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1일 SBS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자기야, 백년손님>에서 한 중년 남성이 어르신들과 함께 카페에 방문하는 장면이 방영됐다. 카페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는 신호로 진동벨이 울렸는데, 난생 처음 진동벨을 본 어르신들은 그것이 전화기인줄 알고 귀에 대고 “여보세요”를 외쳐 주위에 웃음을 샀다.
대학생 배성란(23, 부산시 사상구) 씨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배 씨는 목이 말라서 종업원에게 물을 좀 달라고 했지만 “물은 셀프입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단호한 종업원 말에 민망해진 배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물을 가져왔다.
이런 장면은 셀프 서비스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다.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 자리 잡은 ‘셀프 서비스 문화’는 직원의 인건비를 줄이고 고객이 직접 서비스를 해서 제품 가격을 내리는 효과를 가진다. 실제로 사전에서 나오는 셀프 서비스의 정의는 ‘서비스의 일부를 고객 스스로 하도록 하고, 그에 상당하는 절약분만큼 소매 가격을 내려 판매하는 방법’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셀프 서비스 업소들과 일반 업소와의 가격 차이가 없다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셀프 서비스를 시행하는 곳은 카페와 식당만이 아니다. 셀프 주유소와 셀프 빨래방, 셀프 세차장 등 셀프 서비스를 시행하는 매장이 많이 등장했다. 심지어 대형 마트는 계산대 직원이 아니라 소비자 스스로가 계산할 수 있도록 셀프 계산대를 설치한 곳도 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경험이 있는 강내영(24, 경남 김해시) 씨는 소비자가 셀프 서비스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 그는 카페에 손님들이 많은데 일일이 가져다주는 것보다 그 시간에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 씨는 “매장이 넓은 경우에는 많은 손님들의 얼굴을 일일이 기억해서 직접 가져다주기도 힘들다”며 “만약 많은 양의 음료를 직원이 바쁘게 서빙을 하다가 쏟게 될 확률도 있어서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셀프 서비스를 통해서 제품의 판매 가격을 줄인다는 원래의 목적은 사라진 듯하다. 소비자들은 셀프 서비스를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높은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남 신문> 6월 4일 자 보도에 따르면, 경상남도 내 셀프 주유소와 일반 주유소의 휘발유값의 평균 가격 차이가 26.41원에 그쳐 시민들의 체감 효과가 낮다고 한다. 심지어 셀프주유소보다 일반주유소의 휘발유 값이 더 저렴한 곳도 있다.
대학생 조은이(23, 경남 김해시) 씨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 앞 프랜차이즈 철판 볶음밥집을 즐겨 찾는다. 조 씨는 학교 앞에 있는 같은 브랜드를 가진 두 개의 프랜차이즈 밥집을 번갈아가며 방문하다 이상한 점을 느꼈다. 한 곳은 종업원이 샐러드와 기타 반찬을 모두 가져다주는 반면, 다른 한 곳은 처음부터 직접 가져와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씨는 “두 밥집의 모든 메뉴의 가격은 같은데 왜 서비스에서는 이렇게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밥을 먹는 도중에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이 귀찮아서 이제는 반찬을 가져다주는 곳만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부 정선미(46, 경남 김해시) 씨는 얼마 전 대형 마트에 갔다가 계산대 줄이 길어서 셀프 계산대를 이용했다. 셀프 계산대를 이용한 정 씨는 처음 해본 시도에 어려움을 겪었다. 직원이 계산대 옆에서 도움을 주려고 서있지만, 한 명의 직원이 여러 계산대를 관리하다보니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 정 씨는 “내가 직접 계산하는데도 똑같이 가격을 받는 것은 불공평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성대 교양교육부 홍병두 교수는 요즘 업소들은 손님들의 셀프 문화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소비자들이 왜 제 값을 지불하면서 직접 가서 주문하고 제품을 가지러 가고, 뒷정리까지 해야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은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대해 인식을 못하고 있다”며 “이것에 대해 조금 더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의 대학가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황선호 씨는 카페 내 모든 서빙을 직원들이 하도록 한다. 그가 다른 카페들처럼 본인의 카페도 셀프 서비스를 하면 더 효율적이겠지만 직원이 조금 더 움직이면 손님들이 편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황 씨는 “손님들이 카운터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보다 직원들이 직접 서빙함으로써 손님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