 있으면 몰상식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나 싶다. 같은 국민이라는 게 회의감이 들 정도”라며 “아무런 정보도 필요 없이 네이버 하나만 있으면 청원을 할 수 있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겠냐. 연령 제한은 당연하고, 실명제도 도입해야 장난성 글들이 줄어들 것 같다”고 촉구했다.
현재 청와대는 문제의 글들을 삭제하는 선에서 대응하고 있다. 한 번 작성된 청원은 수정 및 삭제를 할 수 없지만, 폭력적이고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이 포함된 청원은 관리자가 삭제한다. 게시판 폐쇄나 연령 제한, 실명제 운용에 대한 공식 입장은 아직 없다.
당초 취지에서 크게 벗어난 국민청원 게시판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까. 청와대 청원 게시판의 향방에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