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몰카 사건에만 이례적 신속 수사했다’ 주장 일파만파...‘성별 관계없는 수사 염원’ / 조윤화 기자
홍익대학교 회화과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누드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유출한 혐의를 받는 20대 동료 여성 모델이 지난 12일 구속된 가운데, ‘경찰이 여성 몰카범에만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수사한다’며 여성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남성 모델의 누드 사진을 몰래 찍어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에 지난 1일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모(25) 씨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10일 오후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서부지법은 안 씨가 ‘증거인멸과 도주의 염려가 있다’며 12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안 씨가 문제의 사진을 유포한 지 11일 만이다.
안 씨의 구속 이후 "가해자가 여자라서 경찰이 범인을 빨리 잡았다", "수많은 몰카 범죄가 일어났지만, 그동안 남성 몰카범은 왜 포토월에 세우지 않았느냐"는 등 성별 편파 수사 논란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지난 10일 서강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 몰카범죄로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익명의 네티즌은 “인터넷에 내 동영상이 돌아다닌다. 나는 용의자가 한 명이었는데 경찰이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잡기 힘들어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희도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라며 조사를 해주지 않았다”며 “처벌 못 한다고, 우리나라 법이 그렇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일사천리인가”라는 글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은 14일 현재 1만 2000여 건의 공감 클릭 수를 기록했으며 2300여 건 이상 공유됐다.
‘홍대 몰카 사건’ 수사를 두고 여성들이 분노하는 까닭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여성이 가해자인 홍대 몰카 사건은 수사 진척이 유달리 빠르다는 점, 그리고 한 번이 아닌 수차례에 걸쳐 이웃, 회사 동료 또는 공중화장실에서 몰카를 찍은 남성 가해자는 왜 지금껏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는 사실이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우선, 2016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불법촬영범죄 검거율은 94.6%, 음란물유포범죄 검거율은 85.4%다. 불법촬영범죄, 음란물유포범죄 검거율 모두 여타 성범죄 검거율에 비교해 높은 편이다. 또, 같은 해인 2016년 검거된 몰카범 4491명 중 남성이 4340명으로 전체의 97%를 차지한 점을 감안했을 때, 홍대 몰카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여성이라서 검거가 빨랐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홍대 몰카 사건의 경우 통제된 교실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용의자를 쉽게 특정할 수 있었고, 신속한 검거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홍대 몰카’ 사건의 경우, 몰카 사건 가해자가 구속됐다는 점에서는 이례적이다. 그동안 몰카 범죄 수사가 구속 수사로 진행된 경우는 드물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몰카 피의자 4491명 중 구속된 사람은 135명에 그쳤다. 몰카 피의자 100명 가운데 단 3명만 구속됐다는 뜻이다. 지난해 9월 여성 고객을 상대로 치마 밑 몰카를 찍다 적발된 50대 남성 자영업자 A 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100여 명 정도의 여성을 상대로 찍은 140여 건의 동영상이 이 남성의 휴대폰 속에서 발견됐다. 법원은 A 씨에게 요청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몰카범이 포토라인에 선 일 또한 흔하지 않다.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가해자 안 씨는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마포경찰서에서 나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부지방법원으로 이송되는 가운데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몰카 범죄 가해자가 포토라인에 선 것은 지난 2015년 ‘워터파크 몰카’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워터파크 몰카’ 사건의 범인은 20대 여성과 30대 남성이었다.
홍대 누드 몰카 사건으로 논란이 점화된 성차별 수사 논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으로 번졌다. 지난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를 제목으로 하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피해자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수사를 달리하는 국가에서는 남성 역시 안전하지 않다”며 “누구나 피해자가 됐다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그런 대한민국을 절실히 바란다”고 청원했다. 해당 청원 글은 게재된 지 3일 만에 30만 9000명 이상의 동참을 끌어내며 정부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여성들은 그동안 몰카 범죄의 표적이 여성이었을 때 소극적 태도를 보이던 경찰이 여성이 가해자로 등장한 이번 사건에서 유독 엄정한 수사를 강조하는 대목에 분노하고 있다.
여대생 김모(23, 부산시 연제구) 씨는 "홍대 누드크로키 몰카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와 사회적 반응은 분명 성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그동안 수많은 몰카 사건을 기사로 접했지만 이렇게 떠들썩하게 수사 진척 상황을 단계별로 기사로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홍대 몰카 가해자가 잘못을 한 건 분명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아야 하는 건 맞지만 수십 건의 몰카를 찍고 인터넷에 유포한 몰카 남성 가해자는 왜 지금껏 구속하지 않고, 포토월에 세우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생각을 친구나 학교 선배에게 말하면 ‘너도 메갈 하냐’ ‘너도 워마드냐’는 식으로 되묻곤 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한국은 몰카 범죄의 검거율은 높지만, 검거 후 몰카 범죄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엄중한 처벌을 바라는 피해 당사자와 국민의 정서에 반해 몰카 범죄자 대부분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여성변호사회가 2011년 1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선고된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에 대한 1540건의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1심에서 벌금형을 받은 몰카 피의자가 71.97%(1109건)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집행유예 14.67%(226건), 선고유예 7.46%(115건), 징역형 5.32%(82건) 등의 순이었다. 항소심 278건 역시 벌금형이 46.76%(130건)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한편, 지난 10일 개설된 포털 사이트 다음 카페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는 오는 19일 오후 3시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 시위를 연다고 예고했다. 장소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불법촬영 편파 수사 규탄시위’ 관계자는 지난 12일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홍대 몰카 사건처럼 다른 몰카 범죄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수사하길 바란다면 참여해주시기 바란다”며 시위 참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